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통사고, 흔히들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순간을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다. 덕후(오타쿠)+교통사고의 합성어로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게 된 순간이 교통사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상에는 아주 사소한 순간이 큰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친구들과 감자탕을 먹던 순간이었다. 사람은 넷, 감자탕은 '중'을 주문했다. 커다란 냅미에 안에 담긴 뼈다귀를 하나씩 자신의 앞접시에 가져다 놓는 그 찰나에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고 뼈다귀를 뜯던 옆자리 친구가 물었다.
"왜 그래?"
"아, 아니야."
당황하지 않은 척 비닐장갑을 끼고 뼈에 달라붙은 살들을 떼어내는데, 비닐장갑은 내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아줄 뿐, 뜨거움을 막아줄 수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여태 뜨거움을 참고 내 앞접시에 잘 발라진 살코기들을 놓아주던 애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누군가의 손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았다. 공주처럼 대접받던 내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갈 힘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감자탕도 게장도 삼계탕도 대하구이도 그의 손을 거쳐야만 멋을 수 있다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 글은 사랑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사실은 그와 헤어지게 된 이야기다.
서른 살 중반,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그중 결혼까지 할 거라 믿었던 연인과 헤어졌다. 24년 12월 28일 곧 햇수로 13년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지만, 이별은 고작 30분 만에 이루어졌다. 연애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점이 결혼이라면, 나는 20대 전부를 바쳐 실패한 연애를 한 것일까. 내가 선택한 바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와 살고 있는 부모님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서른 중반에 사위와 손주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부모님에게는 나의 이별이 어디 가서도 말 못 할 실패한 연애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실패로 정의되는 이 관계를 굳이 내 손으로 끝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스물두 살과 서른두 살이었다. 10살이라는 나이차에 주변사람들은 우리의 관계를 축하보다 걱정의 시건이 먼저였다. 남들에게 보란 듯이 잘 지내는 것을 보여주겠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시작한 연애가 12년이란 시간을 지나 헤어짐이라는 결말을 맞이했다. 이 관계의 끝을 맺은 건 나였다. 친구들과 감자탕을 먹던 그 순간부터 6개월 동안 썩 좋지 않은 기분이 나를 따라다녔다.
한 때는 그의 다정함이 좋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높은 굽에 짧은 치마, 옷은 늘 계절 상관없이 얇게 입고 다녔던 20대의 나를 위해 그는 늘 커다란 백팩을 메고 다녔다. 가방에는 여성용 회색 카디건과 240 사이즈의 슬리퍼가 들어 있었다. 운동화 끈이 풀리면, 그곳이 어디든 무릎을 꿇고 묶어주었다. 내 허리조차 숙이지 말라던 그의 배려였다. 카페에서 음료를 가져오고 반납하는 이 사소한 것조차 무겁다며 내 손으로 들게 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보살피듯 내 심경의 변화에 전전긍긍하던 사람이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너."
"장난하지 말고 어떤 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 같냐고"
"너."
"내가 사랑 그 자체야?"
"그거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는 걸."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기 하루 전 날에도 나를 사랑 그 자체라 불러주던 그였지만, 우린 서로를 위해. 아니, 조금은 이기적 이게도 나를 위해 12년 된 이 관계를 놓아야 했다.
계절의 변화에 유독 민감하던 나는 초겨울이 되면 모든 것에 짜증이 나는 철부지였다. 그와 통화할 때는 잘못하나 없는 그에게 숨도 쉬지 말라며 신경질을 부려도 오히려 그는 웃으며 계절의 변화가 이제야 실감 난다고 말하던 그였다. 가족보다 더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던 그가 점차 버거워졌다. 여전히 감자탕을 먹던 순간이 떠올라 그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좀 바보가 된 것 같아."
"왜?"
감자탕을 먹던 순간에 기분을 구구절절 나열하자 그는 오히려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언제 그렇게 컸어? 그러지 마. 내가 다 해줄게. 크지 마."
이러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서도, 그가 웃으며 말해주던 그 말이 왜 그리도 달콤했던 건지. 하지만, 나는 서른 중반이 되었는데... 그는 아직도 나를 이제 막 슬롯에 나온 스무 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었다. 그 후로도 우리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길들여져 버린 나의 모습을 이야기했지만 그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울먹이며 자라지 않길 바란다는 못된 마음을 드러냈다.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그와 연애를 통해 느낀 건 다정함이었다. 이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시작한 것도 그의 다정함 때문이었다. 그는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주었지만, 나는 도가 지나쳐버린 그의 다정함이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자랐고, 그는 나를 처음 만난 순간에 멈춰있었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사는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멈춰버린 시간이 나의 성장을 막고 있었다. 사랑은 상대방을 보호할 수 있지만, 적정선을 넘으면 성장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내가 놓은 건 사랑이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붙잡는 일이었다.
가장 나를 사랑한다 말했던 사람조차 때로는 나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것이 '아낀다'라는 이름을 하고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