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한 해상 통로가 세계경제를 움직이기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전쟁

by사유함의 공작소
Qg_-4z6LB2MYDFubS0DdWlzRE5wUC33Q2GgQ0hQVyOSEg0MpU3jm80oBmRsmU2tK2ZE-FlyzR4qqNK8AUfuusxST6n_KET9fnppuoirNk_Qurrg6jDi4yLnclALOFqmsprOFdbVlG0J5QZaagmvzVLRyD_cF9kMxm62IbkWHwc0?purpose=inline출처:https://www.upday.com/es/economia-y-consumo

2026년 10월 6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상품운반선은 단 7척이었습니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평균 약 125척에 달하는 대형 상선이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국제 해운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이날 해협을 지나는 원유량은 하루 1,010만 배럴로, 전쟁 이전 수준의 74%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중동 전체의 원유 수출량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산유국들이 오만만과 홍해로 향하는 다른 수송 경로를 확대한 결과였습니다. 원유가 다시 국제시장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국제유가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10월 8일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배럴당 101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 현상에는 현재 국제 에너지 시장이 직면한 문제가 응축돼 있습니다. 산유국들이 생산한 원유가 실제 소비자에게 도착하려면 여러 국가의 영해와 항만, 송유관, 정유시설, 유조선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흔들리면 나머지 공급망에도 비용과 위험이 발생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러한 상호의존 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이란과 오만 사이에 형성된 좁은 해상 통로를 따라 페르시아만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세계 각지로 이동합니다. 해협의 양쪽에는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국가들이 위치하고, 바깥쪽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해군이 항행의 안전에 관여해 왔습니다.


2026년 2월 시작된 전쟁은 이 통로의 운항 질서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제적 압박을 행사했고, 산유국과 선박회사들은 새로운 수송 경로를 찾았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원유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도 복잡해졌습니다.


이 변화가 어떻게 시작됐으며, 각국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석유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해협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송량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평균 2,090만 배럴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석유류 소비량의 약 20%, 해상 석유 교역량의 약 4분의 1에 해당했습니다. 같은 기간 액화천연가스(LNG) 수송량도 하루 114억 입방피트에 달했습니다. 세계 LNG 교역량의 20% 이상이었습니다.


주요 산유국이 이 통로에 의존하는 이유는 지리와 산업시설의 배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이라크 남부,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의 주요 유전과 수출시설 상당수가 페르시아만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원유를 실은 선박이 인도양으로 나가려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야 합니다.


수십 년간 형성된 유전과 항만, 정유시설의 배치가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거대한 수출망을 형성했습니다. 송유관은 이를 일부 보완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횡단 송유관과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송유관은 페르시아만을 통과하지 않는 수출 경로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EIA가 2025년 제시한 두 송유관의 해협 우회용 가용 수송능력은 합계 하루 약 470만 배럴이었습니다. 당시 호르무즈 해협의 전체 석유류 통과량과 비교하면 그 규모는 제한적입니다.



이런 구조는 경제적 효율성과 전략적 취약성을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원유 생산지에서 항만까지의 거리가 짧고 기존 설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수출이 가능했습니다. 동시에 수많은 산유국의 수출이 동일한 해상 통로에 집중됐습니다.


이란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확보했습니다. 해협 북쪽의 긴 해안선과 여러 섬을 바탕으로 선박의 통행을 감시하고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란이 실제로 모든 선박의 통행을 차단하려면 막대한 군사적·외교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지만, 선박회사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수단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 차이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전략적 갈등의 핵심입니다.



해협을 전쟁에 이용해 온 역사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은 2026년에 처음 발생한 일이 아닙니다.


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1980년대 중반 페르시아만의 석유 운송망으로 확대됐습니다. 양국은 상대방의 석유 수출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조선과 해상시설을 공격했습니다. 이 시기의 충돌을 흔히 '유조선 전쟁(Tanker War)'이라고 부릅니다.


1984년 이란은 이라크의 자국 선박 및 정유시설 공격에 대응하면서 중립국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쿠웨이트 선박이 공격받자 쿠웨이트는 미국과 소련 등에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1987년 7월부터 쿠웨이트 유조선의 선적을 미국으로 변경하고 해군 함정으로 호송하는 '어니스트 윌(Operation Earnest Will)'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미국 해군의 개입은 이란의 해상 공격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지만,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첫 호송작전에서 유조선 브리지턴호는 기뢰에 부딪혔습니다. 이후에도 기뢰 부설과 고속정 공격이 이어졌고 미국과 이란 해군 사이의 직접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1988년 미국은 이란 해군 함정을 공격하는 '프레잉 맨티스(Operation Praying Mantis)'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민항기를 격추해 탑승자 290명이 모두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들은 해상교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개입이 어떤 긴장을 수반하는지 보여줍니다. 호송작전에는 함정과 항공기, 정보자산이 필요합니다. 개입한 국가는 자국 군인과 선박을 공격 위험에 노출시키며, 현장에서 발생한 충돌이 더 큰 군사적 대립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감수합니다.


이란 역시 1980년대의 충돌을 통해 기뢰와 소형 함정, 비정규적 해상작전이 주요 해군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2026년 상황을 이해하는 하나의 배경이 됩니다. 당시와 현재의 군사기술, 지역 동맹, 세계 원유 수급은 상당히 달라졌으므로 구체적인 효과는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두 시기에는 공통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국제적인 해상교역을 보호하려는 국가와 그 교역망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국가가 같은 바다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6년, 전쟁이 해상봉쇄로 확대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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