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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는가?

‘젠지 스테어’로 드러난 인간관계의 모순은 오래된 이야기다

byFrancis Lee

상대방이 말을 걸었는데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누군가는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상대방이 무례한 말을 했기 때문에 침묵으로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행동인데 해석은 정반대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같은 장면이지만,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경험을 거쳐 만들어진 서로 다른 현실이다.


최근 CNN이 소개한 ‘젠지 스테어(Gen Z stare)’ 현상은 이런 차이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젊은 세대가 질문이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를 무례함이나 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비판하는 사람들과, 억지로 웃고 친절한 척하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맞선다.


CNN은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외모와 임신 상태를 놓고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항의하거나 변명하는 대신 가만히 바라보았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 여성에게 침묵은 상대방의 무례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시이자, 불쾌한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은 상대가 슬롯성이 부족하거나 무례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CNN이 소개한 전문가들은 무표정과 침묵만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단정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당황하거나 긴장했을 때, 적절한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 디지털 소통에 익숙해진 환경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대면 상호작용 감소가 일부 젊은이의 소통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젠지 스테어가 실제로 젊은 세대에 더 흔한 현상인지, 특정한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지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의 예절이 과거와 달라졌는지 여부가 아니다. 같은 행동을 보고도 각자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자신의 해석을 상대방의 실제 의도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젠지 스테어는 일시적인 유행어지만, 그 안에 드러난 인간관계의 모순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판단하고, 그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잊어버린다.


사람은 세상을 아무런 기준 없이 바라볼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환경, 가족과 학교에서 배운 규범, 슬롯적 경험, 과거에 겪은 상처와 성공이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된다. 그 틀은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무엇이 위험하며 무엇이 적절한지 판단하도록 돕는다. 모든 상황에서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해야 한다면 일상적인 행동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사용하는 기준을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는 데 있다.


회사 회의에서 동료가 자신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보자. 발표자는 상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동료는 제안의 문제점을 검토하느라 말을 아끼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즉각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같은 침묵이 한 사람에게는 무시의 표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신중함의 표시다. 발표자가 처음부터 자신을 무시당했다고 확신하면 이후 동료의 행동도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받아들이기 쉽다.


가정에서도 다르지 않다. 퇴근한 가족이 말없이 식탁에 앉아 있으면 다른 가족은 자신에게 불만이 있거나 가족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는 온라인 게임에서 겪은 어려움 때문에 지쳐 있거나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상대의 침묵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순간, 원래 없었던 갈등까지 생겨난다.


이런 오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각자 익숙하게 배운 규범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사에 즉시 대답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낯선 이에게 억지로 웃고 친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한쪽은 무표정을 무례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쪽은 과도한 친절을 형식적인 행동으로 여긴다. 서로 다른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보다 상대방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작은 차이는 세대 갈등으로까지 확대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예의와 바카라임감을 잃었다고 비판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형식과 권위에 집착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는 어느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으로 삼고,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정상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적인 인식 방식에 있다. 여기서 자기중심주의란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타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에게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여기는 심리적 경향이다.


나는 상대방의 침묵을 무례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상대방은 무례한 사람일 것이다. 어떤 말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상대방도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낸다면 상대방도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상대방의 마음속에 투영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행동을 불쾌하게 느꼈다는 사실과 상대방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 의도를 가졌다는 주장은 다르다. 행동의 결과와 행동한 사람의 의도를 구분하지 않으면 오해는 쉽게 확신으로 변한다.


물론 상대방에게 실제로 악의가 있을 수도 있다. 반복적으로 모욕하고 차별하거나 상대의 경계를 무시하는 행동까지 단순한 오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행동에 선의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자신의 판단을 확정적인 진실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내린 판단을 쉽게 수정하지 못한다. 사람은 자신을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의견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부당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도덕성과 지혜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이러한 인정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때 편견이 작동한다.


편견은 반드시 특정 집단을 미워하거나 차별하는 극단적인 태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나이의 사람은 이럴 것이라는 생각,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런 성격일 것이라는 추측,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은 이런 의도를 품었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편견의 일부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상대방의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평소 젊은 세대가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젊은이가 무표정하게 서 있는 장면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느낄 것이다. 반대로 기성세대가 권위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이 낯선 젊은이에게 말을 거는 모습에서 간섭과 통제를 읽어낼 수 있다. 서로 다른 행동을 보더라도 자신의 기존 생각에 부합하는 해석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에는 더 주목하고, 그 믿음에 어긋나는 정보는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기 쉽다. 편견이 위험한 이유는 자신의 오류를 확인할 기회마저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린 판단이 옳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와 슬롯적 갈등에서도 똑같은 구조가 작동한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의 발언을 들으면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전에 발언자의 의도와 인격을 의심한다. 상대가 정바카라을 비판하면 그 비판이 옳은지 따지기보다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부터 확인한다. 반대로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잘못에는 사정이 있었다거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이유를 쉽게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은 구체적인 경험과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 아니라 특정 세대, 정당, 계층을 대표하는 존재로 축소된다. 우리는 실제 상대방과 대화하는 대신, 그에게 덧씌운 집단의 이미지와 싸운다. 편견은 타인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할 필요조차 없다고 믿게 만든다.


디지털 환경은 이런 경향을 강화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대화가 이루어진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자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는 더 많은 관심을 끌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반응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자신의 판단이 슬롯 전체의 상식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디지털 기술 자체가 인간을 편협하게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터넷은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접하고, 과거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복잡한 타인을 쉽게 분류하고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정보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은 흔히 듣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며 자신의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능력도, 타인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태도도 아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찰한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은 관찰된 사실이지만, 나를 무시했다는 것은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행동했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다른 가능성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추측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직접 물어볼 수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동료가 단답으로 대답하거나 평소보다 딱딱한 말투를 쓴다면 무례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바쁜 상황인지, 의견에 이견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가족이 대화 중에 침묵한다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단정하기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묻는 태도다. 상대방을 추궁하거나 답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방식은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진정한 물음은 상대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에게 허용하는 해석의 여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허용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우리는 피곤해서 말수가 줄었다고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의 침묵은 무례함으로 해석하곤 한다. 자신의 실수에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성격과 인격의 문제를 적용한다. 내가 속한 집단의 잘못에는 상황을 고려하면서 상대 집단의 잘못은 그 집단의 본질이 드러난 증거라고 판단한다. 이런 이중적인 기준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해와 동의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왜 공격적으로 말했는지 이해한다고 해서 그 행동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세대의 소통 방식이 어떤 경험에서 비롯됐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업무상 필요한 의사소통의 바카라임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타인과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그의 인간적 존엄을 부정하지 않는 능력이다. 부당한 행동에는 분명히 선을 긋되, 단 한 번의 행동으로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 균형감이다.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누구나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오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을 때 기존의 판단을 바꾸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부당했다면 사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태도는 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젠지 스테어라는 유행은 언젠가 사라지고 다른 세대 유행어와 새로운 슬롯적 논쟁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상대방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상, 상대방의 마음을 모두 안다고 확신할 근거는 없다. 낯선 행동을 만났을 때 성급하게 규정하기보다 아직 모르는 사정이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단순히 관심 부족에서 찾기 쉽다. 하지만 더 깊은 문제는 자신의 경험과 기준으로 상대방을 해석한 뒤, 그 해석을 실제 모습이라고 너무 쉽게 믿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을 좋아하거나 모든 갈등을 피할 필요는 없다. 다만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고, 자신의 해석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미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믿는 마음부터 의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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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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