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30.
10년 동안 탔던, 정이 많이 들었던 차를 팔아버렸다.
차에 기능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일단 좀 더 큰 차가 필요해서 먼저 정리했다. 요새 새 차는 너무 비싸서 중고차로 알아보는 중인데 돈은 마련했지만 뚜벅이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서 선뜻 차를 사지 못하고 있다.
어디 이동해야 할 일이 생기면 버스를 탄다. 요새는 정류장에도 에어건이 있는 것인지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주변을 둘러볼 기회도 더 많이 생겨서 눈이 재밌다.
남들을 잘 보고 살지도 않았는데 요새는 남 뒤통수도 자주 본다. 버스에 앉아 있으면 모두 다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나처럼 밖을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다들 목이 꺾일 것만 같다. 괜히 거북목이 생기는 게 아닌 듯하다.
이어폰을 꽂고 90년대 즐겨 듣던 노래를 플레이하면 그 옛날 고소한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입가에는 항상 과자가루가 그득하고, 손톱에는 검은 떼가 껴 있었다. 선크림은 무슨, 항상 등 껍질은 뱀 허물 벗듯이 갈아엎어야 했다.
정말 즐거웠던 시절이다. 땀이 나도 동네를 휩쓸고 다니던 시절. 그립다.
둘째는 아파트 내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니다 보니 도보로 등원을 시킨다. 그다음 첫째는 항상 차로 등원을 시키고 있는데 요새 차가 없으니 문제가 생겼다.
날도 더운데 차까지 없으니 강제로 아침마다 첫째와 걸어 다니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약 10분 정도 소요되는 편도 거리.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8차선 도로 육교를 지나, 인도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은 오래된 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어린이공원까지 지나면 유치원이 보인다.
가는 길목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서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채 걸어간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꽤 많은 요소들을 지나야 유치원에 도달한다.
그런데,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
차로 등원시킬 때는 나는 앞에 앉고, 딸은 뒷자리에 앉는다. 항상 음성으로만 듣는다. 백미러를 통해서 얼굴을 확인한다. 간접적인 느낌이다.
요새는 함께 걷다 보니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다. 물론 습기 가득 찬 날씨로 인해서 손을 잡는 것 자체가 꿉꿉하지만 첫째는 손을 빼지 않는다. 나만 더운가 보다.
첫째의 광대가 벌게지고, 정수리 쪽에 땀이 고여 있는 게 보인다. 그래도 조잘조잘.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맨날 하는 소리가 있다.
"아빠, 세상에서 제일 큰 코는?"
이미 답은 알고 있다. 맨날 하는 소리니까. 그럼에도 모른 척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