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변화를 위해서는 뼈아픈 상황을 겪어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이번 월드컵은 내 평생 중 가장 관심이 적게 갔던 월드컵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94년 미국 월드컵부터 지난 카타르 월드컵까지, 한국 경기는 다 봤었다. 새벽에 해서 온전히 못 본 적은 있어도 최소 후반전 이상은 봤었고, 심지어 군대에서도 놓치지 않았었다.
이번 월드컵은 시간대가 딱 일과시간 중이었기에 생중계를 보기 힘든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걸쳐서 할 때도 굳이 보지는 않았었다. 일하는 시간대라는 특성 외에 관심도가 떨어진 이유는 축구협회와 둘러싼 여러 잡음들이 컸던 듯하다.
나는 어떤 일에서든 과정을 중요시한다.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희생당했는데 결과가 좋다고 상쇄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기에 한국이 경기를 이겼으면 하는 마음은 변하지는 않았지만은,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의 여정에서 부정적인 장면들을 많이 봐 관심이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뚜껑이 처음 열린, 첫 경기를 이겼을 때에는, 내가 부정적으로 봤던 일부 장면은 나의 선입견이나 잘 못 봤던 것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보란 듯이 승승장구해서 세간의 우려와 시선을 일축시키는 서사가 나왔으면 했다. 2002 월드컵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평가전 등에서 5대 0으로 패배한 히딩크호에 대해 굉장히 격한 우려를 표했지만 결국엔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가까이는 벤투호를 둘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점들이 있었지만 극적인 16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냈고 여론을 반전시켰다.
이번 홍명보호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64개국으로 늘어났지만 32강에 들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약체란 없지만 상대적으로 강팀이 몰린 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결과는 뼈아프다. 심지어 3등도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이마저도 실패했다.
한때 라이벌인 같은 아시아국 일본이 알제리를 3대 0으로 이겼는데 같은 아프리카 국가인 남아공에 우리는 1대 0으로 졌다는 점도 대비되는 점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다. 게다가 손흥민과 이강인 등을 비롯한 세계적인 팀에서 뛰는 선수가 있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멤버였는데 조별리그 탈락은 굉장히 안타깝고 뼈아프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다. 곪아 터질 일은 곪아 터져야 하는데, 소기의 성과로 인해 이것들이 덮일 수가 있다. 그럼 혁신과 변화 없이 계속 현상유지 되며,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없게 된다. 부정적인 과정 속에서 결과 혹은 성과를 냈다면 지지부진한 상황이 쭉 이어졌을 텐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의 결과는 반드시 혁신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가장 아픈 이 순간이 한국 축구에 있어 가장 큰 전환의 기회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위기를 극복해 왔다. 오뚝이와 같이 위기 속에서 늘 일어서왔던 민족이다. 한국 축구가 다음 행보에서는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비단 한국 축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슬롯, 경제 등 모든 분야에도 관통하는 진리다. 가까이는 온라인 게임 내와 주변 인간관계에서도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큰 상처는 어떻게든 봉합해서 가기보다는 터뜨려 새로 꿰맬 필요가 있다. 균열이 심한 건물은 계속 수리하기보다는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더 큰 참사를 막고 변화를 위해서는 터져야 한다.
더 나은 상황을 위해 곪은 것을 터뜨리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터뜨리는 자는 당장은 따가운 시선을 받겠지만 누가 뭐래도 변화의 주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