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주말이면 어디로 떠날지 설레고, 늦은 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지 앞을 서성였다. 밤새 통화를 하며 서로의 사소한 고민을 나누던 그 시절의 우리는 분명 세상의 중심에 서로를 두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마침내 우리를 닮은 천사 같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세상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완벽한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현실 육아의 문이 열리는 순간, 낭만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매일 밤마다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휑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집안 가득 쌓인 젖병과 빨래 더미를 마주할 때, 우리는 서서히 깨닫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가 단단해질수록, 정작 그 울타리를 만든 두 사람의 거리는 소리 없이 멀어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내 곁에는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 아닌 그저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육아 동지'만 남아있다.
"아이 낳고 사이가 멀어졌다"며 씁쓸하게 웃는 부부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대단한 불화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저 아주 사소하고 은밀하게 몇 가지 이유로 관계가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변화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과 시선의 변화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의 이름 대신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역할이 들어서는 순간, 서로를 향한 이성적인 매력이나 애정 표현은 사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퇴근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오늘 고생했어"라는 따뜻한 눈빛을 건네는 대신, "자기야, 빨리 와서 애 손 좀 씻겨줘"라는 지시어가 먼저 나간다.
주말 아침,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기보다 "애 아침 뭐 먹여?"라는 질문부터 던진다. 서로를 '남편과 아내'가 아닌 '육아 전담 직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연애 시절의 다정함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대화의 양은 많아진 것 같은데, 마음은 더 허전해지는 역설을 경험해해 봤을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부부의 대화는 오직 육아와 살림이라는 현실적인 주제로 완벽히 채워진다. 서로의 감정이나 내면의 상태를 묻는 말은 사라지고, 오직 당장 해결해야 할 일만 남는다.
우리의 저녁 풍경을 떠올려보자. 식탁에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대개 "어린이집 재등록 기간이 언제지?", "이번 달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 "기저귀 거의 다 떨어졌는데 쿠팡으로 주문 좀 해줘."
마치 회사에서 프로젝트 회의를 하는 것처럼 건조한 대화만 오고 간다. 오늘 내 마음이 얼마나 지쳤는지,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가장 가까운 배우자 곁에 있으면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중심이 된 삶에서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부부가 아이를 두고 둘만 외출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묘한 죄바카라감을 느낀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보살피지 않고 방치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법이다.
아이가 잠든 밤, 드디어 찾아온 고요한 시간에 부부는 무얼 하고 있을까. 밀린 집안일을 대성통곡하듯 해치우고 나면 각자 침대 양끝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기 바쁘다.
"영화 한 편 볼까?"라는 말조차 피곤하다는 핑계로 삼켜버린다. 아이를 재우고 잠깐 집 앞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조차 "애 깨면 어떡해"라는 불안감에 포기해 버리면서, 두 사람의 추억과 역사는 그렇게 멈춰 서게 된다.
부모이기 전에, 우리는 부부였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오늘부터 하루 10분이라도 부모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다시 부부로 돌아가는 연습을 시작하면 된다.
아이가 잠든 후, 혹은 출근길 짧은 통화에서 육아 이야기와 돈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대신 "오늘 네 기분은 어때?", "요즘 힘들지 않아?"라며 서로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 주는 것이다.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은 훌륭한 육아템이나 비싼 무언가가 아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부부의 건강한 관계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오늘 옆에 있는 배우자의 손을 먼저 따뜻하게 잡아주자. 우리의 시작은 부모가 아니라,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었음을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