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절머리나게 지겹다가도 썩 괜찮기도 한 날들

by겨울밤

몇 주 전 가족 식사를 하러 가던 차 안에서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반평생을 매일 출근한다는 건 고달픈 일이다. 그래서 그 고됨을 상쇄하려면 취미가 있어야 한다.” 뜻밖이었다. 도시 한복판 은행 지점장으로 슬롯적 위치를 이룬 아버님조차 매일하는 출근을 고달파하셨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퇴직 후 지금까지도 하루 일과표에 맞춰 움직이고, 식사량과 체형 관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분이다. 나는 오히려 아버님이야말로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는 생활에 최적화된 분이리라고 넘겨 짚었더랬다. 이를테면 FM 휴먼 같은.


아버님 말씀을 곱씹게 된 건 내가 유독 오랫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 그러니까 엄마가 살아계실 때만 하더라도 나는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학교든 학원이든 지각과 결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날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끝냈다. 매주 받는 용돈도 아까워 거의 쓰지 않고 바카라상 서랍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거짓말을 딱 두 번 했었다. 한 번은 나와 마찬가지로 성적이 전교 상위권이던 친한 언니 둘과 도서관에 간다 해놓고 노래방에 간 것이었고, 또 한 번은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에서 들은 셀린 디온의 노래에 홀려, 문제집 사라고 받은 돈으로 셀린 디온 1집을 산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 짝이 없는 범죄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인생 최대의 일탈이었다.


반전은 고등학생이 되고부터였다. 집안의 강력한 통치자가 부재하면서부터 내부의 암묵적 질서도 함께 느슨해졌다. 물론 애초에 노는 법을 모르던 애인 데다 이른바 날라리를 질색했기에(왜 그렇게 싫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타인에게 민폐 끼치고 예의 없던 태도를 특히 극혐했던 것 같다) 자유가 주어졌다고 대단한 방황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지각을 좀 했고, 공부를 거의 안 했을 뿐이다. 유독 좋아하던 정치와 철학만을 빼고.


게으름에도 관성이 붙어서 지각을 할수록 공부에 손을 놓을수록 학교 가기가 더더욱 싫어졌다. 만약 친구도 없고 동아리 활동도 없었더라면 어쩌면 정말로 등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용기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과거와 달리 생활 패턴이 조금 무질서해지면서부터 내 성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에는 극내향형이었고 중학교 때까지도 그다지 활발하지도 사교적이지도 않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친구가 많아졌다. ‘무리 1’, ‘무리 2’, ‘무리 3(정확하게는 무리 3-1, 3-2, 3-3으로)’까지 목적과 선호도에 따른 친구가 제각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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