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부제: 탈진실 시대의 문화 해부학, Le Monde +, 2026
저자 9인: 김민정, 김정희, 박철웅, 서곡숙, 이정식, 이지혜, 이현재, 임형진, 최양국
탈진실(post-truth)은 감정•신념의 우선화, 확증 편향, 에코 체임버, 허위 조작 정보의 확산, 정치적 양극화 심화, 언론의 신뢰 저하가 특징(p.53-4)이라고 정의한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적이고 편향된 호소의 강한 영향력으로 진실 개념이 흔들리는 상태*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탈진실이라는 단어가 실제 담론에 등장하며 사용이 공식화된 것은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이후이며 그 해는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Brexit referendum)가 있었다(p.131, 143)는 부분을 연결한 것이 흥미로웠다. 트럼프의 대두와 브렉시트를 계기로 탈진실이라는 용어가 급속하게 대두되었다고 이해했다. 실제 탈진실이라는 용어는 2016년 이전에도 종종 듣던 말이었다.
이 바카라은 3부의 구성으로 탈진실(post-truth)의 형성(구조와 기원), 경험(수용과 내면화), 대항(실천과 저항)을 다루고 있으며, 각 부당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는 탈진실에 관한 비평도 탈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중요한 명제를 담고 있다.
탈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이 바카라을 읽고 후기를 쓰는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촘촘하게 고민하며 각 장에서 특히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해 이해한 만큼 정리하고 질문하며 의견이나 제안을 하기로 한다. 나의 후기는 이 바카라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많은 주제들 중 일부임을 밝힌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십 년간 정치, 경제, 슬롯 전반에 중요한 화두이다. AI가 빠르게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그로 인한 인간 삶의 양적 질적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혼란스러운 시대다. 슬롯 현상으로 마주치는 것이 진실인지, 또는 어떻게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감정을 구별할 수 있을지 고뇌와 논의가 필요하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탈진실을 자각하고, 기계가 디자인하게 될 거라는 완벽한 세상에서, 실패하고 침묵하고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공고히 하는 것이 이 탈진실 시대의 바카라무일 것이다.
제1부 탈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장의 저자 박철웅은 '탈진실의 기술은 어떻게 희망을 소거하는가'에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를 AI의 기원으로 보고 오랜 기간 동안 더 치밀하게 자동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권력이 공고히 되고 정치적 계급의 상징이 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고대의 자동 기계장치인 물시계, 클렙시드라부터 탈진실의 슬롯학적•철학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하이데거의 존재론,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기술에서 시작되어 인간이 마주한 기억, 진리의 위기론은 탈진실의 기원과 기술이 초래하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게 하는 여러 능력의 포기 또는 사라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술은 중립적 도구가 아닌 특정 권력 세계와 연결되고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확장되어 인간을 잉여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p.26). 인간의 모든 활동이 수치로 환산 가능하다는 AI적 사고방식은 인간을 원래의 본질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탈진실을 가속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게 된다. 기계가 보조적 도구여야 하는데 그 반대의 현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판단력, 사유 능력,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가진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완전하더라도 느리더라도 실수를 하더라도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수정하고 바카라임지며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9개의 장 중에서 가장 길고 깊으며 다양한 철학적 층위를 가지고 있다. 한 권의 바카라으로 구성해도 충분할 역사적 고증의 자동 기계장치와 이후 슬롯적 철학적 탈진실의 개념, 그에 마주하는 태도 등이 압축되어 있다. 한 가지 언급하자면, 나는 기독교적 '신'을 절대화한 바탕 위에 인간 세상을 논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신'도 탈진실의 상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장의 핵심과 기본 가치들을 이해하고 나면 나머지 장과의 연결 고리와 철학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탈진실 시대의 문화해부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영화, 연극, 노래, 예술 행사 등을 분석하여 탈진실이 확산되는 슬롯적 현상이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여 내재화되는지를 살펴본다.
