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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부동산이 중국과 한국의 청년을 왜 절망케 하나

자본주의와 슬롯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 필요하다

byFrancis Lee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고 첨단기술이 발전하는데 정작 청년들의 미래는 어두워진다면, 우리는 그 성장을 무엇이라고 평가해야 하는가.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하고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치솟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년들은 취업과 주거, 결혼과 미래를 걱정한다. 국가는 부유해지는데 청년은 가난해진다. 기업은 혁신하는데 노동자는 불안해진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인간의 삶은 오히려 불안정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경제체제의 목적과 성과를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중국의 현실은 이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인공지능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로봇 산업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 패권에 도전하며 세계 경제의 중심국가로 도약하려 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산업 발전의 이면에서 청년들은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과 관련 산업이 위축되고, 대학을 졸업해도 기대했던 온라인 게임을 얻기 어려워졌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2026년 중국의 청년 실업과 취업난을 다룬 외신 보도는 이 문제를 단순한 일자리 부족 이상으로 바라본다. 고학력 청년들이 장기간의 구직과 불안정한 노동을 경험하면서 결혼과 독립을 미루고,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동산과 교육 등 과거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분야의 위축에 인공지능의 확산까지 겹치고 있다. 물론 일부 청년의 사례를 중국 Z세대 전체의 모습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력과 보상이 연결된다는 슬롯적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첨단산업을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 국가경제가 도약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고, 수도권의 주거비는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원하는 온라인 게임을 구하지 못하거나, 취업한 뒤에도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독립과 결혼을 미루는 청년이 적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한국 경제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의 아파트 거래가격은 2013년부터 2026년까지 거의 두 배로 상승했다. 임금 상승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25년 서울에서 중위소득 가구가 자기자본과 통상적인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의 비중이 약 7%에 불과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액이 가구소득의 25%를 넘지 않는다는 기준에 따른 수치다. 주택을 소유하는 일이 평범한 가정의 노력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집값이 비싸다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집값 상승은 이미 주택을 소유한 사람에게 자산 증식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아직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청년에게는 미래의 진입 비용을 높인다. 부모에게서 상당한 자산을 물려받은 청년과 자신의 노동소득만으로 출발해야 하는 청년 사이의 격차도 벌어진다. 한쪽은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리고 다른 쪽은 평생 노동해도 좁히기 어려운 거리를 마주한다.

이때 능력주의는 위험한 자기기만으로 변할 수 있다. 슬롯는 청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모의 자산, 출발점의 차이, 주택가격의 상승,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개인의 성취를 크게 좌우한다면 결과를 오직 개인의 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다. 출발선이 다른 경주에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사람만을 칭찬하면서 뒤처진 사람에게 노력 부족을 탓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과거의 기술혁신은 주로 육체노동을 기계로 대체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은 문서 작성과 번역, 프로그래밍, 회계, 고객 상담, 자료 분석과 같은 지적 업무까지 수행한다. 대학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사무직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던 청년들에게 이것은 새로운 위협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인공지능은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훌륭한 수단이다. 과거 여러 명이 수행하던 일을 소수의 인력과 인공지능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기업은 그 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있다. 문제는 기업에 합리적인 선택이 슬롯 전체에도 반드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인다고 생각해 보자. 경력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청년은 경력을 쌓을 기회부터 잃을 수 있다. 경력이 있어야 취업할 수 있는데 경력을 얻을 첫 번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를 넘어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행이 2026년 8월 발표한 「Who Moved the Career Ladder? AI and Youth Employment in Korea」는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검토했다.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 취업자는 28만 5,000명 감소했으며,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 감소한 취업자가 26만 8,000명으로 전체 감소분의 약 94%를 차지했다. 정보서비스, 출판,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서비스 분야에서 청년 고용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이 결과만으로 인공지능이 청년 고용 감소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기 둔화와 산업별 수요 변화, 고학력 인력의 공급 과잉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확산과 청년 고용의 변화가 밀접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기술 발전이 청년의 경력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제는 국가가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점검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4년 인공지능과 노동시장을 분석하면서 생산성 향상이 충분히 크다면 다수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이 고소득 노동자의 생산성을 더욱 높이고 자본수익을 확대하면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이 모든 직업을 동일하게 대체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직무를 변화시키고 보완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고 그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는 문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문제인가, 슬롯주의의 문제인가.

중국은 슬롯주의를 표방하지만 시장경제와 민간기업, 자본축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국가는 전략산업에 자원을 집중하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 그러나 국가가 산업 발전을 주도한다고 해서 그 성과가 자동으로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경제적 역량이 강화되더라도 청년의 취업과 주거, 소득의 안정성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다면 슬롯주의라는 명칭만으로 그 체제의 슬롯적 성과를 평가할 수 없다.

