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정수씨

나는 절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by정수

나는 절대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기억이 점점 또렷해질 무렵부터 한 번도 엄마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난 90년대에는 으레 당연하듯 00 엄마라는 수식어로만 불려졌었다.

엄마는 늘 집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엄마로만 존재했다.

난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도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삶은 절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비장하게 비혼을 꿈꿨던 것도 같다. 물론 현실이 되진 못했지만.


엄마는 늘 편하게 제대로 밥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항상 밥상을 차리고 먹성 좋은 세 남매 생선 발라주랴, 반찬 더 챙겨주랴 엄마는 늘 당연하듯 마지막에 대충 식사를 때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그게 당연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조차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늘 엄마 밥은 식어있었고 맛있는 반찬은 언제나 우리들 차지였는데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단 한 번도 용돈이 끊긴 적이 없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시장에 세 물건을 떼와서

오일장에 팔고 또 농사를 짓고 그럼에도 집은 늘 어렵기만 했다.

그때 엄마는 늘 그늘져 있었다. 행복하게 웃는 얼굴의 엄마를 보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의 그늘진 모습이 나까지 그늘지게 만든다고 원망했다.

엄마니까 힘들어도 그런 모습을 안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철없이 생각했다.

그때 엄마 나이가 딱 지금의 내 나이 또래였는데 엄마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나는 감히 짐작도 못했다.


가세가 점점 기울어져 더 이상 도시에서는 살 수 없게 된 우리는 결국 시골로 이사를 왔다.

하루에 버스 4대 다니는 시댁으로 이사 온 엄마는 어땠을까. 천장에는 쥐가 들끓고 구멍이 뚫려 박스테이프로 급하게 덕지덕지 막아놓은 그 집에서 아이들을 키워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집에서도 엄마는 엄마였다.

아침이면 우리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장에 나갔다. 돌아와서는 또 밭으로 향했다. 엄마가 힘들다고 누워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본 기억이 없다. 아프다고 해서 하루쯤 엄마를 그만둘 수도 없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왜 우리 집은 다른 집처럼 평범하지 않은지, 왜 엄마는 늘 지쳐 있는지, 왜 조금 더 다정하게 웃어주지 않는지. 친구들의 엄마와 비교하며 혼자 부끄러워했던 날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가난해서 싫었고,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싫었고, 무엇보다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누군가를 위해 내 밥을 식혀가며 먹지 않을 거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에게 내어주지도 않을 거고, 내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불리는 삶도 살지 않겠다고.

내 인생의 가장 앞자리에는 언제나 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이 넘은 어느 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처음부터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하루 종일 아이에게 매달려 있다 보면 문득 사라진 내 시간이 억울했고, 뜨거운 밥 한 끼 제때 먹지 못하는 날이면 괜히 서러웠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날에는 대체 나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아이 밥을 먹이느라 정신없이 숟가락을 움직이다가 식탁 한쪽에 놓인 내 밥을 보았다.

김이 다 빠져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엄마가 생각났다.

생선 한 토막을 앞에 두고 세 남매에게 살을 발라주던 엄마.
맛있는 부분은 우리 밥 위에 올려놓고 정작 자신은 남은 가시 주변의 살을 긁어먹던 엄마.
우리가 다 먹고 식탁을 떠난 뒤에야 식어버린 밥을 몇 숟갈 뜨던 엄마.

어릴 때는 너무나 당연해서 기억조차 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그날따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엄마도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겠구나.

엄마도 좋은 것부터 먹고 싶었겠구나.

엄마도 가끔은 누구의 엄마도 아닌, 그냥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었겠구나.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가 평생 ‘엄마’라고만 불렀던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가 되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모든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내가 그렇게나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라는 사람도,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은 아니라는 걸.


그 사람에게도 나처럼 자기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었고,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이제야 그게 궁금해졌다.

엄마가 내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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