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 이슈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없습니다. 지금 당장 직면해 있는 코로나19 등 실무 처리하기에도 바쁩니다.주된 결정 사항은 부장님 등 주요 선생님의 의견만 물어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조차 없습니다.
교육 현안뿐 아니라 이번에 비대면 수업을 준비할 때도 “너무 튀지 마라. 민원 들어온다.” “교사 간, 학급 간 너무 수업 수준의 차이를 벌리지 마라.” 등의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제가 만든 수업 자료를 공유해 드려도 ‘이런 거 만들지 말고 전자교과서 사용해라.’ ‘우리랑 차이가 나니까 외부자료 가져와서 사용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셔서 수업 연구를 이제 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2년차 초등교사(서울 강남지역, 3학년 담임교사)-
“왜 교사는 학교라는 공간에만 들어가면 교육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듣고서 너무도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이 떠올랐다.“왜 교육대학생들은 교육대학교라는 공간에만 들어가면 교육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은 교육대학교라고 다르지 않다. 이미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기관에서부터 교육현안에 대해 다루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교육대학생들도 학교 밖에서는 다양한 교육현안에 대하여 학습하고 토론도 열심히 하고 있다. 초등예비교원들의 연대체인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은 매년 하반기에 ‘참교육배움터’라는 행사를 통해 예비교원들이 현재 이슈가 되는 교육현안에 대하여 함께 고민도 하고 토론을 통해 나름의 해결바카라도 만들어낸다.
서울교육대학교 동아리 ‘모두의 세상을 위한 문을 열다, 함께참깨’, 경인교육대학교, 전주교육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교육위원회, 춘천교육대학교 자치기구 ‘미립교육연구회’, 한국교원대학교 ‘행동하는 예비교사 모임’ 등 학내 단위에서도 교육현안과 좋은 교육을 위한 학생들의 노력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논의에서 그칠 뿐 학내 전체로까지 그 논의가 확장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왜 그럴까? 크게 2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는 개인적 요인이다. 교육대학생과 신규교사들, 우리 청년들은 한 번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정치의 주체, 의사결정의 주체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 우리 청년들이라고 목소리 한 번 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리 떠들어도 일말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던 수많은 과거 경험의 반복은 우리에게 무기력을 학습하게 했다.
이는 정치권에서 우리 청년들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청년의 날 행사에서 국회의원은 거리두기를 고려한 지정 좌석에 배치했지만 정작 청년들은 의자들 사이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행사를 참관하게 했다. 경청회, 간담회 등의 이름을 붙여서 청년들을 초대하여 의견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결국 듣는 것에서 그치고 만다. 그래서 가끔은 듣는 시늉만 하며 절차적 정당성만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청년들은 그저 사진 속에서, 문서 안에서만 등장하는 ‘보여지는 존재’일 뿐이다.
학창시절 경험을 떠올려봐도 이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반장선거를 한다면서 선거 중간에 사사건건 개입을 하는 초등학교 담임교사에서부터 상벌점제 찬반 토론을 한다면서 학생들을 불러놓고 훈계하는 고등학교 학생지도부장 선생님, 교육대학교 ‘총장임용제도 개선을 위한 교수ㆍ직원ㆍ학생 공청회’에 불러놓고 의견을 제시한 학생에게 총장임용후보자 추천 위원회에 할당된 학생 1명은 그저 명목상 있는 거라면서 말 자르기를 하는 교수까지.
우리는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주체이기 보다는 객체로 전락한 삶을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말하기를 포기한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말해도 어차피 안 바뀌어.”, “말하면 괜히 피곤해지기만 해.”라는 말만 맴돌 뿐 점차 공론장에 나서는 걸 꺼려 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져 버렸다.
과연 주체로서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이 임용시험을 통과해 신규교사로 발령을 받는다고 한 순간에 교육의 주체로, 학교 운영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을까? 아무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작동원리에 의한 의사결정의 경험이 없었던 그들이 교단 앞에 섰다고 한들 하루아침에 제대로된 민주시민교육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한 이야기다. 정작 교사 개인들도 교육당국의 정바카라수립과정에서 철저히 객체로 배제되는 현실이 아닌가.
둘째는 구조적 요인이다. 교원양성기관이든 일선 현장학교든 학내 의사결정구조가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학 내 최고심의기구는 대학평의원회다. 물론 여기에도 법적으로 학생위원이 참여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학생대표들이 주로 참석한다. 하지만 문제점은 의결과정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한다고 한들 당연직 교수와 일부 교수, 또는 일부 직원들의 표결결과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렵게 의결과정에서 학생의견이 반영된 안이 통과가 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심의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총장의 강력한 의지’를 넘지 못한다. 현재 대학평의원회의 존재는 ‘제왕적 총장제도’를 정당화하는 거수기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모 교육대학교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사운영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참관마저 거부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결정과정에 대한 공개를 거부했고 회의록마저 보여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2학기에는 학사운영비상대바카라위원회라는 기구를 신설했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안에 대한 심의만을 진행했을 뿐 최종 결정권한은 교무운영위원회에 있었다. 심의과정에서는 학생대표의 문제제기에 오로지 안된다는 말로만 일관하였고 ‘보여주기식’ 학사운영비상대바카라위원회는 그마저도 딱 1회 개최하였다. 학창시절 청년들이 정치적 무기력을 학습하던 그 경험들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구조적으로 교육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운영과 학사일정 결정과정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대학생들이 교육대학교에서 교육현안을 토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학교현장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교육회의 청년특별위원회 청년ㆍ청소년 자문단 교사확대회의 첫 모임에서 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윗분들에게 여기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반영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달라.”였다. 일선 현장교사들이 정바카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논의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목소리가 소위 ‘윗분’들에게 닿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정바카라에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다.
두 가지 요인에 대한 해결바카라은 명확하다. 현장교사와 교육대학생을 정바카라결정과정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정바카라이 시급하다. 우선 앞으로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그 위원으로 초ㆍ중등교사와 교육대학생, 청(소)년 대표를 포함해야 한다. 또한 각 주체들의 대표를 위원으로 포함하는 것과 함께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일방적으로 3개월간 의견 듣기로 끝나는 핵심당사자 숙의회의가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고 숙성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진짜’ 숙의민주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교원양성기관 내에서는 예비교원들이 삶 속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을 받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모든 결정과정에서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이 아니겠는가? 우선 심의기구에 지나지 않는 대학평의원회 내 평의원에게 법적지위를 보장하고 의결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나아가 총장직선제 등 학내 의사결정구조에서 학생, 직원, 교수(조교, 강사)에게 3분할 원칙을 적용했던 69년 독일 수준만큼의 획기적인(어쩌면 오히려 늦은)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교원양성기관에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대학공동체를 실현해야만 학교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