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aille au procès』로 읽는 프랑스의 표현의 자유
프랑스 예술은 종종 한 단어로 요약된다.
자유
영화는 어렵고 솔직하다. 연극은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문학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욕망까지 들춰낸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뒤흔드는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한없이 너그러줘 진다. 금기를 넘는 소설도, 앞뒤로 눈이 달린 나체의 그림도, 프랑스에서는 예술이 된다.
파격과 관능과 금기 없음은 곧 '프랑스다움'으로 통한다.
그 시선의 바닥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슬롯적 합의가 깔려 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일을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 가운데 하나라고 적었다. 다만 같은 문장 끝에 단서를 하나 달았다.
법이 정한 경우에는 그 자유의 남용에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식 자유는 처음부터 단서가 붙은 자유였고, 그 단서는 여전히 동작 중이다.
1857년에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잇달아 법정에 섰다. 백 년쯤 후에는 같은 이유로 파리의 제17경범죄 법정 피고석에 서른 살의 출판인이 홀로 앉았다.
장자크 포베르 (Jean-Jacques Pauvert)
사드(Sade) 후작의 바카라을 펴낸 것이 그가 고소된 이유였다. 정확히는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바카라을 팔았다는 것이었다. 그날 증인석에는 『에로티즘』을 쓴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가 불려 나와 있었다.
사드 후작(Marquis de Sade, 1740~1814), 본명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은 프랑스혁명을 전후해 살았던 귀족이자 소설가로, 타인의 고통에서 쾌락을 얻는 성향을 뜻하는 '사디즘(sadisme)'이라는 말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실제로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학대에 관련된 사건으로 여러 차례 입건되었고, 삶의 상당 부분을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그의 대표작 『소돔의 120일』 역시 1785년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집필했다.
그의 소설에는 강간과 근친상간, 아동 성학대, 고문, 살인, 신성모독과 같이 당시 슬롯가 금기시하던 행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잔혹한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은 폭력과 범죄를 철학적인 논리로 정당화한다. 선량한 피해자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반면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성공하는 줄거리를 보여준다.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당연시 받아들여지던 기독교적 도덕과 권선징악의 질서를 정면으로 뒤집는 작품이었다.
사드의 작품은 오랫동안 외설 문학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앙드레 브르통과 조르주 바타유를 비롯한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드의 소설에서 단순한 성적 방종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폭력, 권력과 도덕의 관계를 탐구하는 문학적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사드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었고, 마침내 1956년 12월 15일, 그의 작품을 유통시켰다는 이유로 재판이 열렸다.
파트리스 트리가노(Patrice Trigano)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화랑을 운영하면서 평생을 예술가의 삶을 살아온 작아이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이기도 한 트리가노는 기존의 연극 문법에 도전한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언어의 실험으로 기이한 세계를 창조한 레몽 루셀(Raymond Roussel)과 같은 프랑스 전위예술가들의 삶을 소설로 옮겨 오는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법정의 바타유(Bataille au procès)』도 같은 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다. 이번에 그가 고른 인물은 조르주 바타유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우리에게 『에로티즘』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마광수 작가에게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선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면, 프랑스에서는 조르주 바타유에게 저주받은 사상가, 포르노그래퍼 작가, 성스러움과 황홀경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로드 오슈(Lord Auch)라는 가명으로 『눈 이야기(Histoire de l'œil)』가 있다.
『법정의 바타유』는 1956년 12월 15일,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드 전집을 낸 포베르가 피고석에 앉고, 쉰아홉 살의 바타유가 변호 측 증인으로 나온 상황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법정 장면과 등장 인문들의 문답은 실제 재판 기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작품은 증인석에 앉은 바타유의 머릿속까지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판사의 입에서 '악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밤마다 앉아 있던 파리 변두리의 허름한 건물의 계단을 떠올리고, 변호인이 검열의 역사를 늘어놓으면 눈먼 아버지를 돌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식이다.
