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감옥

아들이 문신을 했습니다.

by선물

<2017년 11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들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연히 본 아들의 소셜 미디어에서 기막힌 사진과 댓글을 접한 직후였다.


사진 속 아들은 목이 약간 패인 옷을 입고 있었다. 패인 목 부분으로 무언가 그림 같은 것이 살짝 보였다. 왠지 불길했다.


좋지 않은 예감은 잘 맞는다더니, 역시나였다. 한 친구의 댓글을 통해 그 그림이 문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다. 스티커 같은 일회성 문신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급히 깨우는 나를 아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나는 소리를 바짝 죽여 물었다.


"너 문신했니?"

아들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근데 엄만 어떻게 안 거야?"

아들은 자신이 소셜미디어를 엄마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했다.


아들의 옷을 젖혔다. 가슴에는 날개 그림과 자신의 한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힘을 주어 마구 문질러보았다. 스티커도 아니었고 지워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희망을 접을 수가 없었다.


"이거 나중에 지워지는 거지? 그렇지? 얼른 대답해 봐!"


"아니, 지워지는 거 아니야. 그리고 가만 냅둬. 자는 사람 그만 깨우고!"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남편이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하는 이중고를 치러야 했다. 입 안으로 소리를 가두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조용히 말해. 아빠 아시면 어쩌려고 큰 소리야! 네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나 알고 이러니?"


얼마나 흥분했던지 내 입에서는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욕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아, 몰라! 나중에 다 얘기할게. 그만하고 제발 나가줘. 더 잘 거야! "


더 할 말도 없었다. 지워지지 않는 영구 문신을 내 아들이 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에서 나왔다. 너무나도 괘씸하고 속상해서 화장실로 들어가 연신 눈물만 쏟아냈다.


나의 피나는 아들 문신 감추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평상시에는 자상한 편이지만,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면 몹시 엄격해지는 사람이었다.


특히 아들에게는 훈육의 정도가 더 엄하게 적용되었다. 심한 경우 체벌하기도 했고 드물게는 집에서 내쫓고 문조차 열어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물며 문신이라니, 정말 겁이 없는 아들이었다.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릴 일이었다.


내게는 더 이상 문신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남편에게 문신을 들키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다.


식탁 맞은편에 아들이 앉아 있을 때면, 나는 아들의 목 부분만 쳐다보았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혹여라도 문신이 보일까 겁이 났다.


나는 아들을 향해 눈동자를 위아래로 굴려가며 신호를 보냈다. 아들이 셔츠를 뒤로 당기면 잠시 드러났던 문신의 한 귀퉁이가 감춰졌다.


아들이 나의 눈 신호를 알아채지 못할 때면 내가 직접 나섰다. 슬쩍 일어나 아들 뒤로 가서 괜히 툭툭 치는 척하면서 셔츠를 뒤로 내려주었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밥이 눈으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나의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그렇게 아들이 빼앗아갔다. 아들의 티셔츠란 티셔츠는 모두 목 부분이 후줄그레 늘어났다.


아들은 또 문을 잠그고 샤워를 해야 했다. 그것도 몹시 조마조마했다. 남편이 화장실에 용무가 있을 때 문이 잠겨있는 것을 보면 뭔가 의심쩍어할 것 같았다. 아들에게 문을 잠그지 말고 그냥 닫기만 한 뒤, 대신 샤워커튼을 반드시 치도록 했다.


옷을 입는 순간만 잠깐 문을 잠그라고 했는데 요행히 그럴 때 남편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점점 주도면밀해졌다. 겨울에는 문을 닫고 샤워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달랐다.


땀이 많은 아들에게는 욕실에 갇힌 채, 옷을 다 챙겨 입고 나오는 것이 고문과도 같았다. 그새 땀범벅이 되어 나오는 아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터라 더 속상했다.


