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불을 켜지 않은 채였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소파에 파묻혀 있던 참이었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 화면만 하얗게 빛을 냈다. 오늘 멤버들한테 말했어요. 공연비 문제요. 두 문장 사이에 한참의 틈이 있었다. 자판 위에서 머뭇거리는 그의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꺼냈어요. 그동안은 그냥 참았는데 이번엔 못 참겠더라고요.
나는 잘했어요, 네 글자를 적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보냈다. 답장이 바로 왔다. 이게 다 소리 씨 덕분이에요. 그 문장이 화면 위에 오래 떠 있었다. 이번엔 그 틈이 없었다. 덕분이라는 말이 묘하게 부담스러웠다. 나도 뭔가 쓰려다 손가락을 멈췄다. 도현 씨라서 그래요, 하고 썼다가 그 말을 지우고 짧게 적었다. 아니에요, 덕분은 무슨.
다음 날 아침 편집회의는 늘 그렇듯 창가 쪽 낡은 탁자에서 열렸다. 동료는 삼각김밥 포장을 뜯으며 딴 데를 보고 있었고, 편집장은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며 하품을 참았다. 믹스커피 봉지로 커피를 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창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탁자 위 서류 더미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의 틈을 비집고, 며칠 전 대표가 흘려 넘겼던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이번엔 질문이 아니라 통보였다. 홍대 인디 소속사 정산 문제, 이번 호에 쓰겠습니다.
대표가 눈썹을 올렸다. 또 그 얘기야. 사정이 있다니까. 편집장이 거들었다. 다음에 하자, 저번에도 말했잖아. 사정과 다음. 익숙한 두 단어였다. 그 말이 얼마나 매끈한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매끈함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저는 이번 호에 쓸 겁니다. 소속사도 밴드도 이름은 가릴게요. 특정 사건이 아니라 업계 구조 얘기로 틀을 잡으면 될 것 같은데요. 광고주가 불편할 일도 없고요. 대표가 멈칫했다.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요즘 우리 형편 어렵다는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인디 씬을 조명하겠다는 잡지가 이런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되잖아요. 대표는 이번에도 편집장을 쳐다봤다.
편집장은 묘하게 입꼬리만 비틀고 퉁명스럽게 알겠다고 했다. 한 페이지, 이름은 가린 채로. 더 캐묻지 않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동료가 삼각김밥을 씹다 말고 눈치껏 내 쪽을 한 번 봤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눈빛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편집장이 따라붙었다. 요즘 이 얘기에 유난히 매달리네, 사심 있어요. 떠보는 투였지만 이미 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라고만 했다. 편집장은 더 캐묻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도현과 연인 관계를 알아도 아무 상관 없는데 숨길 게 뭐 있나 하면서도 여태 누구에게도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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