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조작에 휘둘리는 2030 세대, 매우 심각하다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역사왜곡이라고 분노한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도 모른다. 그런데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도대체 무엇에 그렇게 흥분하는가. 영화인가, 정치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인가.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슬롯의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낸다.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결론부터 내리는 정치, 검증하기 전에 제목부터 뽑는 언론, 그리고 그 제목만 읽고 세상을 다 안다는 듯 흥분하는 일부 시민의 모습이다. 특히 이른바 ‘2030 구국 세대’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지키겠다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사실보다 진영이 앞서고, 증거보다 분노가 앞서는 나라가 과연 당신들이 원하는 나라인가.
오마이뉴스가 2026년 10월 17일 보도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분석은 이 논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기사에 따르면 개혁연구원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25.5%는 영화의 존재조차 몰랐고, 38.7%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응답은 35.9%였다. 그런데 응답자의 58.2%가 역사왜곡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역사왜곡 여부에 관한 의견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관련 자료를 충분히 접한 뒤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역사왜곡이라는 결론부터 내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역사적 판단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공한 해석을 자신의 판단이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을 거치면서 어떤 의미로 포장되는가 하는 문제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한길리서치의 조사에서는 역사왜곡에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51.6%, 예술 창작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응답이 37.7%였다. 그러나 영화의 존재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영화에 대한 슬롯적 인식과 영화를 직접 보고 내린 평가는 서로 다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역사왜곡 논란에 관해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수치를 곧바로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평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이런 한계를 설명하지 않은 채 숫자만 앞세운다면 독자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여론조사는 숫자를 제공한다. 그러나 숫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조사 결과를 특정 세대의 분노나 집단적 반발로 확대하려면 그에 맞는 근거가 필요하다. 질문의 문구, 응답자의 인지도, 표본의 대표성, 조사 방식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몇 개의 숫자와 자극적인 제목만으로 세대 전체의 태도를 규정하는 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여론의 연출에 가깝다.
특히 일부 보수 언론의 보도 방식은 더욱 엄격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관점을 가진 언론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특정한 정치적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 결론에 유리한 정보만 강조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처럼 전달할 때 발생한다.
청년 세대의 반응을 보도하면서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보도의 중대한 결함이다. 청년들이 역사적 사실에 민감하다는 평가도, 청년들이 특정한 정치적 선전에 쉽게 흔들린다는 평가도 모두 증거를 필요로 한다. 언론이 원하는 청년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여론조사 결과를 그 틀에 끼워 맞춘다면 그것은 청년을 이해하는 보도가 아니라 청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보도다.
물론 모든 보수 언론이 날조를 일삼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날조라는 표현을 쓰려면 의도적인 허위 작성이나 사실의 조작을 구체적인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보도, 맥락을 잘라낸 보도, 근거가 부족한 의혹을 반복해서 부각하는 보도는 그 자체로 비판받아야 한다. 언론의 정치적 편향을 비판하려면 우리 역시 사실과 증거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의 왜곡을 비판하면서 또 다른 왜곡을 만들어 내는 모순에 빠진다.
그렇다면 이른바 ‘2030 구국 세대’는 어떤가. 이들이 정말 나라를 걱정한다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분노가 아니라 검증이다. 애국심은 큰 목소리로 증명되지 않는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 정치인의 주장에 열광한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이 믿는 진영에 불리한 증거도 받아들이며, 틀렸을 때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성숙한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청년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진영의 주장에는 관대하면서 반대 진영의 주장에는 무자비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진영주의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의 주장은 출처도 확인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상대 진영에 불리한 의혹은 사실로 단정한다면 그것은 정의감이 아니라 선택적 분노다. 자신이 믿는 유튜버의 말에는 열광하면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매국노나 적으로 몰아붙인다면, 그것은 비판적 사고가 아니라 집단적 확신에 갇힌 모습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현상이 청년 세대의 정치적 열정과 결합할 때다. 젊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이가 젊다고 저절로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도 편견에 빠질 수 있고, 집단의 압력에 굴복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주장만 반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무엇을 믿을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정치적 선동은 대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편은 정의롭고 상대편은 악하다는 확신을 심어 준다. 그다음에는 상대편의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든 악의 증거로 해석하게 만든다. 반대되는 자료가 나오면 음모라고 주장하고, 사실관계가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 다른 의혹을 꺼낸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이야기를 방어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진실을 밝히려는 시민인가, 아니면 시민의 분노를 동원해 조회 수와 영향력,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는 사람인가. 정치적 분노가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인물이나 매체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우리는 그 분노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물어야 한다. 다만 개별 언론이나 정치인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하려면 그 의도와 행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비판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그 날카로움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영화 〈암살자(들)〉의 논란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느냐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적 논쟁이 언론을 통해 증폭되고, 그 보도가 다시 시민의 감정을 자극하며, 자극받은 시민의 반응이 또 다른 보도의 근거로 활용되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반복해서 말하면 마치 슬롯적으로 확인된 사실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반복은 증거가 아니다. 다수의 분노도 진실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제 ‘2030 구국 세대’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묻자. 당신들은 정말 나라를 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자신이 믿는 정보부터 검증하라.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다고 말하라. 내용을 모른다면 모른다고 인정하라.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은 공유하지 말고,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주장도 반대 진영의 주장과 똑같이 엄격하게 검증하라. 그것이 귀찮고 불편하다면 애국을 말할 자격부터 돌아봐야 한다.
나라를 망치는 것은 반드시 외부의 적만이 아니다. 내부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선동을 정의로 착각하며, 자기 진영의 오류를 끝까지 감싸는 시민도 민주주의를 병들게 할 수 있다. 언론은 시민의 판단을 도와야지 감정을 조종해서는 안 된다. 시민은 언론을 이용해 사실을 확인해야지 언론의 제목을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분노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분노를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검증의 바카라임이 시작된다.
언론이 만든 프레임을 사실로 믿고, 정치적 흥분을 애국심으로 착각하며, 자기 진영의 거짓에는 눈을 감는다면 그것은 구국이 아니라 자해다.
2030 세대가 정말 미래를 바카라임질 세대라면 기성세대의 편견을 물려받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의 선동을 거부하고, 자신이 믿는 진영의 거짓까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구하는 것은 분노의 크기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용기다.
진실을 외면한 애국심은 애국심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 시민에게 씌운 또 하나의 굴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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