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가진 사람과 피해를 말하는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말할 수 있는가
“양쪽 말을 들어봐야 합니다.”
학교가 학생 사이에 벌어진 일을 조사할 때도, 회사가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 신고를 받았을 때도, 언론사가 논란이 된 사안을 보도할 때도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말합니다. 한쪽 주장만 듣고 결론을 내리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가해자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정리되기 전에 이름과 평판부터 훼손될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호소한 사람에게도 성급한 판단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판단이 뒤집히면 실제 피해까지 함께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카라임 있게 판단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확인과 반론 기회, 절차가 필요합니다.
양쪽 말을 듣는 일은 판단을 위한 출발점입니다. 학교도 회사도 언론도 한쪽 이야기만 듣고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두고 전혀 다른 진술이 나올 수 있고, 누군가 사실을 숨기거나 과장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게 지목된 사람이 자기 입장을 말할 기회 없이 여론의 표적이 되는 일도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반론권은 공정한 절차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공정한 절차는 말할 기회를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학교폭력을 말하는 학생은 앞으로 학교생활을 어떻게 이어갈지 걱정합니다.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을 신고한 직원은 인사평가와 동료 관계를 함께 계산합니다. 성희롱 피해를 말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믿길지, 도리어 조직을 시끄럽게 만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해명하는 사람도 부담을 느낍니다. 억울하게 지목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조직 안에서 이미 얻은 직위와 평판, 관계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질문을 받아도 두 사람이 실제로 짊어지는 부담은 다릅니다.
피해를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은 일상을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같은 교실이나 사무실에서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합니다. 문제를 제기한 뒤 관계가 끊기거나 일이 줄거나 평가가 나빠질 가능성도 감수해야 합니다. 반면 해명하는 쪽은 이미 쌓아온 신뢰와 직함, 경력, 말투, 인맥을 갖고 나옵니다. 말할 기회가 같아 보여도, 말하는 사람이 감당하는 압박은 같지 않습니다.
판단을 맡은 사람은 누가 더 쉽게 믿기는지, 누가 더 오래 의심받는지, 누가 침묵할수록 유리한지 살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믿깁니다. 어떤 사람은 말해도 의심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명할 기회를 쉽게 얻고, 어떤 사람은 문제를 꺼냈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이 됩니다. 조사하는 사람이 이런 차이를 보지 않으면, 상급자는 쌓아온 평판을 그대로 들고 말하고 신고자는 자기 말이 믿길 자격부터 다시 증명해야 합니다.
회사와 학교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A와 B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는 말로 충분히 정리되지 않습니다. 누가 말을 꺼낼 수 있는지부터 다릅니다. 누가 말하면 사람들이 기다려주고, 누가 말하면 사람들이 먼저 의심하는지도 다릅니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이런 문제를 개인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 제도, 관행이 얽혀 부정의를 만들어낸다고 보았습니다. 영은 “social connection model”을 설명하며 “all agents who contribute by their actions to the structural processes that produce injustice have responsibilities to work to remedy these injustices”라고 씁니다. 부정의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자기 행위로 기여한 사람은 그 부정의를 바로잡을 바카라임도 진다는 뜻입니다.
회사에서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왔다고 해보겠습니다. 회사는 “양쪽 입장을 공정하게 듣겠다”고 말합니다. 필요한 절차입니다. 같은 질문지를 쓰고 같은 시간 동안 진술을 듣는다고 해서 조사가 곧 공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고자는 조사 이후 인사평가가 어떻게 바뀔지 걱정합니다. 동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도 신경 씁니다. 같은 팀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상급자는 조직 안에서 쌓아온 평판과 권한을 그대로 갖고 말합니다. 같은 질문을 받아도 두 사람이 감당하는 부담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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