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이였던 순간이 있다

by하상인

귀여운 딸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이 아이의 미래도 그려보게 된다. 걱정이 많은 아빠라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잘 자랄지 보단 우리 딸에게 힘든 일은 없어야 할 건데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지금 이 행복한 순간, 현실만 보자며 혼잣말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문득 우리 딸의 조부모인 나의 부모님이 떠오른다. 특히 엄마 생각이 나곤 한다. 엄마는 항상 걱정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잘 될 수 있는 걸 생각해야지 왜 자꾸 걱정부터 하냐며, 엄마는 너무 걱정이 많은 게 탈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의 말에 그 말이 맞지만 부모로서 쉽게 걱정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설명을 덧붙이곤 하셨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은 계속 발생했고, 그때마다 난 위와 같은 이야길 했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 걱정은 내가 생각한 것과 겉모습은 비슷할지언정 결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누가 봐도 문제가 될 일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이는 자녀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딸을 돌보며 내가 걱정이 많다는 말을 배우자에게 먼저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곤 한다. 부모가 하는 걱정은 내가 하는 걱정과 다른 것이었는데, 그걸 우리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딸을 통해 내가 배우는 건 내가 부모로서 필요한 태도를 갖추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까지 넓어져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 딸을 보면서 그 안에서 내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우리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보이곤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나도(혹은 너도) 저런 때가 있었지”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는 말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를 바라보던 누군가의 마음까지 함께 포함된 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그 말을, 조금은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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