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을 말하자면

잠재적 암환자에서 진짜 암환자가 된다는 것

by정그믐

나의 온라인카지노엔 가족사가 많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23살 때, 아빠는 26살 때. 그래서 나의 20대는 무척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분의 간병은 언니가 도맡아 했는데도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하루 종일 우울해하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벌을 받는 걸까. 이번엔 내가 암에 걸렸다.


가족력이 있다 보니 나는 건강 염려증이 심한 편이었다. 그런데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점점 건강 관리에 무뎌졌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란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이번에 갑상선암 판정을 받으면서, 건강엔 나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암'이란 것에 꽤나 익숙해져 있다고 느꼈는데도 암 판정을 받던 날 길거리를 걸으며 울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하늘을 원망했다. 그 와중에 병원비 걱정에 보험 생각도 났다. 막연하게 죽음과 가깝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실제로 죽음이 발 끝까지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갑상선암 주제에 호들갑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암에 걸린 이상, 나는 이제 평생 암 병력을 가진 사람으로써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이 30살부터 시작될 거라곤 미처 예상을 못했을 뿐이다.


엄마는 자궁 육종으로 암투병을 시작했다. 6년~7년 정도 투병생활을 했던 것 같다. 암이 재발하여 복막 전이까지 되었을 때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 했고, 장루를 갈아야 했다. 하루의 소소한 일상 얘기를 나눠줄 여유는 없었다. 22살이었던 나는 그런 엄마를 외면했고, 엄마는 그런 내게 죽은 사람 취급 말라며 문자로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간병은 언니가 거의 다 했다. 난 한 게 없다. 그 상황이 괴로워서 도망치기만 했다. 일부러 친구와 약속을 잡기도 했고 아빠랑만 떠들다 잠들었다. 엄마한테 한마디 따뜻한 말을 걸어줄 생각도 못했다. 엄마는 결국 마지막에 피를 토하며 돌아가셨다. 장기가 썩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이제 엄마 안 아프다는 생각에, 이제 집에 아픈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홀가분 했다. 나는 왜 그런 기분을 느낀 걸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 뒤 이번엔 아빠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건강검진도 안 받고 술도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빠는 투병생활을 시작하고 언니만 찾았다. 나한텐 아프다는 얘기도, 안 아프다는 얘기도 별로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서 막내딸이었던 내게 아무런 짐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결과 나는 엄마, 아빠가 어떤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는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돼 버렸다. 아무튼 아빠는 호스피스에 가기 전 내가 병문안을 갔을 때도 언니를 불러오라면 내 쪽은 보지도 않았다. 뭐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을까. 아빠는 호스피스 병실에서 엄마보단 편하게 가셨다. (엄마는 호스피스에 못 들어가고 일반 대학병원 병실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죽음을 한번 겪었다고 아빠 때엔 임종 맞춰서 호스피스로 전원을 알아보고 옮긴 것이었다.(내 기억엔 그렇다.) 집에 남자가 없냐고 물어보던 장례지도사 말이 생각난다. 딸만 둘인 집에 상주는 당연히 우리 둘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암환자가 되었다. 언니한테 미안할 뿐이다. 나는 엄마, 아빠의 죽음으로 다시 정신과를 찾았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언제까지 정신과를 다니며, 건강을 무서워하며 지내야 할진 모르겠다. 그래도 난 항암치료 없이 수술만 예정된 상태라 빠른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언니와 나는 수술 이후 내 휴직 기간에 같이 놀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젠 정말 행복하고 싶다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니즈가 있다.


4인 가족 중 3인이 암에 걸린 가족.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인생이란 뭘까 싶다. 늘 뜻대로 되지 않고 수많은 변수를 안겨주는 내 인생. 그럼에도 나는 오늘 휴직 전 일처리를 위해 회사에 다녀왔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루가 흘러간다.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죽지 않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의 나는 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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