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길

안으로 구불거리는

by수의서재

미진한 글 뭉탱이를 주섬주섬 챙겨 시동을 켰다. 하품 몇 번에 대시보드에 경고등이 뜬다. 두 시간도 채 안 달렸는데 운전 집중도 하락, 잠시 휴식 요망, 요망이라니! 기계에 놀아나고 있다.

차를 휴게소에 세운건 눈높이로 부딪히며 짓이겨진 곤충의 잔해 때문이었다. 규정 속도 110킬로, 사지로 뛰어든 작은 몸뚱이의 속도는 무한했으리라.


노랗게 흐르는 듯한 기름진 죽음의 흔적에 큰 사고를 내고 주위를 흘깃거리는 비겁과 비열 사이에 있었다. 하필 그 순간 뜨거운 카페라테 생각이 났다. 샷추가까지 하는 나란 인간.


넙데데한 대형 승합차들 사이에 끼어 주차를 하고 어깨를 털었다. 몸 두께만큼 문을 열고 나갔다. 옆차문이 내 배를 짓누를 것만 같았다. 숨을 참았다. 휴게소 안이나 밖이나 나는 참아야 할 숨이 엄청나다. 참아야 하느니라.

고속도로로 나가는 출구 쪽 낮은 언덕가에 다시 차를 끌어다 세우고 커피를 홀짝였다. 백 미터쯤의 간격으로 차들이 줄지어 나간다. 회색의 화물차, 명랑한 소형차, 부푼 관광버스, 납작한 외제차, 비상깜빡이를 켠 앰뷸런스, 다들 떠난다.


왼쪽으로 나란한 나무들이 들뜬 모습으로 서있다. 곧 장마다. 뿌리를 지구에 박고 그 땅을 얼마나 채우고 있을까. 상상하지 못할 몸통의 두께가 제각각인 나무들은 인간의 모습이다. 땅따먹기. 치열한 경쟁으로 여름의 더위는 더 뜨겁겠지.


회색 아스팔트를 조금씩 말아 걷어가는 자동차의 바퀴를 본다. 주먹 속에 후텁지근한 조급증과 방광을 비운 시원함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가속하며 달라지는 휠의 모습이 원래 어땠을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본다. 번개 모양인 내 휠은 달리면 회색의 원판처럼 보인다. 계속 닳고 낡아가며 이도저도 아닌 회색인간이 되고 있다.


내 차 높이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화물차가 굉음을 뿌리며 지나간다. 뒤에 가만히 서 있던 거대한 덩치의 공포가 옆으로 다가서며 무거운 액셀을 밟으며 위협한다. 의도하지 않은 바깥세상의 소리에 귀가 먼다. 잘게 남은 메아리로 흔들린다.

내 소리가 내 마음과 달리 공포로 뿌려진 적이 있었던가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에게 동료들에게 아니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미끄러지듯 화물차 한 대가 내 앞에 주차한다. 주차칸에 안착하는 속도에 놀라 굳었다. 실수라도 해서 급후진 하면 운전대와 의자 사이에 낀 나는 어디까지 생명이 남아 있는지 모호할 것이다.


삶과 죽음은 경계가 없다. 어떤 삶은 죽음에 가깝고 어떤 죽음은 삶의 가장 밝은 빛일 수도 있다. 선악의 경계를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악의 거리를 멀리 두려 할수록 그 사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살 수 있다.


저 멀리에 둘 것과 가까이 안으며 살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