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에 관계가 나빠지는 이유

산후의 한마디는 왜 평생 박힐까

by스몰빅토크

40주0일차. 입원 13시간 만에 유도분만으로 둘째 딸을 무사히 출산했다.

2박3일간의 병실생활을 하고 조리원에 들어왔다.

아이도 건강하고, 산모도 이상이 없었다. 모든게 다행이라 여겨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둘째 딸을 낳은 지 4일차. 회음부가 아직 따끔거리고, 가슴은 젖몸살로 화끈댄다. 세살인 첫째는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울었다. 평일 오후, 유치원 하원 후 엄마를 보러 첫째와 남편이 찾아왔다. 삐걱대는 몸을 질질 끌고 잠깐 조리원 밖에서 만날 수 있었다. 놀이터에서 큰애가 시소를 타는데, 남편이 재밌게 놀아주겠다며 거칠게 흔들댔다. 큰애가 무섭다며 뛰어내렸다.


내가 한 마디 했다. “여자애인데 좀 섬세하게 해 줘.”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 나도 아들 갖고 싶다."


자기 부인이 둘째 딸을 4일 전에 낳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첫째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데, 남편의 입에선 그 한 마디가 나왔다. 어떻게 그 말이 그 타이밍에 나올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는 채로 그 문장은 그 놀이터에서 박혔다가, 며칠이 지난 지금도 빠지지 않은 가시처럼 있다.


그날 저녁 조리원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울었다. 누구한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정 엄마한테 말하면 사위를 미워하게 될까 봐. 친구한테 말하면 그 친구가 내 결혼을 동정하게 될까 봐. 그래서 혼자 울고, 다음 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모유 수유를 했다.


그 한마디는 결혼 5년 동안 그가 던진 수많은 가시박힌 말들 중 하나일 뿐이다. 비슷한 종류의 가시가 너무 자주 쌓인다는 게 문제였다.


평소에는 “또 입으로 똥 싸네” 라고 앙갚음해줬을 한마디가, 그날은 너무 무력했다.

왜 산후의 한마디는 그렇게 깊이 박힐까.

이 질문이 이번 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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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기 바로 전날의 일.

주말이었다. 시조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집을 찾아 자고 갔다. 시조카의 할머니 할아버지 댁 2층엔 우리가 산다. 시아주버님네가 원래 먼저 살던 집이고, 분가를 하면서 우리가 들어가 살게 됐다. 시조카들은 본인들이 살던 집인만큼 익숙한 곳이라 자주 왕래한다. 아이들을 중재할 시형님과 시아주버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안계셨다. 그리고 그날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경계심 없이 우리집으로 올라왔다. 나는 출산 예정일 전날이었다. 유도분만 일정이 이미 잡혀 있었다. 배가 단단하게 부풀어 누우면 갈비뼈가 들렸고, 한 번씩 가진통이 왔다.


조카들이 내가 누워있는 안방까지 들어왔다. 쉬어야 하니 밑에 가서 놀라고 한마디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조카들은 내가 샤워하는 도중에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 깜짝 놀래켰다. 다음날 아침에는 우리 집 주방에서 달걀과 요거트를 꺼내 먹고, 그대로 두고 갔다. 8살 5살 아이들이라 자기가 먹은 물건을 치우길 바란다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가?) 그날 오후, 출산을 앞둔 내가 그 그릇들을 치웠다.


남편은 그때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있었다.

내가 한마디 했다. “애들 좀 중재해 줘.”

그가 답했다. "애들 노는 게 뭐 어때서?"


출산 전날의 예민한 임산부에게 던지는 그 한 마디. 결국 나는 그날 오후 짐을 싸서 첫째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점심을 먹고, 엄마와 천천히 산바카라을 했다. 일부러 시조카들이 나갔을 무렵인 7시쯤 들어왔는데, 어른들까지 합세해 집안엔 사람들이 더 북적였다. 다음 날이 유도분만 일이었다. 숨이 콱 막혔다. 얼굴도 비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분만실에서는 어땠냐고?

적지 않으면 난 또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적는다.


수축제를 투여하고, 진진통이 시작된 지 1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자궁경부가 7센티미터 쯤 열렸을 무렵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산 송장으로 누워 있었다. 호흡이 제대로 안 됐다. 남편은 분만실 끝에 의자를 놓고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가끔 시선을 옮겨 나를 봤다. 그러다 저녁 6시가 되자 벌떡 일어났다. “밥 좀 먹고 올게.”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제 곧 아이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럼 굶으라고? 얼른 먹고 올게.” 나는 전날 자정부터 금식 상태로 누워있었다. "지금 한끼 안먹는다고 죽나?" 소리가 튀어나왔다. 점심도 그렇게 많이 먹고와서 분만실에서 냄새를 풀풀 풍겼으면서. 싸우기 싫어서 꾹 참고 “얼른 먹고 와”라고 답했다.


다행히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 의료진은 본격적인 출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의료진들은 그에게 커튼 뒤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는 어딘가에라도 앉아야겠다며 의자 하나를 끌고 왔다. 교수님이 앉아 수술할 의자였다. 내가 말했다. “그거 교수님 의자야.”


남편이 물었다.

"근데 한참 걸릴텐데. 난 계속 서 있어야 되나?”


나는 그 진통 사이 짧은 정적 안에서 그 질문을 듣고, 도저히 답할 기운이 없었다. 만 0.5초였다. 그 0.5초 안에 결혼생활 5년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14시간 넘도록 10톤 트럭이 내 배를 밟고 가는 진통을 겪고 있는데, 본인은 5분도 서있지 못하겠다는 그 태도.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가장 큰 문제였다.


애를 낳고 두 시간이 채 안 돼 그는 첫째를 보러 가야 한다며 집으로 갔다. 쏜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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