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지 않은 것을 매일 목격하는 일
최근 학교 수업을 듣다가 마음이 불편해진 일이 있었다. 수업은 교수님이 반을 이끌고 나머지 반은 학우들이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발제자는 발표 경험이 적은 편인지 긴장되어 보였고, 말 속도가 매우 빨랐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스마트칠판에 띄워놓고 준비해 온 발표 대본을 그대로 읽는 듯했다. 나도 강사 활동을 하기 전까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몹시 힘들어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암기나 애드리브에 자신이 없다면 대본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저의 물음은 이렇습니다...."
분명히 자신의 생각이라고 말을 했는데, 뒤에 나오는 내용은 챗GPT가 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걸 내가 왜 아냐면, 나도 그런 글을 시켜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피티와 발제문 아이디어를 나누던 중, 지피티는 어느 정도 정리되자 나에게 '이 내용으로 발표할 때 사용할 원고를 지금 작성해 줄까? 넌 출력해서 읽기만 하면 돼.'라고 물었고 난 녀석이 얼마나 글을 잘 쓸지 궁금해서 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제법이었다. 일목요연하게 테마를 정해 정리해 구어체로 바꾸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기 느끼하고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그대로 사용할 수 없겠단 판단이 들었다.
흔들린다는 건 00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야.
지금 필요한 건 삶의 리듬이다/ 호흡이다/ 감각이다.
단순히 000이 아니라, 00입니다.
특유의 부둥부둥 화법. 일상에서 평소 쓰지 않는 어휘나 표현들이 인공지능이 작성한 문장 곳곳에 녹아 있다. '챗GPT 말투'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서 AI 티가 나지 않게 쓰는 프롬프트 노하우들이 곳곳에서 돌고 있다. 나는 20년 동안 글을 쓰고 소비한 사람이라 이 인위적인 표현이 순식간에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디자이너들이 비율에, 편집자들이 오타에 민감한 것처럼 직업적인 특성이다. 그러다 보니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자꾸 눈에 보인다. SNS에서 진정성 있게 활동하던 인플루언서가 AI로 작성한 캡션을 쓰기 시작했고, 내가 즐겨 읽던 글벗은 자신이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인공지능이 써준 글을 살짝 손질해서 업로드한다. 글 속에서 그의 생활은 사라졌고 당위적이고 형식적이며 뻔한 표현만 남았다. 그는 자신의 글이 더 세련되어졌다고 믿는 것 같은데 내 눈에는 개성을 잃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30분 남짓한 남의 발표에 괴로워서 머리를 쥐어뜯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AI 글쓰기가 보편화되어 나의 밥그릇을 뺏을까 봐 우려되는 것인가? 그런 걱정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느낀 감정은 불안보다는 불쾌함에 가까운 불편이었다. 마치 눈앞에서 '사기를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인간이 지배되는 듯한, 역전의 관계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프롬프트는 인간이 입력했지만 결국 원고는 지피티가 작성했다. 그런데 그 원고를 '나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그것을 그대로 발화한다. 마치 무대 뒤에 숨은 컴퓨터가 조정자이고 인간은 그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인간종으로서 느끼는 절망감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발표하는 것을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실이 대리적으로 수치스러웠다. 내가 받고 있는 이 기이한 느낌을 교실에서 아무도 느끼지 않았을까? AI로 작성한 과제를 수 없이 읽어본 교수님이 과연 이를 모를까. 익숙지 않은 AI를 활용해 밤새 낑낑대며 과제를 해본 학생들이 이를 모를까.
그러니까,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교실 안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다들 바보가 된 것 같았다. AI에게 생각을 외주 한 발표자는 '아무도 모르겠지'라고 믿으며(혹은 알아도 어쩔 수 없다) 자기 생각처럼 발표를 한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AI가 쓴 글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모두가 그가 쓴 것처럼 경청한다. 발표가 끝나면 서로 고생했다고, 발표 좋았다고 격려해 준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나도 다음 발표를 AI로 준비하면 되겠다고 속으로 안심하며.
AI는 이미 일상에 깊이 개입했다. 성적을 내야 하는 학교는 더 그렇다. 당장에 이 도구가 있기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과제를 하고 논문을 썼는지 경이로울 정도니까. 나도 당연히 사용한다. 요약을 할 때나 자료조사를 할 때, 그리고 시험공부를 할 때도 아주 유용하다. 학교 입학 면접을 준비할 때는 AI로 혼자 모의면접 연습을 하기도 했다. 편리한 도구임은 확실하다.
AI를 사용한 글은 매끈해 보인다. 작성 시간도 훨씬 아낄 수 있다. 그래서 안 쓰는 사람이 손해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글을 '아주 못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상향 평준화됐는데, 나만 쓰지 않으면 뒤처질 거 같은 불안을 만들어낸다. 결국 AI가 만든 것은 또다시 경쟁이다. 글쓰기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즐거운 것인데, 그것을 알던 사람들마저도 이러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쉽게 포기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혹자는 연필로 글을 쓰던 사람들이 지금 컴퓨터로 글을 쓰는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 것처럼, AI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다. 결국에 AI 사용은 필수가 될 것이며, 잘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만 남을 것이라고. 시간문제, 적응의 문제라고.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은 과도기적 현상일 뿐일까. 하지만 과도기도 삶이다. 과도기를 점프하고 지나갈 수 없다. 나는 과도기를 살면서 계속해서 연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연기자가 되어 불편한 감정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