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쟁패 | 楚漢争覇 #5

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 외전 -

by붕어만세


궁지에 몰린 유방은 항우에게 항복 사절을 보내 앞으로는 좋게 좋게 잘 지내자는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 얼마 전에 형제의 연도 맺지 않았었냐며, 식구들끼리 너무 그러는 거 아니라며 말이죠. 항우가 열받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제후들도 우르르 유방을 배신한 참이라 사실 항복 말고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구요. 아직도 유방을 그저 초 귀찮은 한량쯤으로 여기고 있던 항우는 항복 제안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대충 수습하고 치운 제나라 문제를 마저 매듭짓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또 묘하게 흘러가자 범증은 항우의 등짝에 풀 스매싱을 날렸습니다. 다 잡은 고기를 또 놓아주려 하다니,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범증은 이번에야말로 기어이 유방의 목을 떨구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잘 될 것 같았던 항복 협상이 범증의 반대로 파토나자 유방은 항우의 주변부터 잘라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없는 살림을 털어 큰돈을 만든 유방은 세작을 잔뜩 풀어 범증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게 해서 둘을 떼어 놓으려는 계바카라. 즉 반간계입니다. 근데 이 반간계라는 건 생각보다 잘 먹히는 계바카라이 아닙니다. 덕이 많은 장군에게는 아예 이빨도 안 박히고, 똑똑한 장군에게 잘못 쓰면 되려 내가 말려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간계를 펴려면 밑작업을 꽤 오래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돈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함부로 실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나라가 통일 전쟁을 일으키기 전, 나머지 여섯 나라에 이 작업을 했는데; 그때도 ‘우리 긴가민가한 계략에 돈을 너무 펑펑 쓰는 거 아니냐?’라는 지적이 진나라 안에서 나왔었습니다. 아무튼 떼돈이를 쳐발쳐발한 효과가 있어 항우의 진지에서는 범증이 곧 항우를 배신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범증 역시 그르케 녹록한 사람은 아니니, 군중에 돌기 시작한 헛소문은 그대로 갈무리되어 범증의 바카라상 위로 올라왔습니다. 앞뒤 맥락을 어렵지않게 꿰어낸 범증은 혼자 피식 웃으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유방 이놈, 이거 많이 쫄렸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두둥..

이 종이 클립에 스팸 낑군 것 같은 미끼를 항우가 덜컥 물고 말았습니다. 범증은 항우가 20만 진나라 장병을 학살할 때도 반대했고, 팽성에 도읍할 때도 반대했고, 유방을 한중으로 내쫓을 때도 반대했고, 초회왕을 죽일 때도 반대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딱 봐도 샌님인 뽀송이를 인재라며 크게 쓰라고 했었는데, 정작 한나라와 싸워보니 그 인재라던 그 뽀송이는 코빼기도 안 보였습니다. 맨날 애새끼랑 천하를 이야기하자니 깝깝해 죽겠다는 소리나 해싸코.. 항우는 범증을 아보(=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는데, 어째 점점 맘에 안 들었습니다.


이렇게 범증을 의심하던 항우는 아예 한나라 진중에 사람을 보내 직접 분위기를 보고 오게 했습니다. 별 시답지않은 구실로 초나라 사신이 온다고 하자, 한나라에서는 항우가 낚였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지요. 유방은 사신을 반갑게 맞으며 상다리가 뿌러지게 큰 잔칫상부터 내었습니다. 풍악까지 곁들인 화기애애한 뷴위기에서 막 숟가락을 들려는데, 누군가 유방에게 ‘저놈님은 범증님의 사신이 아니라, 항우놈의 사신’이라고 큰 소리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아주 깜딱 놀라며


‘아익쿠, 일헌. 나는 너님이 우리 범증님의 사신인 줄 알았지 뭐야. 아주 중요한 배신 이야기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했겠는걸?‘


이라며 어색한 하이톤의 방백을 하고는 휑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사신을 맞는 방도 하꼬방같은 사랑채로 옮기고, 잔치상도 다시 걷어 갔지요. 잠시 후, 다시 내온 밥상에는 풀떼기만 가득했습니다.