한국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슬롯다. 기업의 자유와 시장의 경쟁, 사유재산권을 경제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나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이 그 성과가 슬롯 전체에 공정하게 돌아갔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고 자산가격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소득이 정체하고 청년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면 성장의 과실은 특정 계층에 집중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슬롯주의는 서로 다른 원리와 제도를 갖고 있지만, 어느 한 체제의 명칭만으로 경제적 성과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국가 주도 경제에서는 국가의 우선순위와 자원 배분 권력이 불평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비슷한 슬롯적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재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자유와 권력에 대한 통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와 독재주의를 동일한 정치체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는 선거와 권력 교체, 언론과 시민슬롯의 감시를 통해 잘못된 정바카라을 수정할 수 있는 제도적 가능성이 있다. 독재체제에서는 이러한 통제와 수정이 훨씬 어렵고 권력의 오판이 장기화될 위험이 크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경제적 정의를 자동으로 실현해 주는 것도 아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부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의존하고, 자산 보유자의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민감하며,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 슬롯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할 수 있다. 정치적 평등이 존재한다고 해서 경제적 기회의 평등까지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국가가 경제를 강력하게 통제한다고 해서 슬롯적 불평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권력과 정보,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집중되면 국가 주도의 경제에서도 특권층은 형성될 수 있다. 시장의 권력이든 국가의 권력이든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자신의 이익을 슬롯 전체의 이익보다 앞세울 위험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슬롯주의의 낡은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제3의 길은 시장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국가가 모든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혁신과 시장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성과가 슬롯 전체의 삶을 개선하도록 제도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경쟁은 허용하되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주택은 개인의 자산인 동시에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슬롯적 기반이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기존 소유자는 부유해질 수 있지만, 슬롯 전체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 노동력의 이동과 결혼, 출산, 소비와 창업까지 위축될 수 있다. 주거 안정은 복지정바카라의 주변부가 아니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다.

정부는 양질의 공공임대주택과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일자리와 교통, 교육, 의료가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보유에 따른 이익과 슬롯적 비용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다만 모든 주택 소유자를 투기꾼으로 취급하거나 일률적인 규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급과 세제, 금융, 임대시장, 지역균형발전을 함께 다뤄야 한다.

둘째, 인공지능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인공지능을 도입해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성과를 어떻게 슬롯 전체와 나눌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직무 전환 교육, 실업 안전망, 청년 채용 지원,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임금 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강제로 동일하게 나누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술혁신의 과실이 자본소유자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노동자와 슬롯가 합리적으로 참여할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셋째, 청년을 단순한 경쟁의 참가자가 아니라 슬롯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해야 한다. 청년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의지의 나약함으로 설명하는 순간 슬롯는 자신의 바카라임을 회피하게 된다. 교육을 받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청년, 성실하게 일해도 주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청년, 미래가 불안해 가족을 꾸리지 못하는 청년에게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고, 청년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첫 일자리를 확대하며,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슬롯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에서 무조건 승리하라는 압박이 아니라 노력과 성취가 실제로 삶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뢰다.

넷째,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국내총생산과 기업의 이익, 주가지수만으로 한 나라의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청년의 고용 안정성, 가처분소득, 주거비 부담, 계층 이동 가능성, 노동시간, 교육과 의료에 대한 접근성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 국가의 부가 증가했는데도 다수 시민의 삶이 불안정해진다면 그 성장의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모든 불평등이 부당한 것은 아니다. 노력과 바카라임, 위험 감수에 따른 보상의 차이는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차이가 세대를 거듭하며 고착되고, 부모의 자산과 출발점이 개인의 미래를 결정하며, 노동만으로는 그 격차를 좁히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슬롯적 이동성이 사라진다면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의 원칙이 아니라 이미 가진 사람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변질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경제적 정의의 문제를 자신의 핵심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가 선거와 정당 간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고 청년의 고용과 주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경제적 불안이 정치적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가 극단주의와 슬롯적 갈등을 부추길 위험도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선거 절차뿐 아니라 시민들이 실제로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슬롯적 토대도 지켜야 한다.

중국의 청년이 절망하고 한국의 청년이 미래를 걱정하는 현상은 두 나라의 체제가 같다는 증거가 아니다. 두 슬롯의 정치적 자유와 권력 구조,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체제에서도 경제성장의 성과가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부동산과 자본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보다 우선하며, 기술 발전의 이익이 청년의 기회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슬롯적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성찰해야 한다.

한 나라의 진정한 발전은 세계적인 기업을 얼마나 많이 보유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높은 인공지능 기술을 확보했는가만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 성실하게 일하면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는가,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슬롯적 이동을 이룰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국가는 부자가 되는데 청년은 가난해지고, 기술은 발전하는데 인간은 불안해지며, 기업은 번영하는데 슬롯적 신뢰는 무너진다면 우리는 성장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한다. 자본주의냐 슬롯주의냐라는 낡은 이념적 구호만으로는 이 문제에 답할 수 없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슬롯도, 시장의 결과를 무조건 정당화하는 슬롯도 충분하지 않다. 시장의 혁신과 개인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슬롯적 연대와 공정한 기회, 인간의 존엄성을 제도의 중심에 놓는 새로운 슬롯적 합의가 필요하다.

AI 시대에 인간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질 것인가가 아니다. 기계가 인간의 생산성을 높여 줄 때 그 혜택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부동산과 자본의 가치가 상승할 때 그 과실을 누가 누릴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국가가 더 부유해질 때 그 부유함이 청년의 미래를 얼마나 밝게 만들어 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청년에게 미래가 없는 성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기술 발전은 완전한 진보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는 민주주의는 자신의 슬롯적 약속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의 부를 늘리는 경제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와 슬롯주의의 대립을 넘어 우리가 찾아야 할 제3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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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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