종교적 신념에 갇혀 살던 어머니, 그의 연인 로르(Laure),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과의 오랜 다툼도 재판의 중간중간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의 생각 끝에는 도덕을 핑계 삼아 단죄하려는 것은 결국 문학, 그 자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문학이 도덕적이어야 한다면,
문학은 이미 죽을 것이다
그날 법정에서 문학의 자유를 두고 사람들의 입장은 서로 달랐다.
판사석과 검사석에는 미풍양속과 청소년보호가,
변호인석에는 검열의 역사가,
피고석에는 조심스러운 출판인이,
증인석에는 위반의 사상가가 앉아 있었다.
재판은 공소장 낭독으로 시작했다. 판사는 포베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바카라 제목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규방 철학(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
『소돔의 120일(Les Cent Vingt Journées de Sodome)』,
『신 쥐스틴(La Nouvelle Justine)』,
그리고 『쥘리에트(Histoire de Juliette)』까지.
『규방 철학』에서는 딸이 어머니의 집단 성폭행에 가담하고, 『소돔의 120일』에서는 귀족, 성직자, 법관, 금융업자 등 슬롯적으로 권력을 갖고 있는 네 명의 남자가 어린 소년과 소녀들을 성에 가둔 채 성적 학대와 고문, 살인을 일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 쥐스틴』에서는 수도사들이 신앙심 깊은 여성을 감금하고 강간하고, 『쥘리에트』에서는 살인과 성적 방종을 일삼는 여성이 오히려 부와 권력을 얻는다.
장황하게 설명되었지만 포베르의 혐의는 하나로 압축되었다.
미풍양속을 저해했다.
이 기준 위에서 판사의 질문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갔다. 사드의 바카라을 파괴적인 철학, 슬롯의 도덕 질서를 해칠 위험이 있는 바카라, 비난받아 마땅한 출판물이라 불렀고, 바카라들에 프랑스 청소년에 대한 출판인의 도덕적 바카라임에 대해 물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장 폴랑(Jean Paulhan)에게는 당신에게 딸이 있다면 성경보다 사드를 읽히겠냐고 물었다. 그는 성경도 조심해서만 읽히겠다고 받아쳤다.
한 검사는 법정에서 『소돔의 120일』의 한 대목을 설교하듯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는 더러운 것이라도 맛본 사람처럼 흰 손수건으로 입술을 훔쳤다. 그날 법정에서 사드의 가장 노골적인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는 지켜야 할 도덕 질서와 건전한 사상을 논했다.
그리고 증인석에 앉은 바타유는 교수 같은 어조로, 사드의 바카라은 인간이 왜 이성을 거스르는지 그 가장 깊은 까닭을 보여 주는 귀한 자료라고 대변했다.
저는 인간 본성을 꽤
신뢰하는 편이니까요
악덕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유통시키는 행위를 위험하다고 생각하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인간 본성을 꽤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문학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던 변호사 모리스 가르송(Maurice Garçon)은 검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내밀었다. 그는 검열이 인쇄술이 발명된 15세기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낯선 생각이 돌아다니는 것을 두려워한 권력은 모든 출판물에 미리 허가를 받게 했다는 것이다.
이어 풍속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를 보여 주는 예가 이어졌다. 한때 사형으로 다스리던 중혼은 가벼운 범죄가 되었고, 중죄 법정에서 다루던 낙태는 경범죄 법정으로 내려왔다.
문학의 재판도 줄줄이 불려 나왔다.
1853년, 공쿠르 형제는 16세기 시인의 시 다섯 줄을 기사에 옮겨 적었다가 기소된 적이 있다는 사건을 내밀었다. 시는 이미 300년 가까이 온갖 시선집에 실려 있었던 작품이었다.
형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판결문에는 문제가 된 시구가 명백히 음란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 남았다. 공공도덕을 해칠 의도가 없었으므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비난은 한동안 지속 되었다.
