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사촌 남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저녁 6시에 결혼이어서, 전남 광주까지 가야 하는 탓에 점심을 먹고 남편의 차를 타고 아이들과 서둘러 향했다. 긴 휴일 탓에 꽉 막힐 것 같은 도로는 남동생의 새로운 인생의 앞길을 축복하며 '뻥' 뚫린 듯 그리 막히지 않았다. 예식장에 도착했다.
십여 년 전, 나의 결혼식 이후 친척들과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막내 고모는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나의 이름을 부르며 꼭 안아 주었다.
나는 친척들에게 큰 딸과 작은 아들을 소개해 주었다.
“너가 아들까지 낳았어?”
친척들은 나를 보면 새삼 깜짝 놀라듯 말하였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꼬맹이로 보았던 남동생이 제법 커서 의젓해지고 늠름한 자세로 식장에 입장하였다.
축사 순서가 되자 신부의 아버지가 나왔다.
보통 신부의 아버지가 축사하게 될 경우에는 짧고 굵은 한마디나 가벼운 농담으로 재미있게 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식장에서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른, 신부의 아버지는 짧게 인사를 하시더니 잠시 침묵...
흐느낌에 울먹임... 말씀을 이으시고, 또 침묵... 그렇게 눈물을 간신히 참으시며 축사를 이어갔다.
금지옥엽 키운 귀한 딸 시집보내는 아빠의 마음이 애달프게 보여 나도 살짝 울컥했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각자의 부모님께 맞절하는 시간에 신부의 아버지는 남동생을 가볍게 토닥이며 안아주기보다는 꽉 안아주며 씨름하듯이 번쩍 들어 올리셨다.
‘딸을 정말 사랑하는 아버지구나...’
그렇게 예식이 끝나고 남편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밥을 먹고 서둘러 나왔다.
차 안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떠들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은 좀 다투기도 했다. 남편은 큰 딸에게 버럭 화를 냈다.
큰 딸은 나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며 서러움에 눈물을 터뜨렸다.
남편은 좀 지나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휴게소 앞에서 차를 세웠다.
남편은 간신히 울음을 그친 딸을 보며 또 나무랐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하지 말라며 남편을 다그쳤다.
그러더니 남편은 차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긴 채, 문을 닫고 쌩 하니 나가 버렸다.
나는 아이들과 차에서 내렸다.
“아빠가 내일 출근해야 하니, 차가 막히면 안 되니까 예민해져서 그런 거야.”
하며 딸을 안아 다독여 주었다.
남편은 돌아와서 차에 타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생각보다 길은 막히지도 않고 집 근처에 다다랐다.
예민함이 풀린 남편은 딸에게 장난을 쳤고,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에 큰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으휴~’
집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다.
딸아이는 어린이날을 맞아 인터넷으로 주문한 선물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딸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현관문을 수 차례 열고 닫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하긴 저번달에 작은 아들도 생일이 다가와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받고 싶어 집 밖에 나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 택배 아저씨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선물을 받는 순간 그 반가움에 폴짝폴짝 뛰며 방방 뜨던 아들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이미 커버린 나는 택배 상자가 오면 그저 무덤덤한 마음이 들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면 아이들이 잠들기 전, 모든 육아와 살림을 마치고 뜯어보곤 한다.
그것이 나름의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기도 하다.
사촌 남동생의 결혼식을 보며,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 각자의 가정을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의 눈물이 나올지, 아니면 다 키웠다는 뿌듯함의 눈물이 나올까? 이런저런 생각이 오고 갔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바라는 마음처럼
가끔씩 보는 엄마와의 만남이 그토록 기다려지고 반갑게 느껴질까?
아이들의 그런 예쁜 마음이 느껴질 때면, 나의 작은 일상이 소소한 기쁨으로 채워질까?
나는 감기약과 한약을 먹고 그렇게 쓰러지듯 까무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