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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학원 순례 누구를 위한 인정 욕구인가요?

아이의 등 뒤에도 드리워진 부모의 그림자.

by테라

유아 교육 일번지라 불리는 이곳의 오후 풍경은 늘 바쁘고 숨 가쁘게 돌아갑니다.


아이들은 유치원 정규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엄마 손에 이끌려 노란색 셔틀버스나 학원 승합차로 이리저리 옮겨 탑니다. 영어 학원을 시작으로 사고력 수학 학원과 코딩 학원을 거쳐 수영이나 미술 같은 예체능 학원까지 하루에도 서너 군데의 학원을 순례하듯 맴도는 아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래고 지쳐 잠든 아이를 깨워 다시 다음 학원 교실로 밀어 넣는 안타까운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주고 싶다는 명목으로 그토록 촘촘하고 숨 막히는 스케줄을 짜놓습니다.

유명하다는 학원의 입학 설명회마다 구름 떼처럼 몰려들고 수개월 전부터 대기 번호를 받아가며 치열한 레벨 테스트를 준비합니다.


현장에서 이 과열된 학원 순례 현상을 지켜보며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부모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비뚤어진 인정 욕구인지 무거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굳게 믿지만 그 마음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유명 어학원의 가장 높은 반에 합격하거나 뚫기 어렵다는 수학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

곧 엄마의 정보력과 능력을 증명하는 빛나는 훈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네 엄마들이 모인 온라인카지노 모임이나 SNS 공간에서 우리 아이가 어떤 학원에 다니고 이번 달에 어떤 레벨을 받았는지를 은근히 내비치며 타인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즐깁니다. 아이가 받아온 높은 테스트 점수는 곧 부모인 내가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있다는 짜릿한 안도감이자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달콤한 증명서로 둔갑합니다.

내 아이의 화려한 인지적 성취를 통해 부모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은밀하고 강렬한 욕망이 학원 순례라는 거대한 쳇바퀴를 맹렬하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작 그 무거운 쳇바퀴 위를 헐떡이며 달리는 아이들의 내면은 철저하게 메말라갑니다. 영문도 모른 채 어른들이 정해놓은 복잡한 동선을 따라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끌려다니는 동안 아이의 뇌는 엄청난 피로와 스트레스에 짓눌립니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엉뚱한 호기심을 탐구할 시간은 단 일 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오직 정해진 진도를 빼고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 위한 기계적인 훈련만 반복할 뿐입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눈치 빠르고 똑똑한 이 아이들이 부모의 조건부 사랑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높은 반에 배정되었을 때만 엄마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고 그렇지 못할 때는 서늘한 실망감이 드리워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온전히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체면을 세워주는 전시용 트로피일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을 안고 매일같이 무거운 학원 가방을 멥니다.


이 뼈아픈 불균형을 마주할 때마다 부모님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기보다 그 지독한 불안과 엇나간 사랑의 방향이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치열한 경쟁 슬롯에서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이의 성공을 돕고 싶다는 맹목적인 희생이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교육 시장의 교묘한 상술과 맘카페의 끝없는 비교 문화 속에서 중심을 잃은

부모님들은 아이를 사랑할수록 오히려 아이의 숨통을 조이는 역설적인 비극에 빠져들고 맙니다.


훌륭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절박함이 타인의 시선에 기대어 아이의 학원 레벨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서글픈 인정 욕구로 변질되어 버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내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단단하게 자라기를 원하신다면 이제 그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학원 순례의 사슬을 부모님이 먼저 끊어내 주셔야 합니다.


당장 오늘부터 동네 엄마들과 모여 학원 레벨과 진도를 비교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핑계로 포장된 소모적인

대화에서 과감하게 빠져나오십시오.




내 아이의 성취를 남에게 자랑스레 증명하려는 그 모든 얄팍한 허영심을 굳건하게 내려놓고 오직 아이의 진짜 속마음에만 온전히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 오늘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어느 반으로 올라갔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대신 오늘 제일 재미있었던 놀이는 무엇이었는지 혹시 답답하고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아이의 감정을 먼저 다정하게 안아주십시오. 네가 높은 반에 가지 않아도 훌륭한 점수를 받아오지 않아도 너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아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을 매일 다정한 언어로 속삭여 주셔야 합니다.


유명 학원의 높은 레벨이 결코 내 아이의 단단한 인생을 바카라임져주지 않으며 부모의 훌륭함을 대변하는 훈장도 될 수 없습니다.


부모의 불안과 허영심을 덜어낸 그 텅 빈 시간 속에 아이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마음껏 뛰어놀며 멍을 때릴 수 있는 진짜 여백을 허락해 주십시오.


촘촘한 학원 스케줄 대신 따뜻한 저녁 식탁에서 눈을 맞추며 오늘 하루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 평범하고 느슨한 일상이 아이의 정서를 튼튼하게 키우는 가장 위대한 영재 교육입니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인정 욕구를 거두어낸 그 안전하고 포근한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내 아이는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단단하고 반짝이는 자신만의 삶을 씩씩하게 걸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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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대지를 뜻하는 라틴어, 테라로 돌아갑니다. 생명력과 든든한 자연의 힘 안에서 마음의 씨앗을 가꾸고 내면의 회복을 돕는 교육과 심리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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