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장마

Flavor 02. 구운 관자를 올린 시금치 리소토

bySISU
IMG_2299.heic고소한 관자와 봄 시금치의 향을 머금은 리소토





중학교 때만 해도 계절의 힘을 또렷하게 느끼며 살았다. 중학교 2학년 여름, 우리는 내리쬐는 햇살과 바닷가의 해풍이 뒤섞인 교실 안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털털 소리를 내는 선풍기 세 대에 의지해 그 계절을 버텨냈다. 수학 선생님은 교과서로 연신 부채질을 하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꼭 여름엔 에어컨 나오고, 겨울엔 히터 나오는데서 일해, 알았지?" 그때는 그 말이 그저 더위를 견디다 나온 어른의 푸념처럼 들렸는데, 지나고 보니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차를 마련한 뒤로는 지하 주차장에서 출발해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고, 차가운 겨울이 볼을 에는 순간도, 질척한 장맛비가 양말 끝을 적시는 일도 좀처럼 없어졌다. 그렇게 계절은 점점 몸으로 겪는 것이 아니라, 문득 켠 휴대폰 잠금화면에 떠 있는 날짜를 통해서나 무심히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


서울의 봄은 유독 짧다.

겨울의 끝을 알아차릴 즈음이면 꽃이 한꺼번에 피어오르고, 봄을 다 누려보기도 전에 계절은 금세 초여름 쪽으로 기울어버린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앉아서는 이 계절을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도시에서는 봄을 채집하듯 너도나도 벚꽃을 찾아 나선다. 하얀 솜뭉치 같은 꽃송이들이 짙은 잔가지 위에 소복이 내려앉은 모습은, 마치 겨울의 설경을 닮은 봄의 눈밭 같다. 바람이라도 불면 꽃잎들은 눈발처럼 빠르게 흩날리고,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이상하리만치 환하고 생기가 넘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샘추위 끝의 비바람이 이 짧은 절정을 앗아가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에서 봄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도시의 봄이 꽃을 올려다보는 계절이라면, 이곳의 봄은 땅을 내려다보는 계절에 가깝다. 벚꽃을 위해 비를 아쉬워하는 대신, 제주 사람들은 고사리가 올라오는 때의 비, 곧 ‘고사리 장마’를 기다린다. 그 비가 지나가야 연한 줄기들이 땅을 밀고 올라오고, 비로소 봄도 제 모습을 갖춘다. 고사리 장마라는 말을 들은 뒤로, 내게 봄은 조금 더 깊어졌다. 바라보는 풍경만큼이나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들이는 계절을 더 아끼게 되었다. 계절은 바깥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부엌에서 썰고 삶고 무치며 비로소 내 것이 되기도 한다.


나는 봄 제철을 떠올리며 촉촉하고 푸른 들판 같은 한 접시를 만들고 싶었다. 곱게 간 시금치로 리소토를 만들고, 버터에 노릇하게 구운 관자를 올려 낮은 나무 그루터기 같은 풍경을 그렸다. 그 위에 노란 레몬 제스트를 유채꽃처럼 흩뿌리고, 향긋한 딜을 막 올라온 새순처럼 얹자 비로소 접시 안에 나만의 작은 봄이 놓였다.


그 한 접시를 앞에 두고서, 나는 계절이 아주 멀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예전처럼 온몸으로 봄을 견디거나 통과하지는 못하더라도, 계절은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내 곁에 와 있었다. 비를 머금은 땅의 기운처럼, 연한 잎이 올라오는 속도처럼, 그리고 그것을 썰고 삶고 저어 한 끼로 만들어내는 손끝을 통해서. 자꾸만 멀어지는 계절을, 나는 이런 방식으로 다시 곁에 놓아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IMG_2300.heic시금치와 쑥을 섞어도 좋고, 다양한 봄 제철 나물로 그린 리소토를 만들 수 있다.



IMG_2464.heic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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