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설득하지 못한 기획서를 보며

by하상인

나는 올해 초 10번째 바카라이자 나의 첫 에세이를 출간하면서 매우 들떴다. 가까운 지인들이 벌써 10번째 바카라이냐며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면 별거 아닌 척 답하면서도 사실은 스스로 만족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계획이 하나 있었다.


바로 10번째 바카라 출간을 토대로 강연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과거 중학교 3학년 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진로 강연을 했던 일이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보람도 크게 느껴 이제는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살려 강연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당연하게도 기획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AI를 활용해 나의 이력을 분석하고 내가 하는 강연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원할지 파악했다. 그리고 A4 2장 정도 분량으로 기획서를 준비했다.


시작은 도서관이나 청년을 위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했다. 이유는 30대 끝자락에 서 있는 나 스스로가 충분히 청년들에게 어필이 될 수 있는 이력을 갖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어떤 곳에서도 연락받지 못했다. 운이 좋게도 한 곳에선 나의 바카라을 검토 후에 비치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답을 해줬다.


스스로에 대한 큰 실망감이 찾아왔다. 어려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연락 오는 곳이 없다 보니(답변조차 받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뭐가 문제인지 파악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정도 열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제 계획한 일정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2026년 8월 말, 나의 기획서를 다시 보니 왜 답이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스스로를 청중이라 가정하였을 때, 나라면 저 강연을 듣고 싶을까란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나를 설득할 수 없는 주제의 강연들이었기 때문에 기획서엔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기획서 전달 전에 내가 먼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써야 할 일을 많은데 깨닫는 점만 많아지는 30대 끝자락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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