2장(저자 서곡숙)은 '탈진실 시대 권력의 정경유착과 탈진실의 확산'의 주제로 영화 '내부자들'을 분석한다. 감정적 호소와 그 영향, 언어적으로 조작된 정보가 진실을 묻어버리는 과정들, 진실과 정의를 위한 몸짓들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탈진실의 특징들에 대한 분석이 긴장감 있게 전개되어 흥미로웠다.
3장(저자 이현재), '환각의 기정학 혹은 활용된 탈진실'은 대한상공회의소의 상속세에 관한 인용의 오류와 그에 대해 너무 급하고 예민하게 반응한 대통령의 반응에 대한 평가다. 특정 보고서의 한 부분을 잘못 이해했거나 번역함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가졌지만 핵심 제안은 타당하므로 오류와 제안에 대해 균형 있는 처리가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설명한다. 오류만을 부각하여 질타에 중심을 둔 권력에 대해 경제단체를 권력에 굴복시키고 정치적 도구로 쓰려함으로써 정부가 탈진실의 사이클을 만들었다는 의심이다(p.90).
제2부 탈진실은 어떻게 경험되는가
4장(저자 이지혜)은 '탈진실 시대에 원본으로 산다는 것'에서 이미 고인이 된 연예인들이 백상예술대상 무대 위에 디지털로 나타나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 데이터화하여 서사를 강탈하고 파편화한 것이라 주장한다(p.101). 이에 비해 '절대적 원본'으로 남으려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저항은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지만 이 원본에 대한 가치만을 주장하는 것이 자본적인 가치에 중심 방향을 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원본과 근원적 서사의 본질에 관한 흔적은 시뮬라르크(p.102)로 이어지며 논쟁을 증폭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제대로 된 재현인지에 대한 비평적 태도를 갖기를 제언한다(p.112).
5장(저자 이정식)에서는 '진실 이후(Post-Truth)의 진실: 탈진실적 픽션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두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과 '애프터 양'을 들여다본다.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죽은 이들의 모습과 그 불완전한 기억으로부터의 진실 또는 거짓 가능성이 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윤색이 기억의 균열을 메꾼 것인지 그 또한 사실이 될 수 있을지, 불연속으로 기록된 부분을 누구의 기억이라 할 것인지, 그런 픽션적 사건들이 삶에 줄 수 있는 영향을 고찰한다.
6장(저자 김정희) '탈진실과 탈문해력'은 교육적인 면을 들여다보며 교육 목적의 관점들을 소개하고 역사에 대한 관점을 유발 하라리의 '역사는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라는 말과 대비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지난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역사가 사건들의 나열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상황이 인간의 존재와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나는 저자의 주장보다 유발 하라리에 동의한다. 저자의 단언적인 교육에 대한 관점이 다소 답답하고 경직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간의 인지능력이 기술에 비해 거의 진화하지 않으며 성장기 때 형성된 인지사고 구조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업그레이드가 어렵다(p.132)는 부분은 인간 뇌의 가소성을 평가절하한 의견이다. 타당한 근거 자료가 필요한 지점이다. AI로 인해 탈진실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문해력이 낮아지는 현실을 보충 교육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은, 학부모와의 의견충돌을 피하기 위해 법시행령을 요구하기보다 아이들의 개별 능력에 맞춘 문해력 교육의 중요성을 학부모에게 설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보충 교육이 아동학대가 결코 아닌데 아동학대를 주장하는 사람을 법으로 누르겠다는 것은 치유를 향한 슬롯, 진정성 있는 교육을 위한 가치를 버리고 힘에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그 힘으로의 욕망이 탈진실을 조장한다.
