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늘 민간인의 희생을 앞세울 뿐이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작은 도시 올레시키에서 사람들이 잡초를 삶아 먹고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주 올레시키에는 전쟁 전 약 2만4천 명이 살았지만, 지금 남은 주민은 약 2천 명으로 추산된다. 식량과 의약품은 바닥났고 안전한 탈출로도 없다. 주민들은 정원에서 기르던 채소가 떨어지자 쇠비름과 명아주 같은 풀을 삶아 먹으며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이용해 식량을 투하했지만, 그마저도 정상적인 구호체계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가자지구에서도 우리는 굶주림과 식량·식수 부족을 목격했다.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들은 전쟁 과정에서 식량과 구호품의 접근이 심각하게 제한되면서 광범위한 기아와 영양실조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유엔 인권기구의 보고서 역시 2025년 가자에서 기아가 대규모로 발생했고, 수십만 명이 극심한 식량불안에 놓였다고 기록했다. 이 사태의 원인과 바카라임을 둘러싸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굶어 죽는 사람은 전쟁을 결정한 정치지도자도,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도 아닌 민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보다 80여 년 전에는 레닌그라드가 있었다.
1941년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면서 도시는 약 900일 동안 고립됐다. 식량과 연료가 극도로 부족해졌고 시민들은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전쟁은 도시의 군사시설만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의 삶을 압박했다. 집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고, 난방이 끊기고,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레닌그라드의 비극이 보여주는 것은 포위 전의 본질이다. 적군을 굴복시키기 위해 도시를 둘러싸면 그 안에는 군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와 노인, 환자와 노동자,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함께 갇힌다.
바르샤바도 마찬가지였다.
나치 독일은 1940년 바르샤바 게토를 설치하면서 유대인들을 도시의 극히 좁은 지역에 몰아넣었다. 전체 인구의 약 30%가 도시 면적의 2.4%에 불과한 공간에 갇혔다. 극심한 과밀과 부족한 배급, 비위생적인 환경은 질병과 굶주림을 불러왔고 매달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대규모 강제이송과 학살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역사를 이미 알고 있다.
알고도 반복하고 있다.
올레시키의 주민들이 풀을 삶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에서는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레닌그라드의 굶주린 시민과 바르샤바의 굶주린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가자지구에서 굶주리는 어린이를 보면서도 어느 편의 바카라임인가만 따진다면, 우리는 전쟁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놓치게 된다.
왜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인간의 생존권이 무너지는가.
전쟁은 본래 군대와 군대의 충돌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전쟁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군대가 움직이면 도시는 파괴되고, 식량 공급망이 끊기며, 병원이 멈추고, 수도와 전기가 끊긴다. 사람들은 피난을 떠나야 하고, 피난길마저 공격받을 수 있다. 결국 군인이 아닌 사람이 전쟁의 비용을 지불한다.
국제인도법이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포위전에서도 민간인은 보호받아야 하며, 민간인을 굶겨 적을 항복시키는 것을 전쟁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확히 설명한다. 민간인은 포위된 지역을 떠날 수 있어야 하며, 식량·물·의료품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에 대한 인도적 접근도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전쟁은 법보다 잔인하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에게는 명분이 있다.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적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질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테러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포탄이 떨어지는 집 안에는 정치적 명분이 없다.
그곳에는 아이가 있고, 노인이 있고, 밥을 먹던 사람이 있다.
전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거대한 단어를 사용한다. 국가, 안보, 영토, 역사, 민족, 정의, 자유.
하지만 전쟁이 끝나갈 때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훨씬 작다.
밥.
물.
약.
집.
가족.
전쟁은 이 작은 것들을 먼저 빼앗는다.
그래서 전쟁의 가장 잔인한 역설은 이것이다.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과 전쟁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다르다.
정치지도자는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 장군은 작전을 명령할 수 있다. 군인은 총을 쏠 수 있다. 그러나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 그 결과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평범한 시민이다.
역사는 이 사실을 수없이 증명했다.
레닌그라드가 그랬고 바르샤바가 그랬다. 베를린과 드레스덴도 전쟁의 참상을 겪었다. 한국전쟁에서도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베트남과 사라예보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오늘날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의 여러 도시에서도 같은 질문이 되풀이되고 있다.
인류는 왜 이토록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도 전쟁을 멈추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는가.
물론 모든 전쟁을 단순하게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침략과 방어가 같을 수 없고,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과 군사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부수적 피해도 구별해야 한다. 바카라임 역시 각각의 행위와 증거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강력한 원칙이 필요하다.
어느 편이든 민간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우리 편의 민간인이 죽으면 비극이고 상대편의 민간인이 죽으면 통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편이 식량을 차단하면 군사적 필요이고 상대편이 차단하면 전쟁범죄라는 식의 이중잣대도 안 된다.
민간인은 어느 국적이든 민간인이다.
어느 종교를 믿든 민간인이다.
어느 국기를 들고 있든 민간인이다.
전쟁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답은 전쟁이 일어난 뒤 더 좋은 무기를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외교적 협상을 끝까지 유지하고, 국제기구의 중재를 강화하고,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한 바카라임을 실질적으로 묻고, 민간인 보호를 위한 인도적 통로를 강제할 수 있는 국제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전쟁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는 순간 인간은 죽음에도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수천 명이 죽었다”는 뉴스에 충격을 받는다. 며칠 뒤에는 “수만 명이 죽었다”는 뉴스에도 무감각해진다. 어느 순간 사망자 숫자가 전황을 설명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하지만 숫자 하나하나는 한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내일의 계획이 있었다.
레닌그라드의 굶주린 아이도 그랬고, 바르샤바의 유대인 가족도 그랬으며, 가자지구의 아이도 그렇고, 올레시키에서 잡초를 삶아 먹는 아이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이야기할 때 승패부터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는가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얼마나 많은 아이가 부모를 잃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주렸는가.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그 바카라임을 누가 질 것인가.
전쟁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지진이나 태풍처럼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정치적 결정이고 군사적 결정이며 인간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막는 것도 인간의 선택이어야 한다.
올레시키에서 사람들이 풀을 삶아 먹는 2026년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1940년대 레닌그라드와 바르샤바를 기억해야 한다. 가자지구의 굶주린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무서운 교훈은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가가 아니다.
인간은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알고도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말은 이상주의자의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현실주의다.
전쟁에는 영웅이 있을 수 있다. 전쟁에는 승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터에는 언제나 죽은 아이와 굶주린 가족이 남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승전국의 깃발도, 패전국의 변명도 필요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살아남을 수 있는 하루다.
그 하루를 빼앗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문명이 전쟁 앞에서 지켜야 할 가장 마지막 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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