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여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 외전 -
영포(英布)는 마음이 영 찜찜했습니다. 왕이 되고 싶었던 항우가 초나라 왕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항우가 시키니까 하긴 했는데, 이건 명백한 모반이라 걸리면 얄짤없이 멸문입니다.
영포는 초나라 왕을 죽이고 동네 산적들의 소행으로 꾸몄지만, 초나라에는 곧바로 영포가 왕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엄훠, 영포가 대체 왜 왕을 막 죽이고 그랬데요? 나는 1도 모르는 일이에여.‘ 라며 발을 뺐습니다. 대충 봐도 눈치가 뻔하니까 다들 유야무야 넘어가긴 했는데, 자칫하면 영포만 “킹 슬레이어”라는 오명을 쓰고 멸문당할 판입니다. 맘이 쫄린 영포는 ‘왕을 습격한 산적이 왜때문에 나랑 똑닮인건지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며 뻗댔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떵 밟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포는 서둘러 자기 영지로 돌아가며 항우 조카 십팔색크레파스를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항우는 제나라를 치겠다며 영포에게 나와서 도우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물론 접때는 내가 참 미안했다. 애 많이 썼다.. 이런 말 한마디가 없었지요. 이번에도 재주는 자신이 부리고 욕만 덤태기로 먹는 게 아닌가 싶었던 영포는 ‘내가 갑자기 큰 병이 나서 오늘내일한다.’는 핑계를 대고 군사들만 쬐끔 보냈습니다. 항우는 살짝 빠직했지만,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그냥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유방이 초나라의 수도 팽성을 들이칠 때도, 영포는 팽성을 지키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딱히 항우가 팽성을 지키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솔직히 유방의 군사가 56만 대군이라는데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항우랑 계속 한 편을 먹는 게 맞나…’ 이게 영 긴가민가 했습니다.
유방이 팽성을 쳤다는 소식에 뚜껑이가 열린 항우는 득달같이 달려와 한나라의 대군을 박살내고, 유방을 뚜까 패서 쫓아냈습니다. 유방은 가까스로 형양까지 도망쳤는데 항우가 쪼르르 쫓아와 형양을 포위하고 유방에게 화살까지 맞혀 버렸죠. 당연히 영포는 간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돕는 척이라도 좀 할걸.‘ 항우가 유방을 치고 나면 손 놓고 있었던 영포는 공중에 붕 뜰 테고, 그럼 진짜로 왕을 살해한 죄를 물어 멸문당할 수도 있습니다. 영포는 잠깐 어? 어? 하는 사이에 모반죄와 괘씸죄 사이의 외통수에 걸려 버렸습니다.
그때 항우의 사절과 유방의 사절이 동시에 영포를 찾아왔습니다. 항우의 사절은 ‘요즘 너 맘에 안 든다. 우리 앞으로는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일까?’라며 갈궜고, 유방의 사절은 ‘존경하옵는 영포님, 너님 몸값이 지금 쵝오입니다. 이짝으로 오시면 제가 연봉을 따블로 쳐드릴랍니다.’ 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솔직히 영포는 “띠블”에 이미 넘어갔지만 그래도 편을 바꾸는 일이라 머뭇거리자, 사신은 칵퉤칵퉤 하더니 결정적 한방을 날렸습니다.
“야. 항우가 이기면 너, 살 수 있겄냐?"
使楚勝漢, 則諸侯自危懼而相救 | 만약 초나라가 한나라를 이긴다면, 이를 두려워한 제후들은 서로를 돕기 위해 마주할 것입니다.
이게 뭔 소린고 하니, 만약 유방이 패망하고 항우가 이긴다면 항우는 앞으로도 기분 내키는 대로 창칼을 휘두를 것이고, 그럼 쫄린 제후들은 제 살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혼자서는 항우와 싸울 수 없으니 함께 뭉쳐 일어설 텐데, 그 와중에 네 놈 모가지가 과연 제자리에 붙어 있겠냐..’는 소리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영포는 항우가 보낸 사신의 목을 치고, 한나라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영포가 배신하자 항우는 곧바로 군사를 한 줄기 보내 영포를 쳤고, 대판 털린 영포는 산길로 돌아 돌아 겨우 유방을 찾아갔습니다. 항우는 영포의 땅과 군사들을 모두 거두고, 영포의 처자식과 가족들을 잡아 모두 참했습니다. 일족이 멸문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영포는 피눈물을 흘리며 반드시 항우를 죽여 이 원한을 풀겠다 다짐했습니다.
