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도 되는 생일

이제는 딸이 기억할 차례

by호사

엄마 생일은 할머니 생신 다음 날이었다. 그 시절 며느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어머니 생신을 챙기느라 정작 당신 생일은 뒷전이었다. 엄마는 친정엄마의 딸로 살았던 시간보다 시어머니의 며느리로 살았던 시간이 훨씬 길었으니 그게 당연한 삶이었다. 할머니 생신 때 본인이 손수 끓인 미역국이 남으니 엄마의 생일엔 새 미역국을 끓이는 일은 없었다. 귀찮게 뭘 또 끓이냐며 엄마 생일엔 늘 남은 미역국을 처리했다.


아흔 살이 넘게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6년. 이제는 엄마 생일이면 막내딸이 새벽부터 일어나 익숙하게 생일상을 차린다. 전날 미리 푹 끓여 놓은 뽀얀 황태 미역국과 윤기가 반짝이는 LA갈비, 노릇하게 부친 삼색전 등등 아침부터 가득 차린 생일상을 기분 좋게 드셨다. 종일 생일다운 생일을 보낸 엄마가 저녁 무렵 느닷없이 놀라 말했다.


"어머 어제 할머니 생신이었네. 어쩌냐? 내가 깜빡했네."


일흔이 훌쩍 넘은 엄마는 시집온 이후 내내 챙겼는데 돌아가신 할머니 생신을 깜빡했다며 얼굴 가득 미안한 기색이었다. 이제는 땅속에서 눈을 감다 못해 흙과 한 몸이 되었을 할머니가 서운해했을까? 정작 배 아파 낳은 아들들인 아빠도, 마침 일이 있어 우리 집에 들렀던 작은 아빠도 할머니 생신인지도 모르는 기색인데 며느리만 기억하는 이상한 할머니 생신이었다. 친정엄마 생신보다 더 오래 챙긴 시어머니 생신을 잊었다며 미안해하는 엄마가 짠하면서도 또 답답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충분히 챙겼지 않았냐고. 죽어서 산해진미 제사상을 받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잘 챙겨 드리는 걸 할머니도 더 좋아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위로했다. 이제 내가 살아 계시는 동안 엄마 생신상 잘 챙기겠다고 마음 쓰지 말라고 도닥였다.


어느새 엄마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됐다. 7남매 집의 맏며느리가 된 후 챙길 게 많았다. 4남매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영특했던 머리도 하나둘 고장이 났다. 여행 가서 선글라스나 스카프를 잃어버리고, 잘 놓아둔다고 뒀던 통장 뭉치 놓은 곳을 잃어버린다. 수없이 가르쳐준 휴대전화 진동모드 해제하는 법을 기억하지 못하고, 매일 무심코 던져둔 휴대전화를 찾는 게 일상이다. 기억할 게 많은 인생을 살다 보니 이제는 머릿속에서도 하나둘 사라지는 모양이다.


치매 노인을 찾는 실종 경보 문자나 치매 노인 가족이 나오는 방송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딴 세상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엄마도 예외일 수 없는 노화의 길을 걷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화면 속 노인의 얼굴에 엄마 얼굴을 겹쳐 보고, 그 가족의 얼굴에 내 얼굴을 겹쳐 본다. 그러다 얼른 고개를 젓는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힘들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끔 자식들의 생일을 깜빡한다. 넷이나 되기도 하고 떨어져 살기도 하니 깜빡하는 때도 있다. 어릴 때는 그게 서운해서 ’어떻게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 생일을 잊어 버리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자식에게는 하루뿐인 내 생일이지만 엄마에게는 1년에 네 번이나 되는 자식 생일 중 하루 일뿐이라는 걸 깨달은 후 잊어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대신 음력으로 챙기느라 매년 날짜가 바뀌는 엄마의 생일은 휴대전화 달력에 박제해 두고 몇 주 전부터 생신상 메뉴를 고민하고, 미리미리 장을 본다. 대단한 생일잔치를 하는 건 아니다. 좋은 재료를 사서 내가 직접 생신상을 차리고 함께 밥을 먹는다. 엄마가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 누가 생일상을 차려줬는지 오래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엄마가 잊어가는 동안 나는 자꾸 기억해 두려고 한다. 엄마 생일은 영원히 내가 잊지 말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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