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이재명 정부가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될 때가 되었다

byFrancis Lee

정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는가. 임기가 절반을 지나서인가.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질 때인가. 아니면 야당이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올 때인가.

어쩌면 정권의 노화는 훨씬 일찍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국민이 더 이상 정부의 약속을 미래형으로 듣지 않고 현재형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잘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지금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 정권은 비로소 권력의 가장 냉혹한 시험대에 오른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흐름은 바로 이 전환점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43.3%, 부정평가는 53.0%로 나타났다. 긍정평가는 4주 연속 하락했고, 대통령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 44.6%보다 낮아지는 현상도 처음 나타났다. 물론 숫자 자체만으로 정권의 위기를 선언할 수는 없다. 40%대 지지는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기반이다. 그러나 정치에서 절대적인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리고 지금 방향은 분명 아래로 향하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김어준이 이 현상을 “코어 지지층이 빠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앞서 핵심 지지층을 두고 “등을 돌린 것은 아니고 팔짱을 꼈다”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는 정치의 본질이 들어 있다. 정치적 핵심 지지층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작은 실수를 했다고 곧바로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한 인내심으로 정권을 방어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적극적인 박수를 멈추고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지지율의 출렁임이 아니라 기대와 현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제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국민이 이재명 대통령을 싫어하기 시작했느냐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정부가 맞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정권은 어려워진다.

선거는 미래를 파는 정치다. 후보는 국민에게 약속한다. 경제를 살리겠다, 민생을 안정시키겠다, 나라를 바꾸겠다, 이전 정부와는 다르겠다고 말한다. 유권자는 그 미래에 표를 준다. 그러나 집권하는 순간 정치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로 바뀐다. 이제 국민은 약속을 듣지 않는다. 결과를 본다.

이것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했던 ‘기대’의 정치경제학과도 연결된다. 경제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현재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투자와 소비, 고용과 자산가격을 움직인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정권 초기에 국민의 높은 기대는 정부의 실제 성과 이상으로 정부를 밀어준다. “이 정부라면 뭔가 해낼 것이다”라는 믿음이 정치적 자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는 양날의 칼이다.

기대가 현실을 앞서가면 그 차이는 언젠가 실망으로 돌아온다. 정부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이 기대했던 속도와 규모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 초기의 높은 지지율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부채다. 높은 기대를 받은 정부일수록 더 높은 성과를 요구받는다. 국민은 정부에게 “조금 잘하라”라고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이전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라고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그 기대의 청구서를 받고 있다.

더구나 집권 2년 차에 들어서면 정권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신혼기를 벗어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새로운 뉴스가 되던 시기는 지나간다. 야당의 실패가 정부의 성과로 착각되는 시간도 짧아진다. 국민은 정부를 하나의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행정과 경제와 민생을 관리하는 조직으로 보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부터 진짜 국정운영 능력이 드러난다.

여기서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슘페터에게 자본주의의 발전은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새로운 기술과 기업, 새로운 생산방식이 낡은 것을 밀어내는 과정이었다. 발전에는 파괴가 필요했다.

정권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이전 정부의 정바카라을 비판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자기 진영 안의 낡은 사고방식과 이해관계까지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남의 것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자기편의 낡은 것을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이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과거 정부와의 차별성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지지층의 기대와 요구를 넘어서는 정치적 결단이다.

정권이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기 시작하면 개혁은 쉽게 진영정치로 변한다. 지지층이 좋아하는 정바카라은 강화하고, 지지층이 싫어하는 정바카라은 미루는 방식으로는 국가 전체를 바꿀 수 없다.

정권이 진정으로 국가를 변화시키려면 때로는 자기편의 박수를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정치에 적용하는 의미다.

낡은 정치적 관행을 깨뜨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규제와 기득권을 개혁해야 하고, 미래산업에 자원을 재배분해야 하며,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제도는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기대했던 ‘변화’의 실체여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흔히 개혁을 말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익숙한 질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남의 기득권은 적폐이고 자기편의 기득권은 이해관계라고 부른다. 상대 진영의 특권은 청산해야 할 대상이지만 자기 진영의 특권은 보호해야 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중성이 반복되면 국민은 금방 알아챈다. 그래서 외치게 된다.

“결국 정권만 바뀌었을 뿐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이때 기대는 실망으로 변한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 슬롯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단순한 불평등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가와 정치에 대해 갖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커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평등과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만든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왕의 신하가 아니다. 그는 정부를 평가하는 주권자다.

따라서 국민은 정부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정부가 잘하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잘못하면 비판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정권이 국민에게 “우리가 이렇게 많이 했는데 왜 몰라주느냐”라고 항의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기본 관계가 뒤집힌다.

정부가 국민에게 고마움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정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질서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층의 박수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다. 그리고 신뢰는 홍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는 성과로 만들어진다.

레이 달리오의 ‘국가와 제국의 흥망성쇠’에 관한 논의 역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준다. 달리오는 국가의 흥망을 단순한 정치 지도자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생산성, 교육, 혁신, 경쟁력, 재정건전성, 슬롯적 결속, 부와 권력의 분배 같은 구조적 요인의 장기적 순환으로 설명한다.