그러면서도 죄를 지은 자가 죗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사우나나 찜질방을 다 함께 가자는 남편에게 때마다 그럴듯한 변명을 둘러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려운 일을 매번 성공했다. 내 안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였다. 나의 거짓말 실력도 사기꾼 수준으로 급이 올라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들의 배짱이 조금은 두둑해진 어느 날이었다. 이제는 아빠에게 문신에 대한 고백을 해도 이해하시지 않겠느냐고 아들이 말했다.


간이 콩알만 한 나는 아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아빠에게 들키거나 고백하는 순간, 내가 집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죄도 짓지 않은 내가 아들 때문에 두려움의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었다. 아들이 용기를 냈지만, 나의 제지로 허사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들은 자신의 생활을 우리에게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들이 나를 가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들을 가둔 것 같았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다.


남편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신을 한 사람들을 보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역시나 남편은 그들을 향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안절부절못했다. 그들을 변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훗날 무슨 소리라도 들을까 참아야 했다.


아들이 온라인 게임을 갖게 되고 독립한 후에는 마침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들이 주말마다 집을 찾는 것조차 반갑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나도 아들도 어디에 홀린 듯 동시에 긴장의 끈을 늦추었던 것 같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던 남편은 맛있는 한우 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외출 전에 아들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고 남편은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아들을 내려다보던 남편이 말했다.

"너 가슴에 그게 뭐냐?"

식겁한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

아들도 기겁했다.


늘 이 순간을 대비하며 써 두었던 각본대로라면 나는 지체하지 않고 집을 나가야 했다. 그런데 진짜 힘이 빠져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맛난 거 먹으러 간다고 신나 하던 몇 분 전의 일이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남편도 말을 잃고 침묵 속으로 숨었다.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멍한 눈빛이 되어 신문을 펼쳤다. 눈에 들어올 턱도 없는 신문을 보는 남편 앞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잠시 후, 아들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눈도 감고 귀도 막았다. 그럼에도 잔인하게 다 보이고 다 들렸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 앞에 아들이 무릎을 꿇었다. 입술만 달싹거릴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중에 네 자식 낳으면 거기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거니?"

단 한마디였다.


아들은 진심으로 용서를 청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문신에 대해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만 아빠에게 구하는 용서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아들은 아빠와의 갈등이 생겨도 맞서려 하지 않았다. 겁이 나서 꼬리를 내렸던 어린 아들은 겁 없이 대드는 사춘기 시기를 지나 사랑으로 아빠를 이해하려는 아들로 성장했다.


문신은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잘잘못을 따지려 하지 않고 묵묵히 무릎을 꿇는 아들이 고마웠다. 나 또한 서로의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여기며 두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남편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남편은, 긴장해 잔뜩 움츠러든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뜻밖의 말을 건넸다.


"일어나서 밥 먹으러 가자."

세 사람은 엄숙한 얼굴로 차를 타고 갈빗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를 대했다. 나도, 아들도 뭔가 묘한 심정인 채로 남편을 따라 갈비를 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맛은 좋았다.


아들은 7년 만에 욕실의 문을 열어두고 마음 편히 샤워를 하게 되었다. 벗은 몸으로 나와 밖에서 시원하게 몸을 말릴 수도 있었다. 새 티셔츠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온전한 제 모습을 지키게 되었다.


아들이 없을 때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쉽게 용서했냐고. 남편은 이미 한 것을 지울 수도 없는데 어떡하겠냐며,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라고 했다.


아들은 여전히 자신의 가슴을 집에서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어쨌든 해방을 맛보았다. 내게도 아들의 귀가가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닌 반가움의 시간이 되었다.


7년의 시간만큼 성숙해진 아들과 또 그만큼의 인생이 깊어진 남편이었기에 서로가 맞서는 일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의 문신에 대한 형량은 징역 7년이었다.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때 들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아들과 나는 함께 만든 감옥에서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다. 아들이 아빠와 엄마 접시에 닭다리를 올려놓는다. 숙여진 몸은 가슴을 훤히 드러낸다. 날개를 단 아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아들도 그 날개를 달고 세상을 신나게 날아다니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달게 닭다리를 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