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 같은 1월이다. 12월의 소란과 열기도 남아 있지만 올해 초에는 유독 목표도 잡히지 않고 그것의 쓸모도 찾지 못한 채 일주일을 보냈다. 이상스레 마음이 급하지 않고 그 조차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이내 이 시간이 몹시 괴로워졌다. 지루하고 기대되지 않는 시간들. 어렵게 결정한 여행도 취소할 상황이 되었고 작년 한 해를 꽉 채운 즐거움들이 모두 시들해졌다. 놀라울 정도로 빛을 잃었다. 그럴수록 목표들은 더욱 나를 옥죄고 의미 없는 일정들은 늘어갔다.
빵-
어디가 터져도 터진 것이다.
뜨거운 마음은 찬 바람을 쐬어줄 때 비로소 스타일리시해지고, 볼륨은 반대 방향으로 빗는 태도에서 생기는 거라고 누군가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그게 지금의 나, 40대 초입에 들어선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일지도 모른다. 거대 서사보다 무탈의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라고. 앞으로 돌진하기보다 이제 옆도 돌아보고 챙길 줄 아는 시기라고. 누군가가 상담을 요청해 온다면 걸어온 길에 대해서 미련이나 후회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할 줄 알게 된 거라고.
삶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일상을 '희로애락' 애프터 파티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니까 누군가는 조금 자리를 일찍 뜨기도 하고 어쩌면 불참할 수도 있는 그런 세계라고 덤덤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무탈한 나에 대해서. '그때 ~했다면'이라고 말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보냈어요?'라는 질문에 '잘 지냈어요. 덕분에.'라고 답할 수 있다면 충분한 나에 대해서. 그게 가장 스타일리시한 버전의 나라고 느꼈다.
'아, 원이 없다.'라는 문장은 생각보다 많은 걸 내포한 말이었다. 원이 없으려면 일단 원하는 게 없어야 한다. 원하는 게 없으려면 지난 시간 쌓아온 욕심, 미련, 나쁜 기억과 인연을 지나간 대로 둘 줄 알아야 한다. 버리거나 정리하거나 애써 치장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일어난 일이고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원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아직 더 나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가지지 못한 삶은 현재를 결핍 투성이로 만든다.
10대 시절부터 쌓여온 염증들이 꽤 많다는 걸 느꼈다. 10대의 좌절, 20대의 불안, 30대의 갈증이 모두 해소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목표 안에서 죽지도 않고 꿈틀대고 있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건 그만큼 해결해야 할 마음의 과제도 많다는 뜻이다. 그걸 정리하지 못하고 나이만 드는 건 좀 끔찍하다.
4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바카라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무얼 해야 하는지보다 중요한 건 40대를 10대, 20대, 30대의 4번째의 순서로 두지 않는 것이다. 앞서 살아온 시간을 지울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삶은 오직 현재의 무게로만 사는 것이다. 네 번째로 두고 첫 번째로 사랑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내가 만든 목표가 현재의 내 목표인 양 착각하며 살지 않는 것이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그러다 사라지는 일만큼 앞으로 중요한 게 있을까 생각하는 밤.
이제야 새해가 시작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