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박미옥

업글할매의 바카라방 이야기

by업글할매

우연히 형사 박미옥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는, ​그냥 그 카리스마에 꽂혀서 무조건 구매한 바카라이다.

​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멋짐이 형사 박미옥 작가님한테 느껴져서, ​일단은 바카라부터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

바카라 제목도 어쩜 이리도 심플하고 멋있을까…

​

표지 또한 얼마나 재미있는지혼자서 킬킬거리고 웃었다.

​

마치 응답하라 1988을 보는 듯…

​

때로는 이런 약간의 촌스러움이 주는 마음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양천서 최초의 마약수사팀장, ​수많은 최초라는 기록과 함께 여형사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신, ​너무나도 멋진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시다.​

너무나도 유명했던 드라마 시그널과 괴물, 영화 감시자등, ​수많은 작품을 자문하기도 했고, 극의 모티브가 됐던 ​형사 박미옥이다.

​

프로파일링 공부를 거쳐 대학원에서 법의학까지 전공으로 하셨단다.

​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열심히 달리다가 ​총경이 될 수 있는 자리에서 정년 8년을 놔두고 명예퇴직을 하셨단다.

​

평생을 범인 잡는 이야기만 하다가 형사 박미옥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으셨단다.

​

범인 잡는 현장이 아닌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으셨다는 것이 이유였다.

​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싶으셨단다.​

그래서 그만두셨단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그리고 명퇴 후에 작가님의 경험담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바카라, 형사 박미옥이다.


형사 박미옥 바카라에서 찍었음

1987년에 순경 공채에 합격하셨다.

​

위 사진은 1990년 교통 순찰대 근무 시절의 모습이다.

​

참 멋지고 예쁘시다.

​

형사 박미옥 바카라에서 찍었음

현재는 제주에서 후배와 함께 마당을 공유하며, ​각각의 집을 짓고 살아가고 계신다.

​

마당 한쪽에는 두 여자 형사의 서재 겸 작은 바카라방이 있다.

​

이곳에서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바로 “형사 박미옥”이라는 바카라을 쓰신 것이다.

​

지금은 일과 사람과 도시에 지친 지인들이 내려와서,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같이 읽고, 쉬고, 맘껏 우는 곳으로 쓰이고 있단다.

​

머지않은 시기에 모르는 손님들도 불러 모아 “마음 아픈 사람들의 바카라방”을 열려고 하신단다.

​

어쩐지 인터뷰에서 느껴지던 그 멋진 포스와 카리스마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

이렇게 멋진 분이셨다니…

​

이 바카라을 선택한 지금의 내가 너무도 대견할 정도이다.

​

형사 박미옥 작가님의 현재 제주에서의 살아가시는 모습만 보는 것만으로도, ​이 바카라이 지닌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

그래서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자신 있게, ​자신은 매우 철학적이고 매우 인문학적이면서, 형사를 감성으로 했다고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이 마음의 바카라방을 오픈하셔서, ​하루라도 빨리 이 바카라방을 방문하고 싶다.

​

제주에서 살기를 잘했다.

​

이런 분들이 같은 제주 하늘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오로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경찰이 되셨단다.

​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란 건 아예 없었던 시절이라, ​드라마 수사반장을 보면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그저 감동을 받는 것이 경찰에 대한 모든 정보였단다.

​

경찰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선비 같은 마음으로 경찰을 시작하셨단다.

​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모르셨다고 한다.

​

하지만 기술과 맷집은 키워나가면 된다면서, ​무서움을 떨치고 도망가지 않으신 결과, 오늘의 형사 박미옥이 탄생한 것이다.

​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형사로서 첫 단속을 나간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으시단다.

​

반드시 여자 형사가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

여성 전용 사우나에서 고액의 판돈을 걸고 도박하는 현장이었단다.

​

벗은 몸의 여자들이 거친 입담으로 욕지거리하면서, 화투장을 내리치는 곳에서의 ​사투를 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그 아수라장의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땀범벅이 된 상태의 형사 박미옥은, ​그때서야 비로소 작가님은

완전히 딴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셨단다.

​

단속을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방금 체포한 한 여자분이 형사 박미옥을 보고는, ​이렇게 어린 형사님이었냐고 하면서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하더란다.

​

어렸을 때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낯설고 위험천만한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셨단다.

​

시험 삼아 3개월만 해보자고 했던 여자 강력계 형사를, ​형사 박미옥은 꼬박 30년을 형사로 살아오신 것이다.


현장에서 애통하게 떠난 동료 두 형사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날,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진혼시를 낭독했단다.