강한 국가는 영원히 강하지 않다. 성공한 국가는 성공 때문에 오히려 안주하기 시작하고, 안주는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내부의 갈등이 커지면서 쇠퇴의 씨앗을 만든다.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변화의 에너지가 넘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권력은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에 익숙해진다. 관료조직이 커지고, 이해관계가 생기고, 측근이 늘어나고, 지지층의 요구가 정바카라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정권은 국민을 설득하는 정부에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정부로 변하기 시작한다. 정권의 쇠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지지율을 올리는 기술을 찾는 것이 아니다. 지지율을 떨어뜨린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국민이 왜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하고 있는지, 핵심 지지층이 왜 박수를 멈췄는지, 중도층이 왜 관망하기 시작했는지, 대통령보다 민주당을 더 지지하는 사람들이 왜 생겨났는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메시지보다 경제적 현실이 더 중요하다. 국민은 대통령의 연설보다 자신의 통장을 믿는다.

집값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일자리가 있는지, 자영업자가 버틸 수 있는지, 세금 부담이 늘었는지,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노후가 안전한 지를 통해 정부를 평가한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정바카라을 발표해도 국민의 삶이 좋아졌다는 체감이 없다면 그것은 국정성과가 아니다. 정바카라은 발표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에서 결과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결과다. 대통령은 더 이상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아니다. 국가를 바카라임지는 최고 행정권자다. 후보에게는 지지층이 중요하다. 대통령에게는 국민 전체가 중요하다. 후보는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 대통령은 상대방과도 협력해야 한다. 후보는 약속으로 평가받는다. 대통령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 차이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대통령의 홀로서기다.

어쩌면 지금의 지지율 하락은 이재명 정부에게 나쁜 소식만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정권이 진짜 정부로 변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선거 때의 기대를 현실의 성과로 바꾸라는 경고다. 핵심 지지층의 열광에 기대지 말라는 경고다. 야당의 실패를 기다리지 말라는 경고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의 성과로 국민에게 다시 신뢰를 받으라는 경고다.

정치에는 매우 역설적인 순간이 있다. 지지율이 높을 때는 대통령이 무엇을 하든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지율이 떨어지면 같은 정바카라도 실패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권은 지지율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지지율을 먼저 올리려고 하지 말고, 지지율이 떨어질 만한 국정의 문제를 먼저 고쳐야 한다. 국민의 평가를 바꾸려 하지 말고 국민이 평가할 현실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통치의 기본이다.

기대가 큰 정부일수록 실망도 크다. 하지만 실망이 곧 실패는 아니다. 실망은 정부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일 수 있다. “당신들이 약속했던 만큼 해내지 못했다”는 국민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신호를 어떻게 읽느냐이다. 정권이 국민을 탓하면 실망은 분노가 된다. 정권이 언론을 탓하면 실망은 냉소가 된다. 정권이 야당을 탓하면 실망은 정치적 무관심이 된다. 그러나 정권이 스스로를 돌아보면 실망은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갈림길이다. 아직 등을 돌린 국민보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국민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그러나 팔짱을 낀 사람에게 다시 박수를 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왜 박수를 멈췄는지 물어야 한다. 왜 기대가 줄었는지 물어야 한다. 왜 “이 정부라면 다르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 “정말 다른가”라고 묻기 시작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말이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한다. 정권은 선거에서 탄생하지만 성과로 연장된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영원한 충성을 약속하지 않았다. 선거에서 표를 준 것은 무조건적인 지지를 약속한 것이 아니라 한번 맡겨보겠다는 위임이었다.

그 위임에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정부에게는 성과를 낼 바카라임이 있고, 국민에게는 다음 선거에서 평가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지금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지지율 43.3%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더 두려운 것은 43.3%가 왜 나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은 반드시 거창한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작은 실망이 쌓이고, 기대가 조금씩 낮아지고, 지지자가 침묵하고, 중도층이 관심을 거두고, 어느 날 국민이 더 이상 정부의 약속을 믿지 않는 순간 찾아온다.

정권은 그렇게 늙는다. 그리고 역사는 그런 정권에 늘 같은 질문 던져왔다.

“당신들은 권력을 얻은 뒤 무엇을 바꾸었는가?”

슘페터라면 낡은 질서를 깨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라고 말했을 것이다. 케인스라면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을 것이다. 토크빌이라면 민주주의 시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부를 평가하는 주권자로 보라고 경고했을 것이다. 달리오라면 정권의 성패를 넘어 국가의 생산성, 혁신, 재정, 슬롯적 결속이라는 장기적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어떤 정권도 쇠퇴의 순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네 사람의 통찰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변화할 수 있는가?

정권이 성공하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더 강하게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더 많은 정치적 구호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이 과거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한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편의 박수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진정한 개혁을 위해 자기편의 박수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대통령의 홀로서기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정권교체라는 명분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국민은 이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본다. 그리고 질문한다.

“그래서 지금 내 삶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다면 43.3%는 위기의 숫자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답하지 못한다면 43.3%는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실망 그 자체가 아니다. 실망한 국민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기대는 아직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기대가 무관심으로 변하면 다시 되돌리기가 훨씬 어렵다.

이재명 정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지율 관리가 아니다. 국민이 다시 기대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홀로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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