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과 자연이 조화로우며 조용하고 고즈넉한 백악구간 성벽길
한양도성 백악구간의 북악산을 오르는 갈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한양도성 성벽을 따라 걷는 방법은 크게 창의문 방향에서 오르는 방법과 성북역사문화센터 방면에서 올라가는 길 두 가지가 있는데 꾸준히 오르기는 후자가 괜찮다.
왜냐면 창의문에서 시작되는 길은 가파른 계단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이 길만 오르고 나면 남은 길은 내리막길 중심이라는 장점이 있긴 하다.
아무쪼록 초여름을 맞은 그제 평일 오후에 전자의 방향에서 북악산을 올랐다. 앞만 보고 오르지 말고 때때로 뒤도 살펴보아야 한다. 인왕산과 저 멀리 북한산 방면 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러 번 올라봤음에도 이 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날은 시간적 여유가 많았고 무리할 이유도 없었기에 계단 중간중간에 털썩 앉아 수시로 쉬었다. 첫 번째의 '돌고래 쉼터'가 공사 중이어서 계단 앉거나 기대어 두 어 차례 쉬었고 정상에서 가까이에 있는 두 번째 '백악 쉼터'에서 는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쉼터에서 내가 머무르던 15분여 동안 계단을 오르는 인적도 드물었거니와 쉼터 내에서는 나 혼자 독점으로 머물렀기에 사색을 즐기기에 좋았다. 아무도 없었기에 몇 분 드러누우며 쉼을 즐겼다. 속세의 고민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었고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초여름 오후라 오를 때 땀이 나긴 했지만 쉼터 즈음부터는 나무 그늘 아래의 기온이 낮았고 바람도 불어 시원했다.
백악 쉼터에서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곧 이 오르막이 끝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힘을 낼 수가 있었다.
이내 오르막의 정점을 지나 완만한 길이 나왔다. 1.21 사태 소나무는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장공비의 습격과 총탄에도 이겨낸 이 소나무에 경외심이 들었다. 북악산은 김신조 등 무장공비 습격 사건 이후 2000년대 초까지 40년 가까이 민간에 통제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생태의 보전이 잘 이뤄졌다.
소나무를 지나면 2000년대 초 북악산의 개방을 기념해서 조성한, 북한산의 백운대의 대비되는 이름의 '청운대'가 나온다. 청운대에서는 경복궁을 비롯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잠시 그 전경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완만한 북악산 능선 성벽길을 걸어 나갔다.
산 능선의 성벽길인지라 알록달록한 꽃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소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으며 이에 사계절 언제에 오더라도 녹음의 여유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평일 초여름인지라 인적이 드물어 이 공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어 마치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걷다 보니 한 문루가 눈에 들어온다. 숙정문이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에 비해 규모가 작고 인지도는 낮지만, 현재 유일하게 양쪽으로 성벽이 길게 이어짐을 간직하고 있는 한양도성의 북문 숙정문은 오늘도 위풍당당하게 나를 반겼다.
북쪽의 음습한 문이라 하여 그 옛날에는 사람이 통과하지 않았고 문이 닫혀 있곤 했지만 이제 이 문은 후손들에게 점점 더 친숙한 문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이 있는 성벽은 그 축조 시기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기에 각기 다른 모습의 성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성돌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모습을 잃지 않고 500년을 버텨 온 한양도성이다. 우리 선조들이 성벽 길을 따라 돌며 소원도 빌고 나들이도 즐긴 순성놀이를 한 그 길을 걷고 있노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성벽을 넘어 마을과 저 멀리 서울 도심과 더 멀리의 산까지의 조화를 이루는 그 풍경은 참으로 일품이다.
인왕산만큼 전망이 탁 트인 지점이 많지 않고, 낙산처럼 오르기 편하지 않으며, 이 두 산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남산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조용하여 자연의 소리를 더 느낄 수 있고 사색과 힐링을 하기에는 북악산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속세에서 벗어나 마음을 정화하고 사색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분들이라면 조금 덥지만 인적이 드문 지금 방문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한양도성 내사산 중 연초에 인왕산을 오를 때는 인왕산이, 4월 남산을 올랐을 때에는 남산이, 5월 낙산을 올랐을 때에는 낙산이 최고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월인 지금부터는 어제 오른 북악산(백악산)이 단연 최고다.
최근에 올랐음을 논외로 하더라도 세상의 번뇌와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오르고 싶을 때에 (시간이 촉박할 때는 낙산을) 시간적 여유가 될 때에는 북악산을 찾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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