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흔들린다

나무를 바라보다 든 생각

byIro


그동안 밥 먹고 앉아서 글만 써서인지 자꾸만 배가 나오는 것 같다. 이제는 먹고 나면 좀 움직여야겠다 싶어 점심에 산바카라을 하러 갔다. 걷다가 옆을 보니 나무가 언제 그랬는지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다. 짧은 가을이라는 걸 알기에 눈에 더 담아두고 싶다. '낙엽이 금세 떨어질 텐데, 주말엔 남산 산바카라로에 가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걷다 보니 작은 산 같아 보이는 산바카라로가 나온다. 산바카라로 사이로 나무가 울창하게 뻗어있다. 새소리를 듣기 위해 한쪽만 꽂은 이어폰으로 숲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이 나온다. 한쪽으로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들린다. 여유가 느껴진다.


트랙을 돌다 보니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바카라을 운동처럼 힘들게 돌려는 마음을 부여잡고,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모니터 화면에 뻑뻑해진 눈을 잠시 감아본다. 다시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비가 오진 않지만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워 더 여유로운 날씨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왼쪽 오른쪽 느리게 춤춘다. 느린 음악과 함께하니 더 느긋해진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뭇잎에 이어진 나뭇가지까지, 아니 더 굵은 줄기까지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보았지만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처음 알았다. '어? 나무줄기도 바람에 흔들리네?' 하며 줄기를 따라 더 내려가다 보니 어느 부분부턴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무가 저렇게 높이 뻗어있어도 부러지지 않는 것은 흔들리기 때문이었구나. 그렇게 마음껏 바람에 흔들릴 수 있었던 것은 땅에 자리 잡고 있는 튼튼한 뿌리 덕분이겠구나'



한동안의 바카라 쓰기가 끝나고, 갑자기 많아진 시간(생각보다 많지도 않다)에 조금은 혼란스럽다. 애완동물도 키우고 싶고, 이것저것 사고도 싶고, 안 보던 유튜브 영상도 자꾸 보게 되는 걸 보면 허전한가 보다. 알고리즘을 따라 흘러 흘러 김연아의 유퀴즈 출연 영상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이올린 김연아다. 공항에서 프랑스 유명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린 연주를 한 영상이 1억 뷰를 달성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역시나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천재스럽다. <베를린 라이징스타 그랑프리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9살의 나이로 1위를 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천재 같아 보이는 모습 뒤에도 역시나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4살 때부터 써왔다는 연습일지에는 매일 연습한 시간이 빼곡히 쓰여 있는데(마치 방학계획표처럼 동그란 모양), 그중에서도 기본기 연습시간이 유독 눈에 띈다.


어릴 적 나는 뭐든 배우고 싶어 했다. 그림도, 첼로도, 스키도, 미술도, 드럼도. 그리고 뭐든 빨리 배우고 싶어 했다. 기본기는 오래는커녕 건너뛰기 일수였다. 재미없는 기본기 말고 음악 한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배운 모든 것들은 아슬아슬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았다. 한 곡을 연주해도 제대로가 없었다. 그렇게 뭐든 대충 했던 것 같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도 저 사람처럼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 줬으면 좋겠다, 내 생각을 잘 전달하고 싶다' 이런 생각만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던 것 아닐까? 매일 악기를 연습하듯, 매일 글 쓰는 것을 연습하는 것. 그게 좋은 글을 쓰는데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 싶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오래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



바이올린 김연아에 이어 피겨퀸 김연아의 유퀴즈 영상까지 다시 보았다. 유명한 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스트레칭하는 김연아에게 PD가 무슨 생각하면서 하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다. 동기부여 명언으로도 많이 알려진 그 대답의 진실에 대해 김연아는 이렇게 얘기한다. '집에 가고 싶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되나'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대답이었다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좋게 포장을 해주었던 거라고.


좋아하는 일이지만 하다 보면 하기 싫을 때도 있고, 또 힘들 때도 있다. 그러다 한 번씩 '아,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하기로 했고, 해야 할 일들이 쭉 이어져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할 여유도 없다. 진짜 그냥 하는 거다. 강철 같아 보이는 김연아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에 괜히 위로가 된다.


되든 안 되는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써보자. 매일 기본기를 다진다 생각하고 막 써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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