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비에 젖지 않고 숲은 모순을 다투지 않는다
서울의 빽빽한 빌딩 숲에 갇혀 지낼 때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기준은 선명하고 즉각적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려고 카페 밖까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보거나 사무실 중앙난방에서 에어컨 찬바람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할 때 비로소 여름이 당도했음을 알았다. 도시는 달력의 숫자가 6월로 바뀌면 곧장 에어컨을 틀고 여름을 선언해 버린다. 중간 과정이나 머뭇거림 없이 재빠른 결과에만 순응하며 다음 계절로 훌쩍 뛰어넘는다.
하지만 이곳 숲속 마을에서 맞이하는 6월의 초입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한낮의 맹렬한 열기와 해 질 녘의 으슬으슬한 한기가 한데 공존하며 내 몸의 감각을 늘 깨어있게 만든다. '조금 후덥지근한데' 싶어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이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와 '아직 여름은 아니야'라고 말을 건넨다. 창고에 넣어둔 선풍기를 이제 꺼내서 닦아야 할까 고민하며 해 질 녘 마루에 앉아 있으면 어깨를 파고드는 싸늘한 기운이 돌며 '아직은 아니야'라며 다시 나를 주저앉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숲속 날씨와 밀당하듯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단박에 변하지 않고 틈을 내어주는 자연의 머뭇거림이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 삶에도 이처럼 무언가가 완전히 결정되지 않아도 괜찮은, 유예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늘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일직선으로만 맹렬하게 달려간다고 굳게 믿으며 산다. 하지만 저녁 무렵 찾아오는 숲의 으슬으슬한 한기는 마치 시간을 다시 꽃샘추위가 흩뿌려진 초봄으로 되돌려놓는 듯하다. 시간의 조각이 이리저리 뒤섞이는 이 경이로운 감각을 마주할 때면 쉼 없이 앞으로만 내달려야 안심했던 내 안의 강박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때로는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기도 하며 둥글게 순환하는 자연의 리듬이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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