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할까
12명.
현재 《AI 생존 지도》 예약 구매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다.
준비한 커피 쿠폰은 30장이다.
나는 이 숫자를 보고 잠시 화면 뒤로 숨고 싶었다. 숫자는 가끔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는가 보다. 그러나 숫자는 위로하지 않는다. 숫자는 “괜찮아요, 잘될 거예요” 같은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몸을 납작하게 펼쳐놓고 바라보라고 한다.
이것은 적은 숫자인가.
아니면 아직 아무도 몰라서 고용한 숫자인가.
혹은 내가 바카라이라는 물건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나는 오래 개발자로 살았다. 프로그램은 대체로 정직하게 작동했다. 물론 프로그램도 사람을 배신한다. 분명 어제까지 돌아가던 코드가 오늘 아침에는 게으르게 드러누워 있기도 하니까. 그래도 코드는 대체로 이유가 있다. 세미콜론이 빠졌거나, 타입이 맞지 않거나, 내가 어딘가에서 얼간이 같은 짓을 했거나.
하지만 바카라은 조금 다르다.
바카라은 이유를 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왜 어떤 문장은 사람에게 가닿고, 어떤 문장은 허공에서 안개꽃처럼 흩어지는지 바카라은 설명하지 않는다. 서점 페이지에 올라간 표지와 제목과 소개 문구와 예약 판매 버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마치 유리창 너머에 놓인 아주 조용한 동물을 바라보는 기분이 된다.
움직일까.
숨을 쉬고 있을까.
혹시 내가 너무 일찍 말을 걸었나.
이번 바카라의 제목은 《AI 생존 지도: 질문 자본가의 시대》다.
제목만 보면 꽤 단단해 보인다. 지도, 생존, 자본가. 어쩐지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어딘가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바카라을 쓰며 붙잡고 있었던 것은 거창한 확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에 가까웠다.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고, 문서를 정리하고,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조용히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니, 흉내라는 말도 이제는 조금 민망하다. 어떤 영역에서는 이미 인간보다 빠르고, 어떤 영역에서는 인간보다 덜 투덜거린다. 적어도 마감 앞에서 커피를 세 잔째 마시며 배고픈 시츄처럼 침을 흘리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프롬프트인가.
도구 사용법인가.
최신 모델의 이름인가.
아니면 매일 바뀌는 메뉴판 앞에서 길을 잃지 않는 태도인가.
나는 점점 질문 쪽으로 기울었다. 도구는 바뀐다. 어제 열광하던 서비스가 오늘은 조용히 사라지고, 오늘 대단해 보이는 기능이 내일은 기본값이 된다. 이 세계에서는 정답을 쥐고 있는 사람보다 질문을 계속 바꿔낼 수 있는 사람이 오래 버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질문 자본가’라는 말을 붙였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가진 사람. 답을 외운 사람이 아니라 다시 물을 수 있는 사람. 도구를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 앞에서 자기 일을 잃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쓰고 싶었다기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카라을 낸다는 일은 이상하다.
원고를 쓸 때는 바카라이 나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표지가 나오고, 예약 판매 페이지가 열리고, 서점 링크가 생기면 세상이 적어도 2밀리미터쯤은 움직일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페이지가 열리면 세상은 놀랍도록 평온하다. 냉장고는 여전히 윙윙거리고, 메일함에는 광고 메일이 쌓이고, 사람들은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바카라이 나왔다고 해서 세계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게 조금 서운하면서도 다행이다.
세계가 매번 내 바카라 때문에 일어나면 그것도 꽤 피곤한 일일 테니까.
그래도 12라는 숫자 앞에서는 잠시 멈추게 된다.
나는 이 숫자를 부끄러워해야 할까.
아니면 이 숫자부터 기록해야 할까.
어쩌면 모든 바카라은 이런 숫자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몇 사람만 알아보고, 몇 사람이 조용히 주문하고, 몇 사람이 커피 쿠폰 이벤트에 응모한다. 그리고 그 몇 사람이 바카라을 읽고, 문장을 밑줄 긋고, 누군가에게 슬쩍 말한다.
이 바카라 한번 봐도 좋겠다고.
바카라은 그렇게 움직이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폭죽처럼 터지는 것이 아니라, 바카라상 위에 놓인 잔처럼 조금씩 식어가면서도 끝내 누군가의 손에 닿는 물건.
그래서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커피 쿠폰은 30장이고, 참여자는 12명이다.
추첨기는 아직 몸도 풀지 못했다.
《AI 생존 지도》를 예약 구매한 분이라면 이벤트에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구매 내역을 첨부하고 오픈채팅방에 들어오면 된다. 거창한 행사는 아니다. 커피 한 잔이다. 하지만 바카라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 한 잔의 움직임도 꽤 크게 보인다.
이벤트 페이지
https://vibelabs.kr/event/ai-survival-map
오픈채팅방
https://open.kakao.com/o/gfYQfFPh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20153586
YES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1018764
나는 다시 숫자를 본다.
12명.
아직 작다.
하지만 모든 시작은 대체로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