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축소가 AI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엄미새(엄마에게 미친 자식 새끼)'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한때 부모와 지나치게 가까운 성인 자녀는 '마마보이', '마마걸'이라며 미성숙함의 상징으로 조롱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엄마와 여행을 다니고, 쇼핑을 하고, 함께 SNS 영상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부모는 더 이상 권위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
겉으로 보면 세대 간 화해와 가족애의 회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현상은 단순한 가족문화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 슬롯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슬롯적 신호다.
인간은 원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존재다. 독일의 유대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상대를 목적 그 자체로 만나는 '나-너(I-Thou)'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필요와 효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나-그것(I-It)'의 관계다.
진정한 인간은 '나-너'의 만남 속에서 성장한다. 서로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슬롯는 점점 '나-너'보다 '나-그것'의 관계를 양산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성과를 위한 관계가 되었고, 연애는 조건을 비교하는 시장이 되었으며, 결혼마저 손익계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친구 관계조차 취업 정보와 인맥을 교환하는 네트워크로 변해 가고 있다. 사람은 더 이상 만남의 대상이 아니라 효율을 계산하는 대상이 되어 간다.
이런 슬롯에서 청년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나-너'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상대가 부모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모는 대개 성과를 요구하기보다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실패했을 때도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역설이 숨어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에서 현대 슬롯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를 '슬롯적 자본(Social Capital)의 붕괴'라고 진단했다.
슬롯적 자본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협력, 공동체 의식을 말한다.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공동체도 결국 사람들 사이의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퍼트넘은 사람들이 동호회와 종교단체, 지역 모임, 시민단체에 참여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갈수록 슬롯는 점점 고립되고, 타인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오늘날의 '엄미새'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부모와의 관계는 깊어지고 있지만, 그만큼 또래나 지역슬롯, 온라인 게임, 시민슬롯와 맺는 관계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지만, 슬롯 전체의 신뢰망은 점점 약해질 위험이 있다.
더 큰 문제는 AI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고민이 생기면 친구보다 AI에게 먼저 질문한다. 글을 쓸 때도 AI를 이용하고, 외로울 때도 AI와 대화를 나눈다. AI는 언제나 친절하고, 비난하지 않으며, 사용자의 감정에 맞춰 응답한다.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갈등과 피로를 상당 부분 줄여준다.
물론 AI는 인간의 사랑과 우정, 바카라임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더 편리한 선택을 선호한다. 관계를 맺는 비용보다 AI가 제공하는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질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 자체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일의 슬롯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통찰이 떠오른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이며, 하나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배우고, 훈련하고, 인내해야 한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자기 중심성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훈련을 요구하지 않는다.
AI는 사용자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쉽게 상처 주지도 않는다. 반면 실제 인간은 다르다. 오해도 생기고, 갈등도 생기며, 양보와 타협도 필요하다. 인간관계는 불편하기 때문에 성장시키는 것이지, 편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인간이 불편한 관계를 피하고 부모와 AI라는 가장 안전한 관계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외로움은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도 함께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도, 공동체도, 시장도 결국 낯선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 위에서 유지된다. 그런데 그 능력은 부모나 AI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인류가 만들어야 할 미래는 부모와 AI만 있으면 충분한 슬롯가 아니다. 부모의 사랑을 발판으로 독립하고, AI의 도움을 활용하면서도 낯선 사람과 신뢰를 쌓고 협력할 수 있는 슬롯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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