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이 오고 상수리 열매가 하나둘 여물었다. 가을볕에 여물어가던 열매는 마침내 계절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툭 떨어졌다.
높아진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다니고, 따사로운 햇살에 반짝이는 상수리잎 사이로 오늘도 나는 아침 운동길에서 그 가을빛 열매를 찾는다.
우리 아파트 주변에는 운 좋게도 상수리나무가 대여섯 그루 심겨 있다. 여름내 파랗게 몸집을 부풀리던 열매는 가을이 되면 토실하게 여문 누런 알맹이를 아낌없이 떨어뜨려 준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린 날을 떠올리며 하나둘 줍다 보니 한 움큼이 되었다.
보통 도토리라고 하면 익숙하지만, 상수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도 있다. 구분해 보자면 내가 본 참나무는 잎이 손바닥처럼 넓고 열매도 길쭉했다. 반면 상수리나무는 잎이 길쭉하고 열매는 둥그런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도토리나무라는 이름의 특정한 나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수리나무를 비롯해 신갈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여러 종류의 참나무가 있고, 이 나무들이 맺는 열매를 통틀어 도토리라고 부른다. 상수리나무에서 맺히는 열매가 바로 상수리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동안 도토리라고만 알고 주워 먹었던 것에도 저마다 이름이 있었던 셈이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지난해에는 자연의 섭리 탓인지 열매가 적어 줍는 재미를 맛보지 못했다. 두 해 전에는 제법 모아 묵을 쑤어 먹기도 했으니, 우수수 떨어진 상수리를 발견할 때마다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계절이 길 위에 떨궈 놓은 작은 선물을 거두는 일은 생각보다 벅차고 경이롭다. 물 한 모금 바람 한 점 내 손으로 준 적 없지만, 오롯이 제 몸을 키워 내 손안에 쥐여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런데 이 열매가 얼마나 영악한지 같은 빛깔로 덤불 속에 제 몸을 숨기며 나의 인내를 시험하려 든다.
열매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어린 날 온통 참나무로 가득한 새벽 숲에 오르면 툭. 투두둑. 툭.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서로가 하나라도 더 주우려고 새벽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하나둘 줍다 보면 금세 한 아름이 되었다.
먹거리가 곤궁하던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갈색빛 상수리 묵은 더없이 반가운 간식이자 반찬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 시키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누가 먼저 주워갈세라 눈곱도 떼지 못한 채 산으로 뛰어가곤 했다.
며칠만 주워도 커다란 고무 대야에 수북이 쌓였다. 한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상수리는 어느 날 맷돌에 갈려 잘게 부서졌다. 고운 체에 걸러져 가라앉은 보드라운 앙금은 멍석에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고운 가루가 되었다.
그 가루는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던 날 커다란 가마솥 안에서 푹, 푹,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양푼에 담겨 탱글탱글해진 묵을 한 조각 입에 넣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감촉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긴긴 겨울밤 어머니는 동치미를 길쭉하게 썰어 묵과 함께 내어주시곤 했다. 별다른 양념도 필요 없었다. 조선간장 몇 수저에 들기름과 통깨 듬뿍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이 가을, 그 맛이 그리워 작은 열매와 숨바꼭질하곤 한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번 쑤어 먹을 만한 양이면 충분하다.
선연하게 단풍이 물들고 서늘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날, 그동안 모은 열매를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에 맡긴다.
하나둘 갈라지는 열매의 껍데기를 벗기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자 고된 작업이다. 보늬(속껍질) 사이로 샛노란 알맹이가 얼굴을 내밀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흐른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수작업으로 껍질을 벗기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작은 고기망치를 동원하여 살살 깨트려 물속에 넣는다.
벗겨진 알맹이는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떫은맛이 난다. 며칠 동안 붉었던 물이 맑은 물이 될 때까지 그 맛을 우려낸다. 촉촉한 알맹이를 맷돌이 아닌 신식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갈아준다. 번거로운 작업이다.
대량일 경우에는 방앗간에 가면 맷돌도 아니고 믹서기도 아닌 커다란 분쇄기가 껍질째 갈아 준다고 하니 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양이 얼마 되지 않아 방앗간으로 갈 수도 없고 하나하나 내 손으로 또 다른 가을 놀이에 푹 빠져본다. 여러 번 갈아 고운 체에 걸러준 앙금은 고작 한 움큼 정도다. 말리고 말고 할 양이 아니다.
또다시 남아 있는 탄닌 성분을 우려낸 다음 서너 컵의 물을 더해 묵이 되면 한 끼는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고민에 빠진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쫀득하면서도 탱글탱글한 묵이 될까.
나도 그 정답은 모른다.
한 번으로는 아쉽다. 수소문하여 매해 가을이 되면 도토리 가루를 산다. 가루 한 컵에 물 여섯 컵이 되고 일곱 컵이 될 때도 있다. 계절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가루에 따라 다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물을 더해 찐득한 액체가 될 때까지 수없이 젓는 일이다. 자칫 몽글몽글한 덩어리가 되거나 바닥에 들러붙어 탈 수 있으니 절대로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이때 나는 소금으로 간을 하고, 윤기가 나도록 식용유도 넣어준다.
드디어 갈색빛이 도는 액체가 뚜우욱뚝 떨어지면 불을 줄이고 뜸을 들이다 끈다. 그것도 어렵다면, 잼을 만들 때처럼 맑은 물에 한두 방울 떨어뜨렸을 때 퍼지지 않으면 적당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물을 살짝 묻힌 양푼이나 두꺼운 유리그릇에 부어준다. 물이 살짝 묻어 있어야 묵이 굳었을 때 분리가 쉽다. 이제 걸쭉한 액체가 탄성이 적당한 묵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은 저녁에 쑤어 다음 날 아침에 먹으면 딱 좋다.
가을이 준 선물은 그렇게 나의 식탁에 오른다. 오이, 상추, 깻잎 등 채소를 넣어 무친 상수리 묵 한 접시는 말해 무엇하랴. 맑은 육수에 김치 몇 조각과 채소, 김 가루 듬뿍 넣은 묵밥은 든든한 한 끼가 되기도 한다.
다람쥐도 청설모도 없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 참나무가 아낌없이 그 열매를 나누어 줄 때까지 나의 추억 놀이는 계속될 것이다. 움켜쥐기보다 누군가를 위해 내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가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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