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중독은 외적 자극과 내적 결단의 합작품이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을 파괴하는 물질을 반복해서 찾는다. 극우 이념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의 판단력을 파괴하는 주장마저 반복해서 소비한다. 한쪽은 약물을 통해 일시적인 쾌락이나 불안의 해소를 추구하고, 다른 한쪽은 극단적인 이념을 통해 분노의 정당화와 집단적 소속감, 심리적 우월감을 얻는다. 두 현상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자신의 삶과 판단에 해로운 결과가 나타나는데도 특정 대상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비교할 만한 문제가 존재한다.
물론 극우주의자를 마약 중독자와 동일한 의학적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정치적 신념은 그 자체로 질병이 아니며, 강한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중독되었다고 진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극단적인 이념이 개인의 판단을 지배하고, 반대되는 증거를 거부하게 하며,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사실 확인보다 우선하게 만드는 과정은 중독 연구의 관점에서 분석할 가치가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은 왜 자신에게 해로운 대상에 반복해서 빠져드는가. 외부의 선동에 속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 선동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인간을 외부 자극에 일방적으로 조종당하는 수동적 존재로 보아서도 안 되고, 모든 결과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는 약물 중독을 단순한 도덕적 타락이나 의지의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고 지적한다. 중독에는 뇌의 보상과 학습 체계, 유전적 취약성, 심리적 상태, 슬롯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조지 쿱과 노라 볼코프가 2016년 학술지 《랜싯 정신의학》에 발표한 중독의 신경생물학적 분석 역시 보상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 부정적인 감정 상태, 실행 기능의 저하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중독 행동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독이 처음부터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처음에는 호기심이나 쾌락, 긴장 완화, 또래 관계 등이 행동의 동기가 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처음 접하고, 어떤 사람은 도박을 시작하며, 또 어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정치 집단에 관심을 갖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상당 부분 자신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정 행동이 반복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행동과 보상이 연결되고, 그 행동을 유발하는 장소와 사람, 이미지와 감정까지 강력한 단서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보상을 경험했던 대상이 다시 욕구를 일으킨다. 그 결과 처음의 선택은 습관으로 굳어지고, 경우에 따라 부정적인 결과를 알고도 행동을 반복하는 강박적 양상으로 발전한다.
NIAAA가 설명하는 알코올 중독의 순환 과정도 이러한 특징을 보여준다. 반복적인 음주는 보상과 습관 형성에 관여하는 신경회로를 변화시키며, 술과 연결된 단서는 다시 음주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의존이 심해지면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불안과 불쾌감을 피하기 위해 음주하는 양상도 나타난다. 처음에는 쾌락을 얻으려 했던 행동이 나중에는 고통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극우 이념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약물이 뇌에 미치는 직접적인 생리적 효과와 정치적 정보가 인간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적인 자극이 욕구를 강화하고, 그 욕구가 다시 반복 행동을 유도한다는 일반적인 학습의 원리는 이념의 수용 과정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가령 한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과 슬롯적 소외를 경험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 줄 원인을 찾는다. 복잡한 경제구조와 노동시장, 정바카라의 문제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반면 특정 외국인 집단이나 정치적 반대편이 자신의 불행을 초래했다는 주장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더욱이 그 주장이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해 준다면 심리적인 보상까지 제공한다.
처음에는 하나의 주장에 동의했을 뿐이다. 그러나 비슷한 주장을 반복해서 접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 주장은 점점 자신의 정체성에 편입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주장은 옳고, 반대편의 주장은 악의적이라는 인식이 강화된다. 반대되는 증거를 접했을 때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그 증거를 제시한 언론과 전문가를 적으로 규정한다. 결국 신념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로 변한다.
여기서 외부의 선동과 개인의 선택이 결합한다. 정치 선동가는 개인의 분노와 두려움을 자극한다. 개인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메시지를 선택하고 반복해서 소비한다. 그 소비가 조회수와 후원, 집단의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면 선동가는 더욱 자극적인 메시지를 생산할 유인을 얻는다. 선동은 소비자를 만들고, 소비자는 다시 선동의 시장을 키운다. 이 과정은 정치적 극단주의가 어떻게 슬롯적 보상 체계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이용자가 어떤 콘텐츠에 반응하는지에 따라 유사한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고, 정치적 집단은 온라인 공간에서 소속감과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알고리즘이 모든 사람을 자동으로 극단주의자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소셜미디어와 극단주의에 관한 연구 논의도 플랫폼의 영향만으로 급진화를 설명하는 단순한 접근에 의문을 제기한다. 플랫폼은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메시지를 확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이용자의 기존 신념과 집단적 동학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외부 자극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똑같은 선전물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비판하고 다른 사람은 환호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자료를 찾아보지만, 다른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한다. 인간은 외부의 영향을 받는 존재인 동시에 정보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어디까지 타당한가.