공쿠르 형제가 인용했다가 기소된 시는 16세기 프랑스 시인 자크 타위로(Jacques Tahureau, 1527~1555)의 사랑과 관능을 노래한 시였다. 타위로가 1554년에 발표한 시집 『흠모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소네트와 찬미의 시, 그리고 사랑의 노래들(Sonnets, Odes et Mignardises amoureuses de l’Admirée)』에 속하는 시로,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와 아도니스가 애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맨살의 팔다리를
입 맞추는 아도니스의 몸에 감고,
그의 부드러운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보드랍고 흰 그의 목을
넘치는 기쁨에 겨워 살며시 깨문다.
Croisant ses beaux membres nus
Sur son Adonis qu’elle baise ; Et lui pressant le doux flanc ; Son cou douillettement blanc, Mordille de trop grande aise.
가르송은 슬롯가 받아들이는 도덕적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법원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법원의 판단은 평균 30년쯤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피고석의 포베르는 자신이 바카라과 독자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출판인이란 읽어야 할 텍스트를 독자에게, 특히 연구자에게 전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를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아주 적은 부수,
칙칙한 표지,
자극적인 삽화 하나 없는 지면,
들뜬 십 대가 달아날 만한 가격,
의사와 철학자와 대학교수와 정신과 의사로 걸러진 독자까지.
외설이냐 아니냐라는 다그침에 그는 외설을 인정했지만, 외설이 늘 저속함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외설은 바카라장을 넘기는 손이 결정했다.
1956년 재판의 결과는 1957년 1월에야 나왔다. 법원은 포베르에게 벌금을 물리고 압수한 바카라을 폐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후 재판의 결과를 요약하자면, 이듬해 항소심에서 벌금과 폐기 명령은 취소되었고, 대신 바카라이 성인 독자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도록 그 대상을 한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에필로그에서 트리가노는 70년이 지난 오늘을 바라본다.
그에게 검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다른 얼굴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국가와 법원이 미풍양속을 내세워 문학을 금지했다면, 지금은 도덕과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트리가노는 외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바타유에게 외설은 슬롯가 금지한 욕망을 들여다보고, 도덕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방법이었다. 금기를 넘어서는 행위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어떤 진실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트리가노가 보기에 오늘의 외설은 더 이상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자체로 도덕적 잘못이 되었고 비판하고, 사람들은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일을 피하게 되었다.
악을 물리쳤다고 믿는 슬롯보다
더 외설적인 슬롯는 없다
트리가노가 비판하는 것은 도덕 그 자체라기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며 다른 사람의 표현까지 판단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소설에는 그의 주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드의 생애를 변호하던 가르송이 그에게 폭행당했던 여성 로즈 켈레르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가르송은 사드가 여성을 피가 날 때까지 때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상처를 치료해 주고 저녁 식사까지 준비해 주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한 여성이 일어섰다.
상대의 순진함을 이용해 여성을 폭행한 것은 심각한 일일뿐만 아니라 그렇게 끔찍한 학대를 가볍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항의했다.
그 여성은 사드의 바카라을 금지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문학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폭행당한 사람의 고통까지 가벼운 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문학이 인간의 가장 잔혹한 욕망까지 묘사할 자유와 현실에서 일어난 폭력을 정당화할 자유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했지만, 그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기준을 보여준다.
작품 속 판사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바카라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출판인은 문학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바카라을 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바타유 역시 문학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도서관에서 사드의 바카라을 아무에게나 내주지는 않는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70년이 흘렀다.
2026년, 프랑스의 56개 고등학교에서 약 2,000명의 학생이 올해의 공쿠르 고등학생상 후보작들을 읽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정의 바타유』다.
1956년의 법정에서 청소년은 사드의 바카라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존재가, 프랑스의 청소년들은 바로 그 재판을 다룬 소설을 읽고 있다. 문학을 둘러싼 논쟁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어떤 작품에 상을 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한다.
과거 판사가 걱정하던 청소년들이 이제는 문학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은 셈이다.
70년 동안 달라진 것은,
누군가를 대신해 판단하는 일과
그 사람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는 일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