​

모든 형사들의 영혼이 같이 목놓아 울었다고 회상하신다.

​

경찰과 형사라는 신분이, 실은 언제 칼 맞고 총 맞을지 모르는 운명이라는, ​작가님의 이 말씀이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플까.

​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해서 주야장천 목숨 걸고 일하시는 ​경찰분들의 노고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늘 기도하신단다.

​

오늘도 그 긴장 속으로 들어가는 이 땅의 형사들이 부디 안전하기를, 그리고 죽지 않기를 기도하신단다.

​

너무 마음이 아프다.

최소한 이런 아픔은 온 국민이 함께 나누고 싶다.



아저씨, 내 목소리 기억하죠.
그날 저하고만 통화했으니
분명히 기억하실 텐데…
( 형사 박미옥 )


형사 박미옥은 단지 이 말 하나로 범인의 마음을 움직여서 사건을 마무리할 수가 있었단다.

​그때부터 형사 박미옥은 내가 확신할 수 없을 때는, 상대에게 물으라는 방식으로 취조를 하셨단다.


다그치면 마음이 닫히지만
질문하면 열린다.
형사는
그 변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 형사 박미옥 )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새로 발령받아서 갔는데, ​그곳에 계시는 서장님께서 기어코 한 말씀하더란다.

​

참 보이시해 보이시는데 시집은 가셨나요?

​

“보이시는 산업재해고요, 시집은 제 집이 있어서 안 갔습니다.”

​

참으로 시원한 한 방을 날리셨다.

​

예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남의 결혼 문제에 그리도 관심이 많은지…

​

제발 꼰대 좀 되지 맙시다.

​

형사 박미옥의 앞에 앉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란다.

​

그런 그들에게 비록 찰나일지라도 마음 놓을 수 있는 한순간을 마련해 주는 것, ​진심으로 그와 대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결국 형사라는 업의 기본이라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

그래서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란다.

​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

그래야만 잘못했다는 사람한테 가서, 등짝부터 때리기 전에, 힘드냐고 물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

형사란 남을 대하는 만큼 자기 성찰 또한 꾸준히 필요하단다.

​

이다음에 범죄자를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악수할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한 형사 박미옥으로 늙어가고 싶으시단다.

​

이미 충분히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계신다.

​

너무도 멋지게 사람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감싸안아주는, 그런 삶을 살고 계신다.


형사란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단다.

​

형사 박기옥 작가님은, ​형사 시절에는 늘 아슬아슬하게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걸으셨단다.

​

어설픈 경험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 피해자에게 한 번 더 죄짓는 일이 없도록, ​과도한 감정이입으로 오판하는 일이 없도록, ​나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억울하게 망가지거나 위험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며 교도소 안과 밖을 가르는 담장 위를 걸으셨단다.

​

실수하면 나 또한 교도소 안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라는 각오로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걷고 또 걸으셨단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형사 생활하신지 일 년쯤 됐을 때 한 번, ​그리고 서른여덟에 다시 한번, ​이렇게 두 번을 출가하기 위해 절로 가신 적이 있으시단다.

​

처음에는 형사로 살면서 들여다보게 된 세상이 ​좋은 삶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삶에 지쳐서 찾아갔었고, ​두 번째는당시 출가 연령 제한이 40세였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가 보자는 생각이었단다.

​

절친인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서 받아만 주신다면 정말로 열심히 따르겠노라고 간곡하게 청해보았단다.

​

스님 말씀이 어차피 형사 박미옥 님은 출가를 하신다고 해도, ​여기서도 스님들 상담해 주고 살 팔자이니까, ​그냥 세상에서 살면서 수행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단다.

​

결국 형사 박미옥 님이 계실 곳은 절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절친 스님과 곡차 한잔 나누고 그냥 돌아오셨단다.

​

비구니가 되신 작가님을 생각해 보다가 혼자서 킥킥거렸다.

​

속세로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이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현재 제주에서 ​바카라과 사람과 마음이머물다 가는 공간을 열어놓고, ​육지에서 온갖 일로 시달리는 지인들이, 제주에 오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삼고 있단다.

​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울다가 웃다가, ​마음을 토로하다가, 바카라을 뒤적이다가, 그렇게 쉬었다 간단다.

​

무엇보다도 이 서재에서 작가님이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은, ​역시 작가님 자신이란다.

​

이 공간에서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작가님 자신을 쓰는 일이었단다.

​

형사 박미옥의 철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하신다.

​

하루빨리 작가님의 바카라방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본다.

​

그날이 온다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오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