학창 시절, 남들보다 조금 큰 키는 늘 오해를 불렀다. 반 대항 운동경기가 열리면 어김없이 대표 선수로 차출되곤 했던 것. 하지만 기대 섞인 시선이 무색하게도 내 운동 신경은 처참한 수준이었으니, 소프트볼 경기에서는 공에 맞아 멍이 들었고, 이어달리기는 늘 내 순서에서 전세가 뒤집혔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 시간, 실기시험 종목이 농구라는 공지가 떴다. 다섯 번의 슈팅 기회를 주는 자유투 시험이었고,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의 농구골대 앞은 연습 행렬이 이어졌다.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지만 던지는 족족 공은 림을 스치지도 못한 채 허공만 갈랐다.
운명의 실기 시험 날. 내 차례가 왔을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던진 공의 포물선은 전례 없이 우아했고, 마치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림 안쪽으로 공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다섯 번 모두 완벽하게 성공! 내 생애 단 한 번, 운동 신경이 뇌를 거치지 않고 손끝으로 폭발했던 순간이었다.
그 기억의 잔상 때문일까. 호수공원을 산바카라할 때마다 농구 골대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곤 한다. 중고 농구공이라도 하나 사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다시 한번 오래전 그날의 쾌감을 되살리고 싶은 열망이 끓어오른다.
거의 매일 지나가면서 봤지만 이 코트에서 아줌마가 슛을 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그 코트 안에 여자가 서 있는 것조차 목격한 기억이 없다. 마치 금녀의 공간 같은 곳이다.
귀한 풍경을 보고 싶은데 찾아보기 힘들면 직접 만들면 된다. 우선 조심스럽게 아무도 없는 코트에 들어가 사진부터 한 장 찍어 본다. 조만간 골대 앞에서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유투 연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