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들 中
늘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던 문구였다.
인사가 인성입니다.
인사는 소통입니다.
인사는 공감입니다.
평소에도 있던 그 문구가 어느 날부터 자꾸 시선을 잡아끌었다.
왜 거슬리는지 처음엔 몰랐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부모의 강요에 떠밀려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싫었다.
무섭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했다.
나쁜 아이로 정의 내려지는 게 더 싫었으니까.
그런데 솔이 앞에서 나는 똑같이 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 문구가 거슬렸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인사가 인성입니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너는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협박처럼 읽혔다.
살아오면서 내가 본 세상은 인성과 무관하게 인사를 많이들 하고 있었다.
오히려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인사를 능숙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사가 인성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인사를 바라는 건, 결국 그 인사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순서가 있다.
인사를 받고 싶다면, 먼저 이해를 얻어야 한다.
내가 왜 당신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가.
그 이유가 납득되어야 마음이 동한다.
마음이 동해야 말이 나온다.
협박으로 얻은 인사는 그 협박을 한 사람의 것이지, 인사를 한 아이의 것이 아니다.
배려도 마찬가지다.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은 배려에 감사를 강요할 수 없듯,
인사도 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받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그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솔이에게 강요하는 대신, 고마운 것들을 함께 찾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솔이도 달라졌다.
강요하지 않아도.
강제하지 않아도.
마음이 동하면 스스로 인사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내 아이는 부끄럼쟁이가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그제야 그 문구가 다시 보였다.
인사가 인성입니다.
인사는 소통입니다.
인사는 공감입니다.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인사는 마음이다.
인사는 용기이다.
인사는 소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