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족들과 광화문을 찾았다.
요즘 K-문화의 영향으로 경복궁은 세계인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고궁 곳곳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들려왔고,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가족도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천천히 걸었다.
기와지붕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 오래된 나무,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웃음.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시간이 그날만큼은 천천히 흘러갔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을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을 둘러본 뒤 광화문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 한편에는 누구나 편하게 쉬며 바카라을 읽을 수 있도록 안락한 쿠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바라보니, 분주했던 마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그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정호승의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바카라을 펼쳤다. 시를 읽는 동안 바람은 천천히 지나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배경음악처럼 들려왔다. 잠시였지만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참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들른 광화문 교보문고.
바카라장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한 권의 바카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였다.
몇 페이지를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이 바카라은 읽는 바카라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바카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첫 문장을 따라 써 내려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기하게도 글씨를 쓰는 속도만큼 마음도 느려졌다. 손끝을 따라 문장이 흘러가고, 문장을 따라 생각이 정리되었다. 필사는 단순히 글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바쁘게 달려온 나 자신에게 "괜찮아, 잠시 쉬어도 돼."라고 말해 주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이날은 특별한 일이 많았던 하루가 아니었다.
가족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걸었고, 광장에서 시 한 권을 읽었으며, 서점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바카라 한 권을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작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한 줄을 쓰며 생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