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은…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먼저 난 심각한 길치다.
모든 산이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나에겐 모든 길이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특정 건물이란 게 따로 없다. 건물도 63 빌딩처럼 독특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다 거기서 거기다. 애초에 길에 관심이 없다. 이 길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 길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단지, 이 선이 계속 이어져 있을 것인데 눈에 보이는 선이 저 멀리 하늘과 만나 한계에 도달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이어져 가고 있을지 그게 더 궁금하다. 거기가 평택으로 가는 길인지 그 반대방향인지는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다. 그래서 기차도 철로만 보다가 반대로 탄 적도 몇번 있었다.
방향감각도 이상해서 나에겐 동서남북이 따로 없다.
내가 TV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는 큰길이 내 앞에 깔려있고, TV를 등지고 있으면 내 앞에 그 큰길이 똑같이 위치해 있다.
그래서 내가 가끔 멍 때리고 있을 때면 집사람이 여보? 우리 아파트 정문이 어디 있어? 하고 물어오곤 하는데 순간 당황한다. 그 정문은 무조건 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짝 부족하고 덜떨어진 사람이란 걸 아내는 연애할 때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냥 저 사람이 뜬금없이 장난하는 걸로 알았다고. 저번에 시골친구들 가족모임 때도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다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 잠깐 사이에 내가 한눈을 파는가 싶더니만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질 않으니 저 양반 또 시작했구나, 하고 창문 밖을 보는데 내가 식당 코 앞에서 헤매고 있더란다. 안에서는 창문 밖이 잘 보일지 몰라도 밖에서는 안이 어두워 사람이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그 때 그랬던 거 같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러나 친구들이랑 웃으며 지켜보는데 결국 내가 전화해서 어디야? 이 식당 맞아? 하고 있더란다.
아니? 코 앞에 두고 여기를 못 찾아? 간판을 봐, 간판을. 우리 펜션에서 출발할 때 이 식당 네비로 찍고 왔잖아. 와, 진짜 당신 심각하다.
물건을 잘 세지 못한다. 하나 둘 세다가 싱크가 맞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 센다. 이게 갈수록 심해진다. 가끔 동네형님들이랑 스크린골프를 치면 타당 얼마 해서 돈이 오고 가는데 난 그 계산이 참 어렵다. 그래서 달라는 데로 주고 얼마가 들어와야 맞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가끔 내 계산이 맞는 거 같아 주장하면 놀림만 당하고 넌 도대체 그 머리로 글을 어떻게 쓰냐고 그런다. 아내도 이 말을 자주한다. 이 머리로 글을 어떻게 쓰냐고? 나도 모르겠다.
난 성장기에 선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선만 보고 살았는데 그게 뇌가 발달을 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런 과정으로 인해 뇌가 더 발달하지 못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전체적인 외형이라든지 어떤 모습, 구조나 높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특정한 세부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선과 그 선의 연결이 어떤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집착한다. 길도 마찬가지다. 이게 내가 건물과 도로를 보는 시각이다.
가끔 불편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큰 문제나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의학적으로 어떤 특정 병명이 있는지도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나란 사람은 좀 멍충하고 부족해도 성실한 거 하나는 확실하다. 누나들이 그러는데 내가 엄마의 착한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문장이 이어지는 그곳에는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선이 존재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이야기에도 캐릭터를 하나 집어넣고 문장을 치고 나가다 보면 어떤 선을 만나고 그 선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언제 생겼는지 알 수가 없는 특정 패턴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패턴이 점점 커지고 이거다 싶을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순간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이 있다면.
불규칙한 것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눈부신 성좌 하나를 발견하는 위대한 순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글을 엄청나게 잘 쓰는 사람이냐. 장르시장에서 잘 나가는 인기작가냐, 그것은 또 아니다. 나 임경주. 그냥 저런 과정이 좋아 글을 쓰고 또 쓰는 글쟁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