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만은 존재해도

변은아는 존재하지 않아

by임경주



오랜만에 만났다. 동네 형이랑 동생들이 다짜고짜 황동만이 보라고, 황동만이 뭐냐니까 긴 제목을 대충 말해준다. 볼 때마다 임작가 생각 많이 난다면서. 서로 맞지? 맞지? 어, 맞아. 그런다. 작가라는 사람이 폭삭 속았수다도 안 보고 황동만도 안 보면서 뭔 글을 쓴다고 그러냐고. 그래서 나의 아저찌 이후로 드라마 본 게 없다니까는 황동만이가 나의 아저씨 그 같은 작가란다. 그래서 단숨에 봤다. 고윤정을 참 열심히 본 것 같다. 황동만은 현실에 존재해도 변은아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동네 지인들은 내가 황동만을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 형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정세가 맞다.


난 사실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가 딴생각을 하고 있고, 놓친 부분을 무시해도 되는데 또 모르니까 다시 돌려봐야 하나? 하는 그 찜찜함을 유지하다 보면 결국엔 집중력과 흥미가 완전히 떨어지고 결국 안 봐지게 된다.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설렌다. 초집중한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무조건 영화다. 다른 게 끼어들기 어렵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일 수도 있고 드라마일 수도 있다. 영화는 보던 거니까, 뭐 볼 게 없으니까 그냥 다시 보는 거야. 이런 일이 거의 없다. 한 번 보다 말았으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찾아보는 일이 없다. 드라마는 그냥 보던 거라, 지루하고 재미없는데도 보던 거라 습관적으로 또 보는 게 드라마일 것이다. 어쩌면 나만.


영화와 드라마는 같은 영상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선을 긋는 것처럼 서로 다른 차이가 있다. 물론 이 선은 영화가 긋고 있다. 이게 굉장히 큰 차이다. 제목이 무척 긴 이 드라마는 황동만과 변은아를 비롯한 영화에 모든 열정과 삶을 내다 바치고 던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감정을 다룬다. 감정이란 것을 이야기한다. 독특한 감정이 있다. 스스로 이름 짓지 못한 채, 의식과 무의식 그 경계에 자리 잡은 채로 캐릭터들을 지배하고 있는 그 감정의 이름은, 도와줘.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왜냐하면 도와줘. 이건 감정이 아니라 진심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 긴 드라마가 만약에 영화라면 황동만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변은아라는 캐릭터는 더욱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상처받은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그리고 그 가면은 평생을 진짜로 둔갑시킨다. 변은아는 황동만을 오히려 더 경계하고 싫어하는 게 맞다. 거리를 두고 행여나 내 인생이 엮이지 않을까 굉장히 조심하고 더 멀리할 것이다. 그래서 황동만을 좋아할 수가 없다. 말이 되지 않는 캐릭터다.


상처 입은 사람은 대개 또 다른 상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변은아라면 황동만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경계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저렇게 예쁘기까지, 이 비정한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문득 궁금해진다. 진심과 감정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진짜 불쌍한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진심 앞에 섰을 때, 워치에는 과연 무엇이라고 표시될지.


지긋지긋. 위험. 경계. 거리유지. 또 감정소비. 짜증. 더러워. 피해. 도망쳐.


이런 거 중에 하나이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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