팽월도 원래는 항우의 편에서 여러 활약을 했습니다만, 항우가 천하를 잡는 뒤에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공이 작아서가 아니라 팽월이 흙수저로 출발한 도적떼 두목이었던 까닭입니다. 팽월은 크게 상심했지만, 그렇다고 항우에게 대들 수도 없는 일이라 꾹꾹 눌러 참고 있었습니다.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팽월은 만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제나라에 의탁했고, 궂은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제나라는 팽월을 시켜 옛 제나라의 땅들을 되찾게 했습니다. 그러다 항우와 제나라가 으르렁거리자, 자연스레 항우와 팽월도 으르렁거리게 되었지요. 눈치가 칼 같은 유방은 찬스를 외치며 팽월에게 온라인으로 장군 임명장을 보냈습니다.
한나라 장군 명함을 판 팽월은 초나라에 정말 끝도 없는 짤짤이를 넣었습니다. 항우와 힘으로 맞붙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팽월은 초나라가 항우 원탑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팽월은 딱 밤 한 대를 세게 때리고, 바짝 엎드려 자리를 피한 다음, 다시 불쑥 나타나 또 딱밤을 날리고 튀었습니다. 뭔가 치명적인 타격은 아닌데, 맞으면 기분이가 확 나빠지면서 묘하게 힘이 빠지는 전술이지요. 팽월은 승질난 항우가 쫓아오면 정말 죽자고 도망치고, 제풀에 지치면 다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항우에게 무한 짤짤이를 넣었습니다.
항우와 싸우던 제나라도 아직 앙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항우가 진나라를 칠 때, 제나라는 집안싸움에 바빠서 딱히 항우랑 뭐 도움을 주고받은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패왕이 된 항우는 제나라를 셋으로 쪼개서 각각 왕을 임명해 보냈습니다. 제나라를 실제로 먹고 있던 사람 입장에서는 패왕이고 나발이고 지가 뭔데 갑자기 제나라 왕을 바꾸니 마니, 땅을 쪼개니 마니 참견질인가 싶었지요. 결정적으로 항우는 백성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서 제나라의 백성들도 항우라면 아주 이를 갈았습니다. 유방이 초나라를 쳐들어 오는 바람에 항우는 제나라와 대충 수습하고 돌아갔지만,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 또 쳐들어올게 뻔했습니다. 제나라는 어금니 꽉 깨문 채 항우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초한전의 판세는 한신의 손에서 뒤집히고 있었습니다. 항우가 보기에 영포는 힘은 좀 들겠지만 못 잡을 상대는 아니고, 팽월도 뭐 몹시 귀찮은 닝겐 정도였습니다. 제나라야 솔직히 자기 땅 지키기에도 급급한 입장이지 초나라를 쳐들어 올 깜냥은 아닙니다. 그나마 한나라 대장군이라는 뽀송이가 인물이라던데, 막상 싸워보니 개뿔 이름뿐인 허당 같았습니다.
하지만 뽀송이라는 평가에 가려진 진짜 한신은 장량이 깜딱 놀라고, 소하가 두려워하며, 범증이 벌벌 떤다는 명장이었습니다. 아직은 칼보다 혓바닥이 더 긴 샌님 아니냐는 소리를 제법 듣고 있었지만, 이 비리비리하고 허여멀건 뽀솜이는 슬슬 자신이 얼마나 대다난 명장인지 속성으로 증명할 참이었습니다.
기원전 205년.
마침내 한신은 단독으로 군을 꾸려 북벌을 시작했습니다.
덧 붙이는 이야기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사실 영포의 멸문은 초나라 왕을 죽였을 때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항우나 영포나 어쨌든 초나라의 장군이니 왕을 죽인다는 것은 작게 봐서는 모반이고, 크게 봐서는 나라 말아먹는 일이죠. 위에서 시켰으니 나는 바카라임 없다고 할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항우를 말렸어야 했습니다. 2천년 전 사람한테 요즘 기준을 들이미는게 맞나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당시에도 무쓸모한 만행이라고 반발이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항우를 응원했었는데, 나이를 쬐끔 먹고 나서 보니까 그나마 유방이 좀 더 나은 그릇이겠다 싶습니다..
to be continue..
P.S.
일러스트를 AI님께 바치고 피규어로 바꿔 주세요..했더니 이르케 뽑아 주셨습니다. 미쿡에서 자동차가 대중화될 때, 많은 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건초 만드는 농부들, 말똥 치우는 미화원 조합, 마차 만드는 길드, 말 사육사 연맹.. 등등. 하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의 자동차는 친환경 교통수단이었거든요. 말님들이 아무 데나 푸짐하게 떵을 뿌리고 다니셔서 떵 치우는게 일이었다네요.. AI의 흐름은 이제 완전히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은퇴하기 전까지 최소 10년 더 벌어야 되는데 이제 진짜 뭐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싶습니다. 카페나 치킨집은 너무 많고. 그래. 목수. 목수일을 배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