청초한 웰빙 밥상에 살짝 약이 오른 사신이 혼자 깨작거리고 있는데, 문득 방구석에 쌓여 있던 서류와 편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르는 척 하나 쓱 꺼내서 읽어보니 범증이 유방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대략 항우는 성질이 지랄 맞다. 힘만 쎈 애새끼랑 천하를 이야기하려니 속상해 죽겠다. 전쟁 끝나면 나 어디 왕이나 한자리 해 줄래?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크게 놀란 사신은 서둘러 항우에게 돌아가 유방의 진지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항우는 나도 그 이야기, 풍문으로 들었다며 즉시 범증에게 내렸던 권한과 직위를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목부터 쳤을 것이나, 제 딴에는 그동안의 노고를 생각해 많이 봐준 것이었습니다.



원사해골 | 願賜骸骨

헤어질 결심

범증이 평생을 숨어 지내다 나이 일흔에 세상에 나온 것은 진나라의 폭정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힘을 보태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항우는 성격이 지랄맞고, 생각도 짧지만 그래도 사람이 담백하고 함부로 남을 속이려 들지 않는 인물입니다. 노는 거 좋아하고 여자 밝히는 능구렁이보다야 훨 낫죠. 항우를 찾아간 범증은 눙물을 뚝뚝 흘리며 초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이제는 뼈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남은 뼈라도 돌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 = 야,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줄 테니 나 좀 잡아라.) 하지만 항우는 끝내 범증을 내쳤습니다. 범증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에 훤 했습니다. 울분과 자바카라으로 괴로워하던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다 길에서 쓰러졌습니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초나라의 승상이자 항우의 유일한 바카라사였던 범증이 생의 마지막 숨을 내쉬던 그때, 항우의 본격적인 패망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유방은 또다시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습니다. 항우에게 쫓겨난 범증은 객사했다는 보고가 올라왔고, 한신은 패잔병들을 수습해 초나라에 카운터를 날렸습니다. 팽월 역시 항우의 창끝 한 뼘 거리에서 짤짤이를 넣었구요. 무엇보다 한중에 있던 소하가 온 나라를 박박 긁어서 대규모 지원군과 군수품을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유방 실력에 항우랑 싸우면 탈탈탈탈 털릴 것이 뻔하니, 졌다는 파발이 오기도 전에 미리 보낸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급한 불을 끄고, 다시 세력이 불어났지만 항우랑 또다시 싸워 보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유방은 장량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덧붙이는 이야기


장량

유방이 한고조가 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을 꼽을 때, 늘 세 송구락안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긴 건 비리비리한데 항우조차 정면으로 맞붙는 건 꺼려한다는 대장군 한신, 뭐가 필요할지 몰라서 일단 다 준비한다는 승상 소하, 그리고 천하에 따를자가 없다는 바카라사인 장량입니다.


장량은 한나라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으나 평생 재물과 지위에 집착하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아예 세상과 연을 끊고 지냈습니다. 유방이 내려준 땅도 고사하고, 간헐적 단식 같은 거 하면서 조용히 살았습니다.


유방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판을 뒤집는 결정을 내려서 유방을 살려냈기 때문에, 후세의 역사가들은 유방이 천하를 얻으려고 장량을 쓴 것처럼 보이지만, 장량이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 유방을 쓴 것이라는 평을 합니다.


범증

장량이 규격 외의 사람이라 그렇지 범증도 주군 잘 만났으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을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농사짓던 시대에는 ‘길에서 죽는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범증을 쫓아낸 항우는 초나라의 승상이자 아버지처럼 따르던 범증이 객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비로써 한나라에 낚였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호부호형..크흠..

항우는 홍문연에서 유방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둘이 사이가 좋아서 맺은 건 아니고, 목 떨어지게 생긴 유방이 항우를 형으로 모시겠다며 설레발을 친 결과입니다. 나이는 물론 유방이 아주 더 많죠. 암튼 그래서 항우는 유방을 칭할 때 종종 동생이라고 낮춰 불렀습니다.


범증 또한 아버지는 아닙니다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아버비와 같은 분이라는 의미로 아보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아닌 이를 아버지라 부르고, 동생이 아닌 이를 동생이라 부르는 셈이죠. 그래서 홍길동 의문의 1패.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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