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의 공간을 짓는 항해

by지후트리


IMG_0709.JPG수어 그림 <함께> / 지후트리 / 2016



공연 연습을 마치고 일기장 앞에 앉았음에도 하루가 절반이나 더 남았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늦은 오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밀린 일상의 이야기꽃을 피워내며 다시금 깨닫는다. 타인의 삶이 일렁이는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봐야 나 역시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는 것을. 인생은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며, 삶이란 제법 상대적인 듯하면서도 절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발견하고 탐구해야 한다. 내가 적어 내려가는 글들 또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어로 치환하는 작업을 거쳐야겠다.


문득 내년 봄에 맞춰 바카라을 내야겠다는 목표가 선명해졌다. 그것이 그림바카라이 될지, 에세이집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출간'이라는 목적지만큼은 단단히 붙들고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 누군가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오늘 나눈 대화처럼 뚜렷한 결과물이 당장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성취'해냈다는 감각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은 충분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 사소해 보이는 것들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야말로 나라는 사람의 의무이자 바카라무일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여러 형태의 방법을 체득해 나가는 이 과정이 참으로 즐겁다. 이 활기는 이른 아침부터 물살을 가르며 끌어올린 도파민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매일의 기록은 훗날 바카라을 쓸 때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안규철의 <사물의 뒷모습> 같은 바카라을 쓰고 싶다. 깨달음을 얻어 그림을 그려내고, 그 과정에서 다시 체화한 마음의 언어를 세상에 내어놓고 싶다. 나의 언어로 빛을 보게 될 모든 것은 곧 나의 '출산'방식이 될 테니까. 작년 연휴, 거리 예술을 하며 도심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과 구축하고 싶던 세계에 대해 고민했다. 그것은 내 안의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은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나를 깊이 연구하다 보면 반드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 믿는다.


내가 하는 퍼포먼스의 영역은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과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 누군가는 배우를 작가나 연출가가 만든 캐릭터를 단순히 실현하는 수동적인 존재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반만 동의한다. 배역을 맡는 과정은 선택받는 일일지라도, 그 이후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숨 쉬게 만드는 것은 오직 배우의 능동적인 연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역시 정해진 틀 위에서 예술가의 능동적인 해석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중저음 톤의 내 목소리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 최근에는 전문가의 특강을 듣고 왔다. 40년의 세월이 담긴 조언들은 공중에 흩어져 있던 나의 생각을 정갈하게 정리해 주었다. 매일 5분씩 낭독하고 녹음하며 변화를 마주해 보라는 숙제, 그리고 무엇보다 마침표와 쉼표 뒤에 '여운의 공간'을 두라는 말이 깊게 남았다. 말의 맛이란 결국 그 비어 있는 공간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매혹적이다.


일상을 부지런히 기록해 두자. 이 성실한 기록들이 언젠가 환하게 빛을 볼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파이팅이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