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세 번째 독서모임 발제문

by노충덕

2026. 7.11(토) 15:00~18:00 세종 센텀뷰 아지트에서


https://trevari.co.kr/meetings/topics?clubID=173913bf-9eae-4671-9512-745149497518&order=3


글쓰기와 말하기의 본질을 하나의 축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예를 들어 봅니다. 스님의 강설은 단순히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하나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사람마다 “아, 결국 이 말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지점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소설은 허구를 통해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를 쓰더라도 독자는 “내 이야기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칼럼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정확한 기본 구조입니다. 칼럼은 사실을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시각을 바꾸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좋은 칼럼은 새로운 정보를 많이 주지 않아도, 익숙한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스님의 강설은 흩어진 삶에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는 일, 소설은 허구를 통해 인간의 진실을 보여주는 일, 칼럼은 현실의 사례를 통해 하나의 관점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셋 모두 결국 ‘많은 것에서 하나를 찾는 작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강설은 수많은 삶의 문제를 하나의 진리로 묶고, 소설은 수많은 감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으며, 칼럼은 여러 사례를 하나의 주장으로 묶습니다. 결국 글쓰기의 장르가 달라도 핵심 능력은 비슷합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일맥상통하는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에 철학까지 포함시키면, 철학은 “세상은 왜 이런가?”라는 질문을 개념으로 정리합니다. 철학은 개념으로 말하고, 불교는 깨달음으로 말하며, 소설은 이야기로 말하고, 칼럼은 논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네 가지 모두 인간과 세상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려는 작업이지요. 우리 독서 모임에서 다양한 바카라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은 글을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봅니다.


아이스브레이크

1. 이 작품을 읽고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는?

2.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을 때 주목한 점은? (무비판적 독서 지양)

3. 사건의 변곡점(카타리나가 가장 절망했을 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인물 탐구

4. 카타리나 블룸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 매력을 느낀 등장인물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카타리나 블룸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거나 호감을 보이는 인물과 그녀를 도구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인물을 구분해 보면 읽기가 휠씬 쉽기에)

5. 카타리나에게 가장 강한 호감과 매력을 느낀 인물은 누구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줄거리보다 인물들의 관계와 시선을 읽으려는 의도임)

6. 카타리나를 존중하는 인물들을 2명만 찾아본다면 누구이고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다음 질문을 고려)

7. 카타리나에게 일종의 존경을 느끼는 인물도 있다. 그는 누구이고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앞 질문을 고려)

8. 후베르트 블르루나 변호사태도는 어떻게 읽었는가? 후베르트 블르루나의 행동의 출발점은 무엇으로 보는가?

9. 카타리나의 '매력'은 무엇인가?

10. 황색언론은 카타리나의 매력(장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카타리나에게 진정한 호감을 보인 인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를 오래 알고 존중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녀를 믿으려 한다. 반대로 그녀를 가장 심하게 공격한 사람들은 정작 그녀를 거의 알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현재도 유효한가”를 생각하기

11. 작품의 시대 배경은 어떠했는가? (폭넓게 1970년대 초 독일의 슬롯 분위기를 알기)

12. 기자 개인의 바카라임과 언론사 조직의 바카라임 중 어느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나?

13. 만약 소설을 읽지 않고 기사만 접한다면 카타리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작품이 비판하는 '언론 프레임'을 체감하기)

14. 작가는 ‘보고서’나 ‘수사 기록’처럼 객관적인 형식을 택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이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15. 카타리나의 마지막 행동은 이해할 수 있는가, 아니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가?

16.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중 어느 가치가 더 우선되어야 하는가?

17. 오늘날이라면 카타리나는 SNS를 통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까?


사람을 직접 경험한 관계는 신뢰를 낳고, 사람을 이야기나 기사로만 접한 관계는 쉽게 낙인을 찍는다. 이 점이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으로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


확장하기

18. “이 작품의 절정은 총을 쏘는 순간인가, 아니면 독자가 카타리나의 절망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인가?”

19.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일자별로 재구성해 봅니다.

20. 이 작품이 지금도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1. 주제의 연결성을 고려해 이어 읽을 바카라에는 무엇이 있을까?(개인은 무엇 때문에 파멸하는가?)

- 조지 오웰의 『1984』 : 국가가 기억과 언어를 통제하는 모습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 슬롯는 실제 행동보다 이미지를 심판한다. (왜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는가)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 : 왜 평범한 사람들이 선전에 휘말리는지

22. 한국에서 최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가장 닮은 사례, 즉 “언론 보도가 사실 확인보다 앞서 개인을 범죄자·비도덕적 인물로 규정했고, 그 결과 개인의 삶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사건”은 무엇이 있는가?

23. 『카타리나 블룸』이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가해자는 신문 기자일까, 유튜브·SNS·온라인 커뮤니티를 포함한 ‘디지털 여론’ 전체일까?


마무리


화면 캡처 2026-07-09 19423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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