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보고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이토록 슬픈 노래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뮤지컬을 보고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독립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였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니지.
나라를 잃은 백성에게
어찌 걱정이 없었겠는가.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고,
내일이 두렵고,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걱정을 앞세우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을 나라를 생각하며
오늘의 두려움을 마음 한켠에 붙들어 두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은빛 피리 하나뿐.
마음 놓고 머물 집도,
편히 돌아갈 고향도 없이
바람처럼 떠돌아야 했던 사람들.
모진 비바람이 몰아쳐도,
거센 눈보라가 앞을 가로막아도
입술에 피리 하나 물고
언제나 웃으며 걸어갔을 것이다.
그 웃음이 즐거워 웃는 웃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을
그들은 가슴 깊이 삼켰을 것이다.
웃어야 했기에 웃었을 것이고,
울 수 없기에 웃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웃음 속에는
독립된 나라를 꿈꾸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언젠가 되찾을 나라를 떠올리고,
그 나라에서 살아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을 생각하며
슬픔 속에서도 조용히 미소 지었을 것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조차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하물며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그 시대의 아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를 빼앗긴 채
자유와 평범한 일상을 꿈꾸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오늘을 살아가면서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우리에게 자유로운 나라를 남겨주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놓았던 그분들에게
참으로 죄송한 일이 아닐까.
갈 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산이 높아 우는 철부지 소년아
나의 피리 소리 들으려무나.
어쩌면 우리 모두
아직 철부지인지도 모르겠다.
별것 아닌 일에도 힘들어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화를 내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서로 등을 돌린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감사하면 될 일을
우리는 너무 쉽게 다투고 원망한다.
정치인은 더 한심하다.
문제없는 정치인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상대의 허물을 들추고 헐뜯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라가 두 동강 난 것도 모자라
예로부터 전해오는 당파싸움을 그대로 물려받아
아귀다툼을 하며
국민의 삶은 뒤로 밀려나는 것 같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한때는 아무 걱정 없이
즐거이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피리 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가 아니었다.
나라를 잃었기에 더 큰 걱정을 품고,
희망이 있었기에 그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피리를 불며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피리 소리는
어쩌면 절망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였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 노래가 슬프다.
그리고 그 슬픔 끝에서
조용히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시간이기에.