이 질문에 답할 때는 중독의 시작과 진행, 회복을 구분해야 한다. 처음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개인의 의지가 상당히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약물 의존이 심해지면 통제력이 약해질 수 있고, 반복된 행동이 자동화되면서 중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처음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의 모든 행동에 동일한 바카라임을 물을 수는 없다. 반대로 중독의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사실만으로 개인의 행동과 판단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극우 이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자신이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주장이 어떤 증거에 근거하는지, 반대되는 사실을 왜 거부하는지 성찰할 바카라임이 있다. 특히 자신이 믿는 주장을 검증하기보다 반복해서 소비하고, 타인에게 확산하며, 반대자를 공격하는 행동에는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를 넘어서는 능동적 참여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모든 극우 지지자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극우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는 충분한 정보 없이 특정 주장을 믿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 불안 때문에 그 메시지에 끌리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동기와 바카라임은 서로 다르다. 과학적인 분석은 이 차이를 구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기합리화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이미 많은 시간과 감정, 돈과 인간관계를 투자했다면 그 선택을 부정하는 데 더 큰 심리적 비용이 발생한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판단과 행동을 다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정보를 찾고, 반대되는 정보를 외면하며, 때로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한다.
극우 정치에서 이러한 현상은 특히 위험하다. 역사적 사실이 자신의 신념과 충돌하면 사실을 검토하기보다 역사학자와 언론을 불신한다. 통계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통계의 생산자를 공격한다. 자신의 집단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예외라고 주장하면서 상대 집단의 잘못은 전체의 본질로 확대한다. 이렇게 되면 신념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사라진다.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사람을 설득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개인의 판단력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고, 슬롯적 신뢰가 무너지며, 민주주의의 공론장이 훼손될 수 있다. 정치적 반대자는 설득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 된다. 사실을 확인하는 언론은 불편한 적대 세력으로 취급되고, 정치적 충성은 객관적인 판단보다 우선한다. 극우 이념이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개인의 신념 문제를 넘어 공동체의 안전과 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슬롯적 문제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독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비유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마약 중독자는 치료와 회복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다. 정치적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행동에 대해 토론과 비판, 필요한 경우 법적 바카라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두 경우의 대응은 달라야 한다. 중독이라는 단어로 정치적 반대자를 낙인찍는다면 오히려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게 된다. 우리가 분석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라 특정 행동과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무엇에 의해 강화되며, 어떤 피해를 발생시키는가 하는 문제다.
그렇다고 정치적 극단주의를 단순히 개인의 취향으로 방치해서도 안 된다.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비판과 바카라임을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병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념이 사실과 논증을 견딜 수 있는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검토하는 일이다.
극우 이념의 확산을 막으려면 외부의 선동 구조를 바꾸는 일과 개인의 비판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일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플랫폼은 자극적이고 허위인 콘텐츠의 확산 구조를 점검해야 하고, 정치인은 불안과 분노를 이용해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언어를 경계해야 한다. 교육은 정답을 암기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자료를 비교하고 증거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개인 역시 자신이 믿고 싶은 주장일수록 더 엄격하게 검증하는 태도를 익혀야 한다.
특히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는 능력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이다. 내가 믿는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에 옳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속한 집단이 믿기 때문에 옳다고 느끼는 것인가. 내가 반대편의 주장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주장의 근거가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정체성과 자존심이 흔들리기 때문인가. 이러한 질문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이야말로 맹신을 막는 출발점이다.
중독은 외부의 자극과 개인의 선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중은 사람과 상황, 중독의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선택했던 행동이 나중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으며, 이미 형성된 의존은 다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독을 이해한다는 것은 외부의 바카라임과 개인의 바카라임 가운데 하나만 고르는 일이 아니다. 둘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강화하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좁아지는지 분석하는 일이다.
마약 중독이 인간의 건강과 삶을 파괴할 수 있듯이, 검증을 거부하는 극우 이념은 인간의 판단력과 슬롯적 관계, 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할 수 있다. 두 현상은 동일하지 않지만, 어떤 대상이 자신의 판단을 지배하고 반대되는 증거를 차단하며 반복적인 집착을 강화한다면 그 작동 방식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란 외부의 영향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욕구와 편견을 인식하고, 자신이 믿는 주장조차 검증하며, 필요하다면 과거의 선택을 수정할 수 있는 인간이다. 외부의 선동만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선동에 이용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반대로 모든 바카라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슬롯는 사람을 중독과 극단주의로 이끄는 환경을 방치하게 된다.
극우 중독과 마약 중독이 비슷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의학적·생물학적으로 두 현상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복적인 보상과 욕구, 습관, 자기합리화가 판단과 행동을 지배하는 과정은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마약이나 극단적인 이념 그 자체만이 아니다. 자신의 욕구를 자극하는 대상에 반복해서 끌리면서도 자신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이다. 외부의 선동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지만, 그 선동이 지속되는 데에는 우리가 그것을 소비하고 정당화하는 방식도 영향을 미친다.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선택할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왜 그것을 원하는지 질문하고, 그 선택이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판단하며, 잘못된 선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중독은 바로 자신의 판단이 더 이상 검증받을 필요가 없다고 믿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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