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뭐니, 넌?”
소백이 눈을 떴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참 보기 좋았다. 지쳤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누워 저 파란 하늘을 더 보고 싶은데, 아니 계속 보고 싶은데 얼굴 하나가 떡하니 나타나 앞을 가렸다.
“...”
눈이 굉장히 예뻤다. 어떻게 별을 다섯 개씩이나 담고 있을 수가 있을까. 별 다섯 개라. 과장된 표현일까? 너무 예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눈 주위로 핑크빛이 맴도는, 반짝이가 있는 화장이 참 잘 어울린다. 향기도 좋다. 부드럽다. 흠,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늘과 뭉게구름도 좋았지만, 이 얼굴을 계속 보고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향기에 취해 두 눈을 감아본다.
“야! 너 뭐냐고?”
소백이 다시 두 눈을 번쩍 떴다.
목소리가 앙칼졌다. 이건 뭔가 굉장히 곤란하다는 말투였다. 여자가 입을 벌릴 때마다, 입에서 향긋한 딸기냄새가 났다. 신비한 소녀? 아니 아가씨였다. 소백이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발을 굴려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 이어 사람이 전체적으로 보였다. 여자가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는 한숨을 푹 내쉰다. 굉장히 실망한 표정이다.
공주다. 딱 봐도 공주였다. 조선시대 공주. 근데, 가만보니 상복이다. 둘러보니 다들 상복을 입고 있다. 누가 죽었나? 여기 영화촬영장인가? 소백이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극에서 자주 보았던 그런 풍경이었다. 한데 스텝들이 없다. 촬영장비도 없다. 도대체 뭐지?
“하하하! 우리 조카가 일반인을 소환했네.”
이 나라의 왕으로 보이는 자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친왕이시여? 제가 지금 보위에 오른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이고.”
여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곤란하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소백이 고개를 돌려 여자를 다시 보았다. 와, 정말 예쁘다. 몸매도 끝내준다. 170이 무조건 넘는 키다. 배우인가? 누구지?
“아이고.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폐하께서 일반인을 소환하셨습니다. 네네.”
“흥.”
여기는 평형세계 대한제국.
마법과 과학의 발전이 제멋대로인 이 나라에 이씨왕조의 마지막 핏줄 이가영이 황위에 올랐다. 그녀의 나이 18세. 아버지 상중에 성인식을 막 치렀다. 일생을 함께할 오른팔을 소환하는 자리였다. 소백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오늘도 싸구려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등 뒤에서 포탈이 열렸고 강력한 힘에 의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갔다.
“소백아!”
약초가 많기로 유명한, 어머니를 닮은 산 소백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해서 약초꾼인 소백의 아버지가 직접 주어주신 이름이다.
소백은 자신을 부르는 여자 친구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이 이상한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다시 어떻게 안 되나요?”
“네, 폐하. 오른팔 소환은 한 사람의 일생에 딱 한 번만 가능합니다.”
“아니 뭐 대단한 오른팔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디 써먹을 데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저걸 어디 써먹어.”
“아직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계약에 의해 어떤 능력이 오른팔에게 생성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휴. 지금 계약해야 돼?”
“네, 폐하.”
“안하면?”
“안하시면 저 오른팔은 어디 노역장에서 죽을 때까지 일만하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겠죠.”
“아휴.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담.”
고민에 빠진 공주님께서 귀에 착용중인 이어폰을 두 번 두드렸다.
“어떻게 생각해? 보고 있어?”
누구에게 말하는 걸까?
[“언니. 계약해. 어떤 능력이 생성될지 궁금해.”]
“그래, 알았어. 우리 동생이 원한다면야.”
공주님이 다가와 양손을 쭉 내밀더니 소백의 양쪽 얼굴을 붙잡았다.
“그래도 못생긴 얼굴은 아니네.”
“예?”
소백이 의문표를 날리는 그 때다.
입술이 들어왔다. 쪽.
“나 황제 이가영은 지금 이시간부로 네놈을 나의 오른팔로 임명하노니 네놈은 아니, 나의 오른팔은 나의 영광과 축복을 받으라.”
“....”
“뭐야? 너 얼굴이 왜 빨개지는데?”
“....”
“아휴, 뭐하나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이게 보통의 일인가? 소백이 화끈거리는 얼굴로 인해 멍해 있는 그 때다. 뭔가가 속에서 훅, 하고 올라온다.
뭐지? 한데, 그대로 사라졌다.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분명 무엇인가가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왔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란 존재가 무의미했었다.
[“자, 보자. 능력이 뭘까?”]
“뭐 있겠어?”
이가영이 아무 기대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역시나 소백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진짜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거야? 와, 정말 너무한다. 너무해.”
“....”
“아니. 뭐 내가 누구처럼 바람을 부르고 파도를 일으켜 달래? 야. 뭐라도 해봐.”
“뭘요?”
“아무거나.”
“내 이름은 김소백...”
“아, 지금 자기소개시간이야?”
“그쪽은 누구신가요?”
이가영이 친왕이라고 불렀던 남자부터 시작해 대신들이 여기저기에서 깔깔깔 웃었다.
“내가 누구냐고?”
“네. 누구세요?”
“이 나라의 황제다.”
“영화촬영중인가요?”
[“아, 언니. 너무 재밌어. 계속 대응해줘 봐.”]