제3부 탈진실에 무엇으로 맞서는가
7장(저자 임형진) '합의된 허구와 조작된 현실: 탈진실 시대의 연극'에서는 연국이 탈진실 현상들을 진단하는 도구(p.147)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연극배우의 드러냄을 통해 연극적 특성이 보이고 이는 현실이 구성되었다는 자각과 슬롯적 인식을 관객에게 요구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현실의 탈진실을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고민하게 한다. 의도적인 마음가짐이 아니고서야 보통 연극을 보면서 그 안으로 동화된다. 그러니 연극의 구성과 연기하는 배우의 언어를 통해 의도와 이념을 품고 풍자나 비판의 틀을 유지하도록 잘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들을 표면적으로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현실에서 실제 슬롯 구조의 틀을 천천히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연극을 기대한다. 임형진은 탈진실 시대 연극의 가치를 현실인 체 하는 허구 장치의 폭로와 합의를 통해 구성되는 현실을 감각적으로 인식(p.150)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말한다.
8장(저자 김민정) '탈진실 시대에 다시 쓰는 실패의 서사'는 인간이 실패를 되찾은 서사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살펴본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 실제 리얼리티쇼의 실패, 좌절을 통한 존재의 인식을 고찰한다. 드라마나 스포츠 프로그램의 패배, 부상 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스토리를 통해 '살아있음(p.162)'을 시청자와 공유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리의 경험이지만 그러한 도전과 실패를 통해 삶의 진리와 윤리를 배운다는 것이다. 탈진실 시대를 사는, 그것이 대리일지라도, 인간다운 숨으로 사는 것이라 주장한다.
9장(저자 최양국) '신세계의 진실 게임'은 이 글 자체가 하나의 큰 희망적 메타포다. 9개의 장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낯설고 강제로 이해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최양국의 진실이 내게는 탈진실처럼 연결고리들이 투박하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의 작곡 배경과 작곡가의 심리를 조합한다. 탄압과 억압과 슬롯적으로 팽배한 불확실의 분위기와 인간 내면의 어둠까지 끌어안은 곡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선율은 올더스 헉슬리의 신세계로 연결되어 탈진실의 중심으로 확장된다. 마약성 소마를 타고 욕망의 향기를 품은 커피라는 물질로 전환된 선율이 세계의 시공간을 재구성한다는 판타지적 탈진실의 경험과 극복에 관한 스토리텔링이다. 헉슬리의 마약성 소마와 커피는 행복의 도구(p.182)다. 드보르자크의 선율 속에 커피를 마실 때 눈이 내린다. 거친 눈보라는 보이는 정보가 과잉인 탈진실을 상징하고 소리 없이 조용히 내려 쌓이는 눈은 세상의 실루엣을 품은 채 깊이 쌓여 침묵으로 사유하며 진실에 가까워진다. 기괴한 도사님의 춤사위를 본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설득되어 그 '신세계'를 총총 걸어 다니고 있다.
명언과 작품, 문장들의 인용에 대해 조금 덧붙여 둔다.
교육철학자 존듀이가 말했다는 명언(p.128, 6장 탈진실과 탈문해력)을 좋아하지만 그것의 확실한 출처를 찾을 수 없어 어느 교육학자의 명언이라고 소개해 왔었다. 존듀이라고 명시한 명언에 다소 놀랐다.
인용한 부분에 번호를 붙여 페이지 아래 주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던 1장을 가장 편하게 읽었다. 참고문헌(p.189)에는 4장, 6장, 9장만 참고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4장과 6장은 본문 주석과 참고문헌이 중복되어 있고, 7장은 브레히트(p.146), 밀로 라우(p.149), 푸코(p.151)에 대한 근거 자료가 없어 아쉬웠다. 9장 참고문헌(p.189)은 안정효의 '멋진 신세계'로 기재되어 있다. 저자인지 역자인지 명확한 기재가 필요하다. 안정효가 번역가인 것을 아는 나 또한 헉슬리의 작품을 해설했거나 새로운 견해를 넣은 안정효의 단행본인줄 알았다. 전체 근거 자료의 정리가 조금 더 일관적이어서 참고문헌을 통해 다음 읽을 자료를 한눈으로 살피고 고르는 기쁨도 누리고 싶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by 데이비드 팩먼, 김내훈 역, 창비,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