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고 퇴근

byfreejazz


야근 후 택시를 잡은 건 토요일 새벽 2시 반경이었다. 회사 앞 사거리에서 스마트폰의 앱으로 택시를 잡는데, 약 10km 떨어진 집까지의 도착 예상시간이 놀랍게도 불과 15분 밖에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서 집까지가 이렇게 가까웠는지. 이윽고 택시는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앞에 도착했다. 피곤한 내 몸을 택시에 구겨 넣고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침 새벽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조용한 음악이 지친 내 마음을 달래줬다. 그 음악을 들으며 계속 눈을 감았어야 했는데, 왠지 모를 답답함에 살짝 실눈이 떠졌다. 무심코 차창 밖을 바라보니 어두운 건물 사이로 보이던 불 켜진 편의점과 24시간 국밥집 같은 음식점이 허기진 내 속을 계속 자극해 왔다. 야근을 시작할 때 간식류로만 살짝 끼니를 때웠던 나는 그 순간 곰탕이나 설렁탕 같은 맑은 국물에 공깃밥을 덜어 깍두기와 함께 고픈 배를 달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말없이 과속을 하시던 택시기사님께 말씀을 드리고 갑자기 차를 세울 수는 없는 법.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원래 목적지였던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하차했다.


그 순간이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 남동쪽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보였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렇게 많은 별이 보이다니, 새벽녘의 서울 하늘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러다 갑자기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흩뿌려진 별들 사이로는 겨울철의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자리가 보였다. 가을의 청명한 밤하늘 아래,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루는 세 별과 그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까지도 맨눈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핸드폰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겨 놨지만, 찍힌 사진만으로는 그 느낌이 온전히 기록될 수 없었다. 날이 쌀쌀한 건 아니었는데, 황홀함과 아름다움에 몸이 떨릴 만큼 나는 그 새벽하늘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살짝 고개가 아플 만큼 머리를 들어 서울 하늘을 만끽(滿喫)했다. 그러고서야 나는 겨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한 그 무렵은 늦은 시간인 건지, 아니면 이른 시간인 건지 헷갈렸다. 집 앞엔 일간지와 경제지, 그리고 주말에만 배달되는 신문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에어캡으로 포장된, 절판(絕版)되어 어렵게 구한 중고바카라도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전날인 금요일에 중학교의 치열한 체육대회를 잘 마친 아이들과 교육청의 행정절차 탓에 바보 같은 서류 작업을 해야 했다는 배우자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읽고 싶던 바카라을 드디어 내 손에 넣은 기쁨은 생각보다 꽤 컸다. 하지만 읽지 못한 바카라과 신문이 쌓일수록 그 기쁨은 어느새 부담으로 바뀌기도 한다. 쌓여만 있는 바카라을 볼 때마다, 시간이 지나 한 번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처분하는 신문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나 자신이 괜스레 초라해질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잠들기 전, 침실의 침대 옆 작은 바카라장에 무너질 것처럼 쌓인 바카라들을 보며 이번 주말엔 꼭 같이 시간을 보내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진 나도 모르겠지만.


요새는 회사일이 단순하게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이건 솔직히,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조직에 처음 왔을 때 윗선에서 나를 두고, "쟤는 1.5인분 이상 하는 애니까 아주 쓸모가 있다."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러다 보니, 급여는 분명 1인분을 받는데 일은 최소 1.5인분에서 2인분을 하게 됐다. 이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자면 정말 차고 넘치지만, 사실 온라인 게임에서 나 정도 되는 직급의 직원이 단순히 '일'이 많다는 것만으론 큰 문제를 삼을 수 없다. 일을 쳐나가면서 일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보람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일을 해도 제자리인 경우, 그리고 일이 더 쌓이는 느낌을 받는 경우엔 그렇지 않다. 뭘 가지고 가도 뾰족한 해답도 없이, "이건 아니다, 다시 해와라."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땐 정말 반기(反旗)를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니, 그냥 참고 연말까지 어떻게든 견뎌내야 한다.


사실, 회사에서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다. 이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사내강사로서, 동료와 후배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뭐라도 제대로 전수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한다. 그러다 보니 윗사람들에게 "수고했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동료나 후배 직원들에게 "덕분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윗사람에게는 까짓 거, 그냥 그들의 니즈를 파악해서 최대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준다. 내 생각과 판단은 보류해 둔 채로.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위해주는 직원들에게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내 능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고 싶다. 윗사람과는 기계적이고 논리적으로 'Input'을 넣고 그들이 원하는 'Output'을 끌어내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내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과는 뭔가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소통을 통해 서로를 보듬어 주는, 그런 관계를 추구하고 싶다.


일이 정말 많았다. 한 주 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21시 무렵까지 야근을 했고, 금요일엔 대놓고 철야근무를 했다. 심지어 주중에 내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와 그냥 뻗기만 했음에도, 금요일엔 토요일 새벽까지 체력이 닿는 대로 일을 하다가 늦게 귀가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해놨던 터였다. 일을 쳐낸다는 목적 하에 미안함은 뒤로 한 채. 그래서 남들 다 퇴근하는 금요일 18시 무렵이 나에게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름 야심 차게 일을 시작했는데 주말이 시작되는 순간 그렇게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이미 퇴근한, 내가 아끼는 우리 부서의 후배 직원으로부터 카지노톡 메시지가 수신됐다. 오늘 저녁도 야근하시냐고, 그럼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시냐고. 걱정 반, 응원 반의 그 짧은 메시지에 그때 막 혼자 야근을 시작한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비록 견과류와 개별 포장된 미니 케이크 같은 간식류로 저녁 식사를 대충 해결했지만, 마음만은 정말 든든했다. 사실 그 직원은 평소 마음이 쓰이던 후배 직원이었는데, 오히려 이젠 그 직원이 나를 챙겨주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심지어 주말이 시작된 금요일 저녁에 나의 끼니를 챙기고 안부를 물어주는 그 따뜻함이 어두운 사무실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리고 약 12시간이 지난 지금, 금요일 저녁의 따스함이 다시 그리워진다. 토요일 새벽의 청명(淸明)한 밤하늘도 두고두고 생각난다. 기분 좋게 상쾌했던 그 새벽하늘 아래서, 그냥 미친 척 팔을 벌리고 겨드랑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다시 한번 만끽하고 싶다. 오리온자리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베텔게우스를 바라보며, 그 별처럼 빛나던 격려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별 보고 퇴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날 새벽에 느꼈던 그 황홀함과 자유로움을 언젠가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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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회사 생활이지만,

어떤 날은 밤하늘의 별이 나를 위로해 주고,

어떤 날은 또 소중한 사람이 건네는 짧은 안부가 별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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