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이 반복될지라도

by고요한동산

요즘 왜 글을 안 써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늘 같은 날의 반복인걸요.


질문을 던진 작가님은 나에게 밖으로 나가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아이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만개한 꽃과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이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도 흘긋 살폈다. 그럼에도 길에 나타난 변화가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다른 이들은 봄햇살 아래 핀 꽃 한 송이에도, 피부를 스치는 공기의 변화에도 삶의 철학을 담아내던데..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렸다. 고기를 굽고 미역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다. 밥을 늦게 먹는 둘째를 기다리며 시간을 뒤쫓았다.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숙제를 했다. 나는 설거지를, 아이들은 공부를. 그릇을 씻으면서도 뒤에 더듬이를 세우고 딴짓하는 아이들에게 달그락 잔소리를 투척했다.


9시 정각. 늘 이 시간이 되면 심장이 조여왔다. 아이들은 여유롭게 9시를 지나 10시를 유유히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10시에 가 닿지 않기 위해 "빨리해." "집중해." "딴짓하지 마." 3종 세트를 랩하듯 반복했다.

드디어 숙제 끝. 앞으로 남은 것은 씻기!

이제 씻어라. 씻어라. 씻어라..

씻.어.라!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야.


'그래그래. 씻긴 씻으니까. 그래그래. 자긴 자니까.'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겁게 할 말을 눌렀다. 결국 하루를 꽉 채우고 아이들은 잠들었다.



컴퓨터를 켰다. 밖에서 느꼈던 감각은 이미 사라지고, 남은 건 피로뿐이었다.

...

그러다가

...

꼬맹이들이 뱉은 말과 다양한 표정을 떠올렸다. 시간에 버둥거리며 놓친 많은 것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질문을 던지면 나는 야멸차게 끊어버리곤 했다. 시무룩해져 내려오던 아이들의 눈과 입을 마침내 알아차린 시간은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였고, 뒤늦은 후회를 남겼다.

아이들의 여유를 빼앗은 건 나였고, 내 여유를 빼앗은 건 시간이었다.



작은 아이는 별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 했다.

"엄마, 태양보다 1000배 정도 큰 별이 있는데 그 별 이름이 <베텔게우스>래. 지구에서 640광년 떨어져 있대. 근데 베텔게우스를 태양에다가 놓으면 지구도 목성도 다 삼켜버린대."

"엄마, 골디락스존 알아? 별 주변에서 이 범위 안에 있으면 생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대."

"엄마, 별들이 폭발하고 블랙홀이 되고 블랙홀과 블랙홀이 만나 충돌하고 이게 계속 반복되다가 우주는 어둠만 남는대."

나는 아이가 단어를 외워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했다.


"엄마, 이 노래 들어봐."

틈새를 뚫고 큰 아이가 노래를 틀었다.

"이 곡은 너바나의 마지막 곡이야. 그리고 이 곡은 너바나의 첫 번째 곡이야"

큰 아이는 너바나에 심취해 있다. 너바나의 첫 번째에서 마지막까지를 아는 너바나 덕후.

아이는 일렉기타의 거칠게 찢어지는 소리를 좋아해 일렉을 시작했다. 그래서 제대로 긁어주는 너바나를 사랑한다.


다른 두 별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계속해서 틈새를 노렸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는 귀가 두 개야. 그러니까 동시에 이야기해도 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다 듣고 있어."


아이들의 말을 놓칠까 눈을 치켜뜨고 집중했다. 왼쪽 귀와 오른쪽 귀로 쏟아지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머리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듣고 말했다.

"다 들었어. 그래그래. 그렇구나."


정확한 1초가 만드는 24시간의 하루는 세상이 두드려주는 메트로놈이다. 흐트러지지 않는 박자가 있어 오늘을 걷고, 내일도 걸을 수 있는 거겠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를 새기고, 퍼지는 공기를 기억한다면 내일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규칙적인 박자 위에 아이들이 만든 불규칙한 리듬, 나는 그 위에 멜로디를 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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