“너 내 동생 아니었으면... 쯧쯧쯧.”
“동생이요?”
“됐고. 정말 뭐 보여줄 거 없어? 하다못해 이런 거 하나라도 공중에 띄울 수는 있어야지.”
이가영이 전화기를 내밀었다. 소백이 살던 세계와 똑같은 기종이다. 도대체 이 세계는 뭘까.
“전화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응?”
소백이 가영이 내민 전화기를 낚아채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자 친구의 번호였다. 하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너 뭐하니? 이런 무엄한지고!”
“저기요. 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이제 가야돼요. 안녕히 계세요.”
소백이 가벼운 목례를 한 뒤 자리에서 벗어났다. 가만 보니 여기 경복궁이다. 정문 광화문이 보였다. 소백이 힘차게 뛰었다.
“지금 내 오른팔이 도망치는 거야?”
“도망 못갑니다.”
“도망치고 있는데 뭘.”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지요. 허락 없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친왕이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래? 에이, 그냥 사라져버려라. 어떻게 저런 게 오른팔로 나타나서.”
이가영이 손을 휘저으며 연회장에서 퇴장했다.
가영이 통과하는 긴 복도는 수차례 공기를 쏘고 빨아들이기를 반복한다. 세균, 바이러스 제거 100프로 안내문구와 함께 그 끝에 다다르자 유리방안에 갇혀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진영. 부모를 잃은 가영이 물고 빠는 하나뿐인 여동생이었다.
“언니!”
“오구오구. 내 강아지.”
가영과 진영이 한 몸처럼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유리방은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 사방 유리벽이 모두 모니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영은 이곳에서 연회장에서 있었던 언니의 성인식과 오른팔 소환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진영이 코에 가벼운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은 무균실이다.
그렇다. 진영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선천적 면역질병을 갖고 태어났다.
이렇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언니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가영은 동생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생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언니. 근데 작은아버지 말투 있잖아. 난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봐.”
“응. 나도 눈치 깠어. 일부러 저러는 거야.”
“지금 황위에 오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조카타령이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지.”
“지켜보려고.”
“언니. 일단 잘해줘.”
“그래? 그래야 되나?”
“응. 너무 잘해주는 거야. 정말 잘해줘야 돼.”
“그러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겠지. 그 때 본색을 드러낼 거야. 중요한 건 그 때 기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거.”
“오구. 내 강아지.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이리와, 언니랑 글 짓자.”
“응. 난 언니랑 글 지을 때가 가장 행복해.”
“이번에 서화담 글짓기 대회에 우리도 응시해볼까?”
“와! 좋아! 우리가 대상먹자!”
“그래그래. 아고 내 강아지.”
이진영은 천재다. 천하의 문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대제학과 나란히 문형(文衡)으로 통한다.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뽑기 애매할 때 의뢰를 받기도 한다.
하나의 어휘를 두고 그 한계를 실험하고 풀어내는 방식과 사유를 확장시켜나가는 능력이 독특하며 상상을 초월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글을 하나 발표하면, 문장 좀 짓는다는 당대의 시인들이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이진영의 글에 충격을 먹은 문장가들은 둘로 나누어진다.
붓을 꺾고 은둔에 들어가거나, 죽기 살기로 도전하거나.
가영은 하나뿐인 혈육이자 천재인 동생 진영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광화문을 나갔지만, 서울이긴 한데 소백이 아는 서울이 아니었다. 조선후기와 현대시대가 서로 합쳐진 상태라고나 할까.
“도대체 뭐야?”
심장이 슬슬 찢어질 것처럼 아파온다. 한발 내딛으면 내딛을수록 찢어지다 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 온 길을 돌아가야만 심장의 통증이 사라졌다.
소백의 앞에 황제호위무사단이 나타났다.
단장 이항조가 소백의 앞을 막고는 두 손에 수갑을 채우려고 한다.
“계약도 모르고 도망쳤군.”
“뭔가요?”
“황명에 따를 뿐이오.”
“황명이요?”
“그렇소. 당장 수갑을 채워 잡아오라는 황명을 내리셨소이다.”
진영이 언니의 오른팔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해서 내린 명령이었다.
“정말 이거 다 영화 찍는 거 아니었나요?”
“영화를 좋아하나 보오?”
“아니 지금 그 말이 아니라.”
“?”
이항조의 수갑이 채워지지 않고 소백의 손 언저리에서 계속 맴돈다. 소백의 손이 본능적으로 수갑이 채워지는 각도를 피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소백도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항조는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왔다. 한데, 이런 애송이하나 수갑채우는 게 뭔 일이라고... 채울 수가 없다.
“가만히 있으시오.”
“제가 잡혀갈 이유가 뭔가요?”
“어허. 계속 그러다 크게 다치오?”
“아니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손과 손이 엉키고 수갑이 겉돌다가 두 사람이 어떤 힘에 의해 뒤로 물러났다.
“너 뭐하는 놈이야?”
이항조가 경계하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예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 취준생인데요.”
“뭐?”
이항조가 한손을 뻗어 소백의 손목을 붙잡는 그 때 소백의 손목이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벗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소백이 이항조의 손목을 제압하고 수갑을 가로채갔다.
“금나수?”
이항조의 입에서 탄성처럼 쏟아져 나온 말이었다. 지금 소백이 펼친 금나수는 바로 이항조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소백도 수갑을 